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은 질병을 일으키는 나쁜 존재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기생충도 약으로 쓸 수 있습니다. 믿기 어렵겠지만 실제로 사용되고 있고, 현재 임상시험을 거치고 있는 기생충도 있습니다. 주로 면역계 질환에 많이 사용되지요. 사람들의 상상력이란 참 대단하지요. 그러면 이번에는 약으로 사용되는 기생충들과 역사에 대해 한번 알아볼까요.


기생충을 약으로 어떻게 사용되는지 알기 위해서는 일단 사람의 면역 체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조금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생충과 관련된 사람의 면역 반응은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작은 기생충, 즉 말라리아 같은 단세포 원충이나 박테리아에 대한 반응이죠. 이에 대응해 사람의 면역계는 격렬한 염증을 일으킵니다. 염증이라고 하면 주로 부어오르는 증상을 떠올리죠. 면역계가 감염된 지역에 다량의 혈류와 백혈구를 쏟아 붓기 때문에 해당 지역이 부어 올라서 그렇지요. 많은 전투력을 집중시키기 때문에 단기간에 많은 기생충을 없앨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두번째는 이런 강렬한 염증 반응을 억제합니다. 이 방법은 큰 기생충들을 상대할 때 쓰이죠. 회충이나 촌충처럼 몇십센티미터에서 몇미터에 달하는 기생충이 몸 안에 자라나고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렇게 커다란 기생충에 대항해서 온 몸에 염증 반응을 일으키면 오히려 몸이 견디지 못하겠죠. 장 전체가 부어 오른다고 상상해보세요. 게다가 이 커다란 기생충들은 이런 염증 반응으로는 잘 죽지도 않습니다. 몇 개월에 걸쳐 염증이 지속적으로 일어나면 조직이 손상되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 기생충이 아니라 자신의 면역 반응에 의해 사망할지도 모릅니다. 이 때문에 염증을 억제하는 구조를 가지는 것이죠. 기생충 또한 다량의 항체와 백혈구가 주변을 떠도는 것을 원치 않기 문에 이런 면역 억제 반응을 적극적으로 이용합니다.

흔히 말하는 사람들의 자가 면역 질환 - 각종 알레르기성 질환, 꽃가루 알레르기, 크론병 같은 자가면역성 장질환 등등 - 은 이렇게 면역반응이 과도하게 일어나 생깁니다. 실제로는 해가 되지 않는 꽃가루에 과민해진 면역계가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해 콧물과 재채기가 나기도 하고 간지럼증이 생기기도 합니다. 목과 눈이 붓는것도 마찬가지 이유죠. 크론병 같은 장질환은 자신의 면역계가 자기 몸 세포를 공격한다고 볼 수 있는데, 계속되는 설사와 혈변으로 장 기능이 심각하게 손상되기 때문에 사망에 이르기도 합니다. 지금은 약물로는 완치도 힘든 질병이지요. 하지만 여기서 기생충이 출동하면 어떨까요. 앞서 이야기 한대로 기생충은 과도한 면역 반응을 억제시킵니다. 때문에 기생충을 몸 속에 집어 넣으면 기생충으로 인한 피해는 미미하지만, 면역계는 충분히 억제되어 자가면역질환도 자연스레 사그러들게 됩니다. 면역계를 기생충을 이용해 길들이는 셈이랄까요.

가장 대표적인 예가 돼지편충을 이용한 크론병 치료입니다. 돼지편충은 돼지에 기생하는 장내 기생충인데, 사람에게 들어와 성장은 하지만 장기간 감염을 시키지는 않고 금새 죽어서 밖으로 빠져 나옵니다. 원래 살던 숙주가 아니라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 짧은 기간 동안이라도 면역계를 길들이기는 충분합니다. 에딘버러 대학에서는 이런 방법을 이용해 여러명의 크론병 환자를 치료했지요. 대부분의 환자들이 증상에 상당한 호전을 보였고, 일부 환자들은 몇년 째 재발하지 않고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기생충을 통채로 먹이는 아주 단순무식한(?) 방법이지만, 효과는 그만이었지요. 이 때문에 다른 기생충을 이용해 다양한 알레르기를 치료하려는 시도도 많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기생충이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셨다면 이제 생각을 바꿔보실 시간이 아닐까요.

이외에도 앞서 소개한 주혈흡충 같은 경우 몸 안에서 최대 25년까지 살 수 있습니다. 꽤 크기도 하고, 혈관 안에 살아간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 커다란 생물이 인슐린 같은 약물을 꾸준히 분비해줄 수 있다면 어떨까요. 주사가 필요 없는 훌륭한 약물 전달체계가 될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기생충 다이어트는 힘들지만, 비만인 사람들에게서 당뇨병 발병을 예방해줄 수 있다는 연구도 있었구요. 의외로 기생충이 쓸모가 많습니다.

물론 이는 면역계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있었던 비교적 최근의 일이고, 과거에는 빈대 처럼 밖에 살며 눈에 보이는 다양한 기생충들을 약으로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몸에 해를 주는 생물을 잡아 그 정수를 추출하여 다시 몸에 삽입하거나 바르면 치료 효과가 있으리라 믿었던 과거 의술의 논리였죠. 고대 중국에서는 갓 대변에서 나온 회충을 말려 곱게 간 다음 최음제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고대 서양에서는 머릿니와 몸니를 모아 간질, 말라리아, 치통을 치료하는데 사용하기도 했구요, 살아있는 이를 환자의 요도에 집어 넣어 배뇨곤란 치료법으로 삼았습니다. 중국에서도 마찬가지로 머릿니 수천마리를 모아 고약으로 만든 다음 다래끼나 두통의 치료제로 쓰기도 했습니다. 빈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빈대와 빈대알을 잘 으깨면 메스꺼움을 치료할 수 있다고 하는데, 오히려 더 메스꺼움을 일으키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듭니다. 또 잘 말린 빈대 일곱마리와 콩을 함께 먹으면 말라리아 예방에 특효라고 했구요.

알레르기 같은 질환과 기생충이 연관이 있다는 의견이 처음 제시된 것은, 이런 자가면역성 질환이 기생충이 많이 사라진 선진국에서 주로 많이 나타난다는 관찰 덕분이었죠. 즉 너무 깨끗한 환경이 어린 시절 면역계가 제대로 길들여질 수 없게 만들고, 나이들어 알레르기 질환으로 나타난다는 가설입니다. 흔히 위생가설이라고도 하지요. 또 지도에서 보면 기생충이 없는 지역일 수록 이런 면역 질환들이 많이 나타나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아직은 더 검증되어야할 가설이긴 하지만요. 어쩌면 우리 몸이 적응하기도 전에 기생충을 너무 급작스럽게 몰아낸 후유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미래에는 기생충도 약으로 쓰려면 없다는 속담이 생길지도 모르겠네요.

저작권자 © 코리아헬스로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