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었던 어느날,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갑작스레 들었었다.  ‘세상은 점점 좋아지고 있다는데, 사람들은 왜 점점 살기 힘들어하기만 하는 것일까?‘  의사면허를 취득하며 나름의 정해진 틀을 따라 수련과정과 군복무과정을 거치고 있던 어느날의 갑작스런 생각치고는 뜬금없기도 하고 거창한 의문이었다.  그때의 고민이 그저 고민만으로 끝났거나 ‘사는게 그냥 그런거지.‘ 라는 식으로 마무리되며 별 생각없이 수련과정을 거쳐 전문의가 되어 여기까지 왔다면, 아마 나는 이런 책을 접할 기회를 만나거나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고민은 책을 읽게 하였다.  독서는 잡학이라는 누군가의 말 답게 이런저런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어가다보니 위의 고민에 대한 답은 나름의 윤곽을 잡아가기 시작했는데 그 중심에는 자본의 구조와 방식이 자리하고 있었다.  자본이 순환하는 방식과 때때로 구조의 변화는 사람들에게 막연한 이해와 수용을 강요하며 자신 스스로를 순환의 구조안으로 몰아넣게 만든다.  더욱 더 달리지만 보상은 점점 줄어들며 힘들어지기만 하는 시스템.  자본주의는 발전한다지만 발전하는 과정속에 사는 사람들은 점점 괴롭기만 한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었다. 

 자본주의의 발전이 심화됨에 따라 삶의 많은 모습들엔 눈에 띄게 많은 변화가 보인다.  한병철 교수가 책에서 전하는 바 대로, 예전에는 사회의 내부로나 외부로 경계의 대상이 비교적 분명한 세상이었다.  냉전체제가 그랬고 사회경제 시스템은 경쟁이나 극복해야만 하는 타적 대상이 많은 부분에서 존재했다.  면역학의 이론으로 설명하자면, 면역반응을 일으키는 분명한 외부 대상과 만남으로서 반응과 함께 이를 뛰어넘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세상이었다.  상처라는 병리적 변화는 스스로 감지하며 치료할 수 있었던 때이기도 했다.

 지금은 대상의 극복보다는 모두가 같은 성과를 추구하는 동일한 방향성을 지니게 되었다.  성과란 자본획득과 이윤추구를 의미하고, 개인은 그런 성과적 주체가 되기 위해 끊임없는 자기계발을 요구당한다.  성과목적과 성과의 주체라는 방향성은 동일하나 저마다 나아가는 방향이 올바른 것인가에는 아무런 고민이 없다.  모두가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 추종과 착취의 대상은 자신이거나, 자신과 동일시된 타자일 수 밖에 없다.  자기계발서가 난무하는 지금시대의 모습이 이를 반영한다.  자신이 자신을 지배하고 착취하는 상황에서 면역력은 특별한 상황이 아니고서는 반응대상을 자신으로 삼지 않는다.  성과물의 주체를 목표로 하는 끊임없는 자기계발 행위는 비만의 수준까지 다가왔지만, 자신의 병리적 이상변화에 대한 자각은 일어나지 않는다.  비만상태가 된 채로 잡힐지 알 수 없는 성과만을 향해 자신을 계속 채찍질해야하는 이 사회적 상황이, 지금 우리가 발전했다는 세상속에서 살기 힘들고 어렵게만 느끼는 이유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의사의 입장에서 의료가 이런 상황에서 자유롭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의료가 산업이 되고 기업의 이윤추구 수단이 된 현실에서 순수하게 건강증진과 의술발전만을 추구하고 있다 볼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산업이라는 단어 자체가 이윤을 만들어내야만 하는 자본순환의 구조를 의미하고 의료의 일부는 이미 그런 자본구조의 한 형태로 존재했다.  지금은 순수하게 의료가 추구하는 목표를 벗어나 이윤추구의 구조로 얼마나 많이 변질되어 있는가 판단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다보면, 지금 우리는 인간의 몸을 치료하고 다스린다는 의료가 이윤추구의 성과주체가 되기 위해 자신에게 채찍질해가며 방향성에 대한 올바른 판단마저 잃어버린 채 내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료 스스로가 면역력을 상실하고 병리증상의 자각력마저도 잃어버린 채, 비만한 모습으로 이윤추구에만 골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할 때다.

 사람들은 지쳐간다.  지쳐도 스스로에 대한 행위를 멈출 수 없는 사람들은 우울해진다.  우울은 타인이 알기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을 만큼 자기파괴적이다.  타인에 대한 폭력 역시 파괴적이지만 그 이전에 외적 발산을 통해 타인에게 폭력행동을 암시한다.  그와는 다르게 우울은 아무도 모르게 자신을 파괴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울이전의 피로이다.  피로를 통해 스스로에 대한 채찍질과 막연한 내달림을 멈추고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  인간의 역사는 분주히 움직였을때보다는 조용히 사색하였을 때 발전할 수 있었듯이, 우리는 지금 가만히 멈추고 피로한 자신을 되돌아보며 피로의 원인이 무엇인지 사색해야 한다.  의료도 마찬가지 아닐까.  의료의 구성원들도 점점 지쳐간다.  피로를 느낄 수 있을때 잠시 멈추고, 이제껏 내달리며 향하는 방향이 과연 의료의 본질과 얼마나 일치하고 있는가를 돌아보아야 할 때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회 속에서 인간의 삶을 지탱하는 많은 요소들 중, 의료가 가지는 특수성과 중요성을 생각할 때, 지금 우리의 모습과 의료의 본질의 일치여부는 반드시 확인해보아야 할 과정이다.  혹시 의료 스스로가 비만과 우울의 상태에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강요되는 성과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 책은 의료인에게, 의료의 본질을 되짚어보도록 피로한 우리가 잠시 멈추기를 간접적으로 권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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