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릴적 나는 국어를 정말 싫어하는 학생이었다.  초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중학교로 진학하자마자 배우기 시작한 국어문법은 갑작스레 다가온 적응불능의 국어의 생소한 모습이었다.  두음법칙, 연음법칙 등등으로 설명되는 국어의 문법은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한 한글의 발음과 철자의 현상이지만, 그 당시 나는 갑작스런 혼란과 이해불가의 상태에서 국어와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고 있었다.  그것은 하나의 트라우마였고 고등학교 진학 후에도 2년간이나 담임선생님이 국어선생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국어본고사를 치르지 않는 대학을 골라 진학하려 했을 정도였다.  그만큼 국어는 내 스스로 벽을 치고 접근자체를 불허했던, 심리적 트라우마 그 자체의 과목이었다.  국어, 그러니까 한글 또는 우리말에 지금도 내가 단어적 선택이나 표현의 매끄러움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아마도 그 시절의 트라우마에 기인하기도 할 것이다.


2.
그러던 내가 블로그라는 매체를 통해 글을 끄적이고 있다는 것은 트라우마에 이은 아이러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글을 쓴다는 것이 국어를 잘해야만 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싸움닭 길러지듯 공부를 해야만 했던 그시절의 상황과 더불어 한글로 된 글들 자체와 연관된 모든 행위에 심적 부담을 느끼던 내가 스스로 글을 지어내고 있다는 사실은 어떤 벽을 넘어선 획기적인 변화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변화의 결정적 계기는 어느날 추천받아 읽었던 책들에서 기인했지만, 이후로 수많은 글들을 보며 느끼는 다양한 느낌은 딱딱하고 재미없는 국어의 문법이나 분석을 넘어서, 글의 표정과 감정과 모습들이 이토록 다양하구나 하는 깨달음이 섞인 친근감이었다.  욕심은 도를 넘어 글쓰기를 시도하였으나 여전히 어딘가 어색하고 표현력과 방식이 뒤떨어짐은 혹시 어릴적 딱딱하나마 체계적으로 학습하지 못한 한글의 골격과, 이에 대한 트라우마로 거리를 두었던 스스로의 벽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3.
표현과 방식은 뒤떨어지나마, 말이나 글이라는 방식이 가지는 어떠한 특성들에 대해서는 이전부터 조금씩 읽어온 바가 있다.  그래서, 단어가 가지는 의미의 다양성과 하나의 사물에 주어진 단어의 적확성, 그리고 발음과 의미의 연관성 등등에 대해 어느정도 기본적인 개념은 가지게 되었다.  아울러 말이 가지는 지역성과 말의 지역성이 가지는 문화적 특성들, 그리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말에 배인 사회성까지 사유할 수 있는 어느정도의 깜냥도 가지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언어학이라는 주제를 통해 한글이 보여주는 이러한 다양한 모습들과 언어의 바다에서 한글이 가지는 특성과 문화적 위치 등등을 다양한 관점에서 설명해주는 책이다.  한글을 포함한 수많은 언어들은 인간의 입에서 아무렇지 않게 자연스레 나오긴 하지만, 흘러나오는 말들은 단어와 소리 하나하나엔 광활한 풍경과도 같은 방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것은 다른 관점에서 확인하게 되는 우리의 삶이기도 하다.

4.
고종석이라는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수년 전, 지인이 그의 글을 좋아한다며 읽어보기를 권했을 때 들었던 이름에서부터였다.  사실 읽고 싶은 책들 속에서 고종석을 만나는 일은 그닥 관심이 가지 않은채 지내오다 최근 트위터 속에서 만나 그의 멘션을 본 것이 그의 글을 대면한 시작이었다.  그리고 그의 소설 '해피 패밀리'가 두번째 만나는 글이었다.  이후로 만난 것이 이 책을 통해서였는데, 언어학적으로 한글에 대해 풀어내는 그의 글 이야기는 위에서 했으니 이 책에 실린 몇 편의 서평만 가지고 이야기하자면, 그의 글은 어딘가 게으른 듯 하면서도 납득할 만한 여유가 느껴진다.  언어학 이야기만큼 분석적이지는 않지만 상대의 느낌과 평을 매우 자연스럽게 받아 자신의 것으로 녹여낸다.  여유로운 자가 받아내는 상대의 기분같달까?  무딘듯 편향되지 않고 균형이 느껴지는 글이 사실 나에게는 조금 지루함을 느끼게 하지만, 그의 글은 여유롭고 균형잡혔다는 면에서 또다른 표정과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 그가 트위터에서 왜 그리 어수선한 모습만을 보여주는 지는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나서 강하게 다가오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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