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는 항상 올해를 어떤 주제로 닫으면 좋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제 주위에도 그렇고.. 힘들어하시는 분들이 많은 듯 하여
연말이지만 상큼하게 '불행'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불행할까요?

사는 게 다들 팍팍하시죠?
그런데 때로는 그냥 내가 유독 불만이 많고 만족할 줄을 몰라서 이러나..
나만 이렇게 불행한가 하는 생각도 들고
결국 다 내 탓인 것만 같아서 불행하지만 불행하다고 이야기하면 안 될 것 같고 그렇지 않나요? (저만 그렇다면 패스..)


물론 개인들의 행복에는 각자의 '성격'이나 '뭐든지 생각하기 나름이다'라고 할 때의 사고방식 등
'개인적 요소'들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지요.
우리가 속해 있는 '사회' 또한 우리의 행복에 어마어마하게 큰 영향을 줍니다.

사람들이 비교적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 사회가 있는 반면
사람들이 행복하게 가만 두질 않는, 다양한 제약과 압박이 큰 사회가 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런 사회적 측면에서 봤을 때 우리들은 상당히 행복하기 어려운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2010년 행복 연구의 대가인 Diener 연구팀이 리서치회사 갤럽과 함께
130개국을 대상으로 행복에 관한 조사를 했는데요
우리나라는 130개국 중 밑에서 15번째라는 처참한 순위를 기록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알아주는 '불행한 사회'라는 것이지요.

"]


위 표는 대략적인 '감'을 잡을 수 있도록 만든 표인데요

불행한 국가에 속하는 한국과 짐바브웨 VS.
행복한 국가에 속하는 미국과 유럽 국가들(여기서는 덴마크를 예시로)를 비교해 보면

미국과 유럽국가에서는 어제 즐거웠다고 하는 사람이 약 90%, 우울했다고 한 사람은 약 10%인 반면
우리나라와 짐바브웨에서는 어제 즐거웠던 사람이 60% 우울했던 사람은 30% 정도로
후자에서 비교적 사람들의 행복도가 낮다는 걸 볼 수 있지요.

(*행복을 측정할 때 여러가지 방법이 있겠는데
심리학자들은 주로 '정서적 행복-부정적 정서 대비 긍정적 정서'를 가지고 측정합니다.
'아~ 행복해'라고 할 때의 요 느낌을 행복이라고 보는 것이지요.)

근데 사실 이런 결과는 놀라운 게 아닌게
이전 다양한 조사에서도 우리나라는 항상 행복 순위에서 최하위를 기록했었고
게다가 자살률도 최고 수준이라 학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생명체가 살겠다는 본능을 포기하는 일이 많이 일어날 정도로 살기 힘들고 불행한 사회'라는 인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특히 행복을 연구하는 심리학자들이 '한국이 이렇게나 불행한 이유'에 관심을 가져왔고
여러가지 가능성들을 따져봤지요.

그 중 하나가 '돈이 없어서?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라는 것인데

다들 알다시피 각종 경제적인 지표들만 놓고 봤을 때 우리나라는 세계 TOP에 속하는 편이지요.

그리고 돈은 행복에 필수적인 요소이지만 '먹고 살만한 수준'을 벗어나게 되면
더 이상 사람들의, 한 국가의 평균 행복도에 별 영향을 주지 않게 된다는 게 대다수의 발견들입니다.




그래프를 보면 가로축이 '소득(US달러)'이고 세로축이 행복도인데
소득이 늘수록 행복도가 어느정도 늘다가 어느 순간(4000)이 되면 기울기가 감소되는 모습이 보이지요?
그래서 학자들은 행복에 돈이 미치는 영향은 "declining marginal utility(줄어드는 한계 효용)"을 따른다고 이야기 하지요.

즉 ㄱ) 당장 먹고 살기 힘들 때는 돈이 행복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치지만
ㄴ) 돈이 생존의 문제를 결정짓지 않는 순간이 오면 행복에 돈이 미치는 영향은 미미해 진다는 것이지요.

저명한 심리학자 카네만의 연구 중
돈이 많아지면 '이정도면 난 행복한 것 같아'라는 '생각(인지적 평가)'은 하게 되지만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실제 행복감은 늘지 않는다는 연구도 있었고요.

