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그러면 저희 아버지는 얼마나 더 사실수 있을까요?”

 하루에도 몇번씩 받는 질문이다. 암을 진단받고 전이가 있어, 고식적 항암치료를 앞두는 시점에서는 흔히 이런 질문을 받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얼마나 더 사실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아주 싫어한다. 모르기 때문이다.

 “선생님, 그러면 저희 아버지는 얼마나 더 사실수 있을까요?”

“저도 잘 몰라요. 제가 점장이도 아닌데 죽는날을 어떻게 맞추겠어요.”

 종양내과의사인 내 입장에서는 수천번 들은 질문이어도 환자나 보호자 입장에서는 처음 하는 질문이니까 자세히 설명해 주어야 하는데 설명이 쉽지도 않고, 설명을 해주어도 이해를 못하는 경우가 많다.

 “선생님, 그러지 마시고, 뭐 그런거 있쟎아요. 6개월 남았다던가 1년 남았다던가 그런거요. 선생님들은 아시쟎아요.”

“저도 몰라요. 남은 기간이 얼마나 되는지 사람이 어떻게 알겠어요. 확실한 것은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사시겠지요.”

“저희도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솔직히 이야기해주세요. 저쪽 병원 선생님들은 한 6개월 정도 밖에 못 사실거라고 하시던데요.”

“아마 저쪽 병원 선생님이 그렇게 이야기 하진 않으셨을 것 같은데요.”

 소위 평균적으로 기대되는 평균 여명이라는 것은 있다. 치료를 받았을 때 통계적으로 평균 몇 개월 정도 살았다 라고 하는 수치인데, 그 평균이라는 것이 어디까지나 평균이기 때문에 그대로 맞아떨어지지는 않는다.

100명의 환자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가장 짧게 생존한 환자는 1개월 살다 돌아가셨고 가장길게 살다가 돌아가신분은 3년을 살았다고 해보자. 이들의 생존 기간을 일렬로 나열하여 가장 짧게 사신 분부터 가장 오래 사신분까지 쭉 나열했을 때 50번째 환자에 해당하는 생존기간 (이것을 정확히는 median survival, 중앙생존값이라고 한다)을 소위 평균적으로 기대되는 평균 여명으로 삼는다.

중앙생존값이 10개월이라고 하면 당연히 10개월보다 더 오래사는 사람도 있고 10개월보다 더 게 사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까 50%에 해당하는 중앙값을 써서 10개월이라는 숫자가 나오는 것이다. 여기에서 평균(Mean)이 아닌 중앙값(median)을 쓰는 이유는 환자들의 생존기간이 정규분포를 이루지 않고 편차가 너무 심하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재산 통계를 낼 때 정몽준 의원을 고 평균 재산을 내는것과 같은 원리이다.


 “정말 6개월 밖에 못사신다고 하시던가요?”

“저쪽병원 선생님은 틀림 없이 6개월 밖에 못사신다고 하셨어요. 제가 6개월이라고 말씀 하신 것을 똑똑히 기억합니다.”

“평균적으로 기대되는 평균 여명이라는 것은 있습니다. 치료를 받았을 때 통계적으로 평균 몇 개월 정도 살았다 라고 하는 수치인데, 그 평균이라는 것이 어디까지나 평균이기 때문에 그것보다 길기도 하고 짧기도 합니다. 당연히 개개의 환자에게는 틀릴 수 밖에 없고, 예측이 어렵습니다.”

“그래도 대략적으로라도...”

“제가 3개월 정도라고 하면 어떻게 하실 거고 6개월 정도라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또 1년이라고 하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치료가 달라지거나 준비하시는 것이 달라지나요?”

“네?”

 장마철에는 비가 많이 온다. 집중호우가 오기도 하고 태풍이 지나가기도 한다. 장마철에는 비에 대한 준비를 해야한다. 농가에서는 비닐하우스는 튼튼한지, 농작물은 문제 없는지, 축대는 튼튼한지 살펴봐야 한다. 집 근처에 제방이 있다면 범람하지는 않을지 만일 범람한다면 어떻게 대피해야 하는지 등을 준비를 해야한다.

그리고 이런 준비를 돕기 위해 기상청에서는 일기예보를 한다. 이번 주말에 강한 국지성 호우가 예상되니 주의를 하라는 일기예보를 한다. 일기예보는 슈퍼컴퓨터로 계산된 통계와 확률에 기반하여 날씨를 예측한다. 일기예보를 할때에도 내일은 무조건 비가온다는 식으로 보도하진 않는다. ‘내일 비올 확률 70% 정도되니 외출할 때에는 우산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겠다’ 라는 식으로 보도를 한다.

