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의 생생함을 온전하게 하는 데에는 주제와 구성방식과 기록방법과 분위기등의 많은 요소에 정성을 들여야 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시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경험한 이들이 온전한 기억을 가지고 말로서 정확히 표현해내기 위해서는 인간의 생체적 시간의 어느 지점안에서 구술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에서 5.18의 광주와 4.3의 제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33년 전의 과거와 65년 전의 과거는 인간의 기억력에 따라 구술의 정확성에 차이를 주기 충분한 시간차이다. 이러한 시간차에는 폭력을 자행한 당사자인 정권이 망각을 유도하려는 의도가 작용했을 것이고, 역사의 변화가 침묵의 봉인을 조금 빨리 해제시켰다고 하면, 5.18은 다행스럽게도 조금 일찍 진실을 알 수 있게 된 역사의 장면이 된 것이다. 

광주를 경험한 여성의 입장에서 5.18을 다시 돌아본다.  하지만 이야기는 5.18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구술자들의 살아온 인생내력으로 시작하여 자신의 생각이 첨가되고 어쩌다가 5.18에 휘말렸고 그 순간 무얼 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지금의 삶에 어떠한 영향으로 남아있는지를 이야기한다.  이는 5.18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의 하나로서 여성이 바라보는 5.18이라는 의미도 가지지만, 5.18을 떠나 여성으로서의 삶을 바라보는 의미도 가진다.  단지 이 구술의 특별한 의미를 짚어보라면, 평범한 일상을 살아왔던 여성들이 우연히 5.18을 만남으로서 생각과 생활에 어떠한 변화가 왔는가라는 점일 것이다. 

그러나, 여성의 관점과 시선에서 5.18을 바라본다는 것은 과연 별다른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뒷편의 대담에서도 논쟁거리가 되는데, 읽고난 후의 내 관점은 그것은 여성이기에 5.18을 그렇게 바라보고 행동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시민군에게 밥을 해주고, 몰려드는 환자들을 치료간호해주고, 쫓기는 대학생들을 숨겨주고, 시신을 염하며 눈물흘리고 한탄하는 모습은 그것이 여성이기 때문이거나 어떤 이념이 강고해서 그런 것이 아닌, 그저 인간으로서의 양심과 애정과 연민이 있기 때문에 발휘되는 행동인 것이다.  동시에 현장의 중심에서 존재하며 앞장선 이들의 서사로만 표현되고, 그럼으로서 이후에 그들의 이야기만으로 남게 되는(동시에 남성성 가득한 느낌으로만 남게 되는) 역사의 사건은 사실, 인간성의 측면에서 합리적이고 납득할 만한 당위를 품고 행동한 모든 이들의 역사이자 이야기임을 깨닫게 해 준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이 책의 구술은 정말 평범한 사람들의 인간적인 이야기를 통한 5.18의 진정한 내면을 보여주고 있고, 당시 적극적으로 헌혈하고 먹을 것을 나누어주다가 이후 경찰에게 연행되어 폭행당하고 한두달을 구치소생활을 하다가 어디론가 사라진 이름모를 술집 아가씨들 같은, 현장의 중심에 있었던 약자들의 이야기가 부족하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던져준다.  여성성의 관점에서 특징삼을 점들은 오히려 5.18의 외부에 존재한다.  여자아이이기에 학교를 못갔다거나, 얼굴도 모르고 결혼했다거나, 내 딸은 나와같이 살지 않았으면 해서 결혼도 강요하고 싶지 않다는 등의 이야기에서 그 시기를 살아온 여자들의 모습과 생각을 살펴볼 수 있다. 

권력에 의한 폭력은, 그러니까 4.3이나 5.18등의 비극은 온전하게 마무리된 것일까?  4.3은 정부의 공식사과와 보상이 이루어지고 있고, 5.18역시 보상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이를 마무리로 인식하고 화해와 상생이라는 단어로 포장지을 수 있는 것일까?  구술자들의 이야기만을 가지고 말해보자면 아닌 것 같다.  5.18을 온전히 통과해 온 이들은 5.18 기념일 행사엔 참석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 전날이나 다음날 조용히 망월동을 찾아간다고 했다.  행사를 통해 5.18은 정치적으로 소비당하고 있다는 분노감때문이다.  동시에 보상이라는 금전적 혜택이 주어짐과 동시에 유가족들의 권력화와 내분이 일어나는 상황에 대해 뭐라 말할 수 없는 참담함을 표현한다.  의미와 추모는 온데간데 없고 보상은 분열과 왜곡을 낳으며, 위정자들은 도청별관과 전남대 정문을 싹 갈아엎음으로서 5.18의 상징성을 제거하려 한다.  그 앞에서 이들의 구술은 안타까움만 느껴지지 아무런 저항의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은 4.3의 제주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비참하고 안타까운 상황을 가해자들이 아니고 피해자인 인민들이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는 모습을 보면, 이것을 시대가 변한 때문이라고 이야기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암담하다.  그 암담한 토양에서 친일 기회주의 세력이 다시 세를 펼치고, 역사에 대한 무지와 사고력의 무능을 바탕으로 사실의 왜곡과 폄훼가 독버섯처럼 곳곳에서 올라오는 모습들을 보면, 다시 이런 기록의 중요함을 새삼 깨닫게 된다.  참담함도 함께 느껴야하는 슬픔도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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