이래서 학자들은 "한국이 돈이 모자라서 불행한 것 같진 않은데.. 그럼 뭐가 문제일까??"라며
사회적 요소들에 눈을 돌리게 됩니다.
[caption id="" align="aligncenter" width="392" caption="[한국과 짐바브웨의 물질적 풍요도 비교 (출처: Diener et al., 2010)
물질적으로는 이렇게나 차이가 나는데
행복도에는 별 차이가 없다는 이상한 사실은 연구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했지요] "]



1. 집단주의 문화와 자아가 없는 개인들
예전 글(

실제로 (집단주의가 이득이 되는 부분들도 많지만) 적어도 '행복'에 있어서는

집단주의 문화가 좋지 않다는 연구들이 많았지요.

그래서 연구자들은 '과도한 집단주의 문화와 그 속에서 자유롭지 못한 개인들'을
우리나라 사람들이 불행한 한 가지 원인으로 꼽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중 자기 일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하고픈 일을 하며 사는 사람들)이
비교적 적다는 점도 지적했고 말이지요.



2. 믿을 수 없는 타인과 시스템, 그리고 물질주의


그 다음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불행한 원인으로 중요하게 지적되는 것이 '물질주의'와 '사회적 부패'입니다.

물질주의는 '뭐니뭐니해도 돈이 최고'라며 다른 어떤 가치들보다 물질적 가치를 중요시하는 태도인데요
예컨대 '돈을 위해서라면 남을 속이는 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친구보다도 돈이 더 중요하다'
라는 인식과 맞닿아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런 물질주의가 굉장히 높은 사회 중 하나에요.

Diener 팀의 조사에 의하면 물질주의 정도(10점 만점)에 있어 미국이 5.5,
물질이 간절한 나라인 짐바브웨가 5.8점을 기록한 반면
우리나라는 7.2로 상당히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미국 심리학자들도 만날 자기네 사회에 전반적인 물질주의가 올라가고 있다고 난리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뭐 이 정도는 귀여운 지 오래이지요ㅎ

그리고 연구들에 의하면 이런 물질주의는
돈에 집착하는 사이 돈보다 행복에 훨씬 중요한 삶의 여유나 인간관계 등을 경시하게 만들어
사람들을 불행의 구렁텅이로 밀어넣곤 하는 행복에 크나큰 마이너스 요소입니다.

자 근데 우리나라는 왜 이렇게 물질주의가 높을까요??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많은 연구들에 의하면
사람들이 물질을 '이상 수준으로' 추구하게 되는 한 가지 중요한 경우는
'두려울 때'입니다. (참고:
죽음에 대한 심리학의 발견들)

예컨대 '죽음'에 대해 떠올려보게 하면 물질에 대한 욕구가 커져서
길 가다가 1000원을 주워도 더 기뻐하게 된다는 연구들이 있었지요.

911 테러 직후 소비가 엄청나게 상승했다는 연구들도 있고..

위험이 예상될 때 안전을 보장받겠다며 물질을 축적하는 현상인 '사재기'는 아주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고요.  

우리의 생존과 안전을 지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가 돈과 물질이거든요.
따라서 사람들은 안전에 위협을 느끼거나 두려움을 느끼게 되면 평소보다 높은 수준의 물질주의를 보이게 됩니다.

결국 '내가 나 스스로를 지켜야 된다'고 느낄 때 '돈만이 나를 구원해 줄 수 있어!'이렇게 된다는 건데
이를 "terror management account of materialism(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물질주의)"라고도 해요


그러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독 물질주의가 높다는 것은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위협을 많이 느낀다는 걸까요?
만약 그렇다면 왜 그럴까요?


여기에 대해서 한 가지 힌트를 얻을 수 있는 게 'Psychosocial Wealth(심리사회적 풍요?)'에 대한 설명입니다.

개인들이 생애에서 마주칠 수 있는 다양한 위협에 대해
사회적 시스템에서 어느정도 버퍼를 쳐 주는 것을 '사회적 안전망'이라고 하잖아요

심리사회적 풍요도 비슷한 역할을 해요.  
타인에 대한 신뢰: '내가 위험할 때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가?'
시스템에 대한 신뢰: '내가 노력한 만큼의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이 사회의 룰은 공정한가?'
와 관련된 것들인데

아무래도 주변 사람들, 사회를 믿고 의지할 수 있을 때,
즉 '어려울 때 도와줄 사람들이 있어'
'노력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를 거둘 수 있으니까 불안해 할 필요 없어'
라고 여길 때 사람들은 '안전감(sense of safety)'을 갖게 되겠지요.

