1945년 미국에서 핵무기가 개발되면서 세상의 역학 관계는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 들었다. 이후 핵무기는 국가 간 힘싸움을 주도하는 주요한 요인으로 떠올라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오늘날에는 공식적으로 5개국이, 비공식적으로는 11개국 가량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물론 핵무기 자체가 가지는 위험 때문에라도 핵무기 확산을 저지하고 현재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도 점진적으로 파기하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지만, 정작 잘 알려지지 않은 문제는 핵무기 개발과 생산, 유지에 천문학적인 자금이 투자되었고 지금도 쓰여지고 있다는 사실이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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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ooking Institute에서 1998년 미국 핵무기 비용 관련 연구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미국에서만 핵무기 개발과 향상에 매년 350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핵무기 개발과 유지에는 지금까지 5조5000억 달러를 투자했다. 프랑스의 경우에는 여기에 1조5000억 달러가 쓰였고, 현재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11개국의 소요를 모두 합치면 약 10조달러를 훌쩍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2   한해 핵무기를 유지하는데만도 미국만 310억 달러가 필요한 것으로 추산되는데, 개발, 향상, 유지 비용을 모두 합산하면 미국에서만 연간 660억 달러를 핵무기에 쏟아 붓고 있는 셈이다.3  미국에서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는 약 1만여개이며, 러시아가 1만6000여개, 나머지 핵보유국들에 약 1천여개를 보유하고 있다. 미국의 유지 보수 비용을 다른 나라에 그대로 적용해 보면 세계에서 핵무기 유지에 매년 1500억 달러 이상을 쓰고 있으리라 추측해 볼 수 있다.

이 비용을 현재 2015년까지를 목표로 UN에서 진행 중인 새천년개발목표(MDG)나 소외열대질환의 현실과 한번 비교해보자. MDG는 UN에서 2015년까지를 목표로 세계 모든 나라들이 힘을 합쳐 빈곤을 퇴치하고 배고픔을 줄이고, 기초 교육을 제공하고, 성 불평등을 철폐하고, 모성, 아동 사망률을 낮추고 각종 질병의 확산을 예방하자는 계획이다. 많은 비판이 있기는 하지만, MDG는 분명히 성과를 내고 있으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다. 하지만 해가 지날 때 마다 세계 경제 불황, 인플레이션 등의 영향으로 MDG가 최초에 목표로한 성과를 내기 위해 필요한 자금과 실제 공여국에서 지원하는 자금의 규모가 점차 차이가 나고 있다. 자금부족으로 중간에 흐지부지 되는 사업들도 생기기 마련이다. 세계은행은 이를 막기 위해 추가로 필요한 금액이 매년 400-600억 달러 가량이 될 것으로 추산했다.4  

다른 질병들은 어떨까. 전세계에 약 3400만명의 감염자가 있고 매년 180만명의 사망자를 내는 HIV/AIDS를 보자. 2009년 기준으로 UNAIDS가 HIV/AIDS에 쓸 수 있었던 돈은 159억 달러에 불과했다.5  소외열대질환은 하루 소득 2 달러 미만의 절대 빈곤선에 살고 있는 27억 인구가 가장 흔히 걸리는 질병들이다. 눈에 띄게 높은 사망자를 내지는 않지만 만성적인 소모성 질환을 일으켜 경제 발전을 저해하고 장애를 일으키며 아이들의 성장 및 발달 불균형을 일으켜 사회 뿐만 아니라 개개인이 소외받고 차별받는 현실을 만들어내는 주된 원인이다.
소외열대질환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다른 어떤 감염성 질환 보다도 흔하고 많은 고통을 초래한다는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치료가 손쉽고 저렴하다는데 있다. 회충, 구충 등의 질환은 일년에 한두번 먹는 약으로 치료가 가능하고 주혈흡충증이나 사상충증도 마찬가지다. 트라코마(http://www.koreahealthlog.com/1361) 같은 박테리아 질환도 마찬가지로 항생제 투여로 손쉽게 치료 할 수 있다. 사상충증, 강변사상충증, 트라코마, 주혈흡충증, 토양매개선충(회충, 구충, 편충)은 한 명을 치료하는데 한해 0.5 달러 밖에 들지 않는다. 말라리아는 일인당 6.64달러, HIV/AIDS는 700달러 가량이 필요하다. 이 기생충 질환 일곱개에 감염된 모든 사람들을 치료한다고 하더라도 한해 드는 돈은 2억 달러 밖에 되지 않는다.6  이를 17개의 모든 소외열대질환으로 확대한다고 해도 전체 비용은 연간 20억 달러 안팎이다.

건강 향상과 감염성 질환의 억제가 국가 내 사회적 안정성을 확보해 평화유지에 중요한 요인이 된다는 점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7  뿐만 아니라 국가 안보 유지에 필수적인 소득 증대도 소외열대질환 치료로 이루어낼 수 있다. 소외열대질환 치료는 높은 수익률을 보이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낮게는 15%에서 30%의 수익성을 보인다. WHO에서 진행한 사상충 퇴치 사업을 살펴보자. 8년간 3140만명이 치료를 받았는데 이로 인한 직접적인 경제적 이득은 218억 달러에 달했고, 일인단 치료비는 전체 기간 동안 2.23 달러에 불과했다. 투자된 1달러당 이득은 20달러 이상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8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생산해내지 못하는 핵무기. 그리고 이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아닌 것을 유지하는데 드는 돈의 일부만으로도 경제적 이득과 평화, 나아가 개개인의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소외열대질환 퇴치 사업. 과연 무엇이 중요한 것일까. 핵무기가 전쟁 억지력을 가져 평화를 유지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그 핵무기의 750분의 1을 줄여 세상에서 만성 기생충 감염증을 몰아내거나, 75분의 1을 줄여 모든 소외열대질환을 박멸하거나, 절반으로 줄여 새천년개발목표를 성공시키는 것 보다 더 큰 평화를 약속해 줄까.

[참고문헌]
1. Nuclear Weapons and Neglected Diseases: The ‘‘Ten- Thousand-to-One Gap’’
http://www.plosntds.org/article/info%3Adoi%2F10.1371%2Fjournal.pntd.0000680

2. The U.S. Nuclear Weapons Cost Study Project
http://www.brookings.edu/about/projects/archive/nucweapons/weapons

3. Resolving the Ambiguity of Nuclear Weapons Costs
http://www.stimson.org/images/uploads/Resolving_Ambiguity.pdf

4. The Costs of Attaining the Millennium Development Goals http://www.worldbank.org/html/extdr/mdgassessment.pdf

5. UNAIDS Global Report
 http://www.unaids.org/documents/20101123_globalreport_em.pdf

6. Social and Economic Impact Review on Neglected Tropical Diseases http://www.hudson.org/files/publications/Social%20and%20Economic%20Impact%20Review%20on%20Neglected%20Tropical%20Diseases%20Hudson%20Institute%20and%20Sabin%20Institute%20November%202012.pdf

7. Global health as a factor in economic and social stability
http://www.ncbi.nlm.nih.gov/pubmed/17533798

8. The economic benefits resulting from the first 8 years of the Global Programme to Eliminate Lymphatic Filariasis
http://www.plosntds.org/article/info%3Adoi%2F10.1371%2Fjournal.pntd.0000708

4:59 am    22 January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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