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소설이 80년대에서 90년대로 넘어오면서, 80년대 소설이 추구했던 이상과 열정은 더 이상 소재거리가 되지 않았다. 대학생은 학생운동을 그만두고 취직을 위해 토익과 토플을 공부했고, 작가는 현실을 외면한 채 자신만의 세상을 꾸며나갔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삶 속에서 맥주와 담배의 브랜드가 자신의 정체성을 말해주는 도구가 되었다. 락카페와 버드와이저, 말보로로 상징되던 그 시절의 화려함 이면에 존재하던 퇴폐와 허무, 염세주의.

그 시대의 한쪽에는, 버드와이저냐 밀러냐를 선택하기에 앞서, 맥주를 마시는 것 자체가 사치인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90년대 한국소설에서 마치 없는 사람처럼, ‘유령’처럼 취급당했다.

작가 이명랑은 이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랐던 영등포시장에서, 90년대 한국소설로부터 외면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을 전면에 내세웠다.

 “애초에도 더럽게 박복한 팔자를 타고 태어난 데다 시선만 마주쳐도 고개를 외로 틀어야 할 만큼 혐오스러운 외양을 하고 있는 사람들, 그들의 세상살이에는 타인의 동정이나 연민이 단 한 번도 허락되지 않았던 사람들은 무엇으로 사는가? 그 인생에 ‘그러나’로 시작되는 히든카드 하나 뒤로 감추고 있지 못한 사람들은 그러면 무엇으로, 어떻게, 이 생을, 그 박복한 운명을 견디어내는 것일까?”

 저자는 이것을 화두로 하여 연작 <삼오식당>을 펴냈다.

영등포시장에서 살아온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그들만의 이야기를 수려한 입담으로 풀어낸 소설이다. 요즘 유행하는 소설처럼 강렬한 사건이나 자극적인 소재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영등포시장 사람들의 생활을 엿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롭다. 한국소설다운, 한국작가만이 쓸 수 있는 그런 멋진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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