반대로 어려울 때 도와줄 사람이 단 하나도 없다고 여기고
노력과 결과가 매치가 안 되서 앞날이 예측 불가능하다고 하면
얼마나 불안하겠어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타인에 대한 신뢰도나 사회 시스템에 대한 신뢰 둘다 낮은 구조입니다.

타인에 대한 신뢰는
한국인의 20%가 (미국과 유럽국가들은 3~4%대)
'위기시에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다'고 응답했다는 충격적인 조사 결과가 있었고

'타인들로부터 하나의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절반 밖에 안된다(미국과 유럽은 90%대)는 또 충격적인 결과가 있었지요.

연구자들은 결국
"한국인의 1/3이 자신의 삶이 안전하지 못하다고 느끼며
반절이 인간으로서 존중 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낀다"는 결론을 내렸지요.


또 사회 시스템에 대한 신뢰의 경우

World Bank에서 2009년 산출한 국가 부패 지수에서 한국은 180개국 중 39위를 차지했지요.

주변만 봐도 사회 곳곳이 었다며 한탄하는 소리들이 많이 들리고 말이지요.


연구자들은 결국
"낮은 수준의 사회적 지지와 신뢰도, 높은 수준의 부패, 인간으로서 존중받지 못하는 느낌, 불안 등이 모두
한국인들의 행복 수준을 낮추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들이다" 라고 보았어요.


ㄱ)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람이나 시스템이나 아무것도 의지하지 못한 채 외롭고 불안하다는 것
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뭐니뭐니해도 돈!!'이라며 물질주의만 높아지고 삶은 점점 구렁텅이로..

이런 그림인데..

휴... 깝깝 (...)



앞선 문화 이야기와 함께 정리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심각한 불행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결국

ㄱ) 지나친 집단주의에서 탈피해서 개인이 자신의 삶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는 자유'를 부여해 주는 것과
ㄴ) '안전감'을 느낄 수 있도록 심리사회적 안전망들을 구축해주는 것
이 꼭 필요할텐데요

아직 참 갈 길이 멀게만 느껴집니다ㅎㅎ

여튼 우리가 이렇게 불행한 데에는 '사회 구조의 책임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일단 결론으로ㅎ
그런 의미에서 글의 제목은 사회로부터 '만들어진 불행'으로 정했습니다

사람들의 불행에는 사회적 요소의 영향이 분명 존재하는데
'이게 다 니들이 나약해 빠져서 그런거다'라며 개인의 책임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이야기들만
너무 많은 것 같다는 게 개인적인 감상인지라 (...)


어떻게 해야 할까? 라는 이야기를 하기 전에
문제가 어디서부터 오는 건지 '직시'하는 게 먼저겠지요
그래야 진짜 생산적인 논의들이 가능하겠고요

더 이상 개인들을 불행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
사회적 차원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불행은 개인적 문제만이 아닌 '사회적 문제'라는 공감대가 형성되면 좋겠다는 소망입니다 :)



+) 문득 든 생각인데..
연구들에 의하면 한 사회의 '민주주의(권력이 평등하게 나뉜 정도)' 정도가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행복도 평균을 잘 예측하거든요
민주주의적인 국가일수록 그 사회의 사람들이 행복하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개개인을 부품으로 보는 집단주의 문화에서는 민주주의가 성립하기 어려운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민주주의는 개인들이 부품이 아닌 '주인'이 되겠다는 건데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부품이면 부품답게 '니 본분에 충실해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리는 것 같거든요.

예컨대 "학생이, 사제가, 노동자가, 공무원이, 교수가 무슨 정치야~"라던가..

결국 개인들을 통제하려는 그 흔한 오지랖과 꼰대질들이
이렇게 저렇게 민주주의에까지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갈 길이 멀겠네요 ;)


참고: Diener, E., Suh, E. M., Kim-Prieto, C., Biswas-Diener, R., & Tay, L. S. (2010). Unhappiness in South Korea: Why it is high and what might be done about it.Seoul, Korean Psychological Associ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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