일기예보를 접할 때에는 일기예보가 얼마나 정확한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에 맞추어 내가 어떤 준비를 하는냐가 더 중요하다. 비올 확률이 50%라고 해서 우산을 준비 안했더니 비가 와서 고생했다고 기상청을 원망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비올 확률이 50%라는데 혹시 모르니 우산을 준비하는 편이 본인에게 더 유리하다. 설령 비가 안오고 일기예보가 틀려서 우산을 쓸일이 없더라도 말이다.

미래의 일은 늘 예측이 불가능하다. 인생은 본디 불확실한 것이며 인생이 예측가능한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사람은 늘 미래를 궁금해 하기에 점쟁이도 찾아가고 일기예보도 참고하지만, 미래가 예측가능한대로 된다면 인생이 얼마나 쉽겠는가. 미래를 예측하는 것도 과거와 현재를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이루어지는 확률싸움일 뿐이다. 일어날 확률이 95%여도 실제로 일어나지 않기도 하고, 일어날 확률이 0.0000001% 여도 일어나기도 한다. 그것이 인생이다.

 중요한 것은 예측이 정확하냐가 아니고, 예측에 따라 어떤 준비를 하느냐이다. 그리고 미래에 벌어질 여러 상황에 대비하여 미리 준비를 해두어서 손해 볼 것은 대개는 없다.

예후를 예측하는 것도 이와 같다. 평균적으로 기대되는 여명이 10개월 정도 된다는 것도 어디까지나 과거의 환자를 미루어서 분석해본 통계 숫자일 뿐이며, 나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

몇 개월 더 살지를 정확히 예측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남은 여명을 어떻게 의미있게 살지 준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은 마음가짐의 문제이다. 평균적인 여명이 6개월 내외라고 하더라도, 나는 6개월 밖에 못사는구나 6개월 뒤면 나는 죽는구나 이렇게 우울하게 생각하며 남은 기간을 좌절하고 원망하며 지낼 필요는 없다. 하지만 대부분, 정말 대부분은 그렇게 원망하며 우울하게 지낸다. 의사의 입에서 나온 평균적으로 6개월 내외라는 말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채, 6개월이라는 숫자만 머리속에 남아서, ‘나는 6개월 뒤에 죽는구나’ 이렇게 생각해 버리는 것이 문제이다. 그러고서는 6개월이라는 숫자에만 집착한 채 마음속으로 괴로워하며 지낸다. 6개월이 지난 후부터는 더 불안해 한다. 예정된 6개월이 지났는데 왜 나는 아직 안죽은 것일까 하며 언제 죽음이 나에게 다가올지 몰라 초조하게 하루 하루를 보낸다. 6개월이라는 숫자 때문에 마음만 안좋아져서 괴로운 것이다.

고식적인 항암치료를 하는 종양내과 의사로서 필자가 가지는 중앙생존기간(median survival)의 의미는 환자들이 가지는 의미와 조금 다르다. 필자에게 중앙생존값은 어떻게든 적극적으로 항암치료를 해서 남들 사는 평균만큼은 사실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의미로 다가온다. 치료를 열심히 해서 적어도 중앙생존기간만큼은 사실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일차적인 의사의 의무이다. 그러다가 중앙생존기간이 넘어가면 우선은 기본적인 내 할도리는 했다고 생각하게 된다.

간혹 내가 생각하는 중앙생존기간과 환자가 기대하는 여명이 너무 달라 힘들때도 있다. 나는 항암치료를 적극적으로 해서 1년정도 암으로 인해 고통받지 않고 편안하게 잘 사시는 것을 치료 목표로 삼고 있는데, 환자분은 5년은 사셔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그런 경우이다. 이런 경우 설명과 설득이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경우에는 현실적인 예후와 치료 목표에 대해 설명을 해야하기에, 이런 경우에는 구체적인 숫자를 이용하여 이야기 하곤 한다. 환자에게도 진실을 알리고 여러 모로 현실적인 준비할 시간을 드려야하기 때문이다.

 얼마나 더 사실수 있을지 예후를 정확히 예측하는 일은 어렵다. 오직 확실한 것은 우리는 모두 단 한명의 예외도 없이 죽는다는 것과 죽기 직전까지 살 것이라는 것뿐이다. 또 예후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이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준비를 하고 어떤 마음 가짐으로 투병생활을 하며 살아가느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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