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시작하기가 쉽지 않다.  너무도 익숙해서 별다르게 생각하지 않았던 '말하는' 기능을 청각장애인들의 입장에서 다시 생각하기란, 근본에서부터 아주 다른, 완벽히 새로운 개념영역이기 때문이다.  보편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생성되는 새로운 개념영역이 아닌, 전혀 다른 세계, 전혀 다른 공간의 영역이기에 이해는 더더욱 어렵다.  그래서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쓰는 독후감에 나의 이해가 제대로 녹아들어 있는지 스스로 판단하기가 어려워진다.

귀와 입은 신호의 입력과 방출의 기능으로서 상호작용하는 기관이다.  즉, 귀로 들어오는 소리자극을 입으로 소리를 냄으로서 반응하게 되는데, 청각장애인들은 귀로 들어오는 자극이 차단됨으로서 입으로 내보내는 반응력을 동시에 상실하게 된다.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그들은 결국 수화를 배워야만 하는 장애우가 될 수 밖에 없다.  그것이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간에 말이다.  이게 보통의 장애가 없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청각장애인의 모습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너무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에게 수화는 그들의 훌륭한 의사표현 수단이지만, 우리는 그들만의 수화세계가 존재하는지 알지 못한다.  단지 소리로 표현되는 언어를 수화로 번역한 제도수화가 있다는 정도의 이해만 있을 뿐, 그들에게도 그들끼리의 자생적인 수화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한반도에서 한국말이 자생되어 나타났고, 영국에서 영어가 자생되었으며, 러시아, 동남아 등에서 자신들만의 언어가 발생했듯, 청각장애인들도 그들끼리 만나 교류하면서 지역마다 독특한 수화가 발생했다.  제도수화는 단지 듣고 말할 줄 아는 사람들과 그들을 잇기 위해 만들어진 약속기호일 뿐, 자생적인 수화와는 차이점이 있다.  결국 그들만의 공간과 문화를 우리는 소수자라는 이유로, 또는 이해하지 못해 존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수화는 독특한 면이 있다.  상대방과 집중하듯 서로 마주보며 턱과 입모양, 팔 그리고 손가락이 3차원 또는 4차원 공간에서 펼치는 화려한 움직임은 그들로 하여금 놀라운 집중력과 공감각을 발달시켰다.  감각기관을 잃은 대신 다른 감각이 예민해지고 발달하는 것이다.  그런 그들이 각기 다른 수화권에 살면서도 처음 만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뜻을 서로 알아차리고 대화가 가능해진다는 점도 독특하다.  한국말을 하는 한반도 사람과 영어를 하는 영국사람이 처음만나면 전혀 대화나 이해의 교류가 불가능한데 말이다.  선천적 청각장애와 후천적 청각장애 역시 다르다.  후천적 청각장애는 소리언어의 이해감각력을 지닌채 수화를 하지만, 선천적 청각장애는 전혀 다른 이해력, 공감각력을 지닌다고 한다.  그래서 뇌의 활용부위도 전혀 다르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들은 전혀 다른 사고체계와 지각력, 그리고 근본적으로 매우 다른 그들만의 문화와 이해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  


그런 그들을 듣고 말할 줄 아는 사람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은 인간의 존엄이 중시되는 사회인지라 그렇지 않았지만, 이전의 그들은 단지 듣고 말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정박아 취급을 당했다.  지금에서는 그들의 발달된 다른 감각과 사고력을 존중하고 활용의 기회가 주어지긴 하지만, 여전히 그들은 이해받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그들만의 세계가 필요했다.  저자가 말하는 그들만의 조용한 수다, 조용한 소음..  수많은 청각장애인들이 만나 소리없이 서로 만들어내는 눈빛과 팔의 화려한 향연은 그들이 일상의 공간에서 얼마나 이해받지 못해왔는가에 대한 반증이었다.  그들만의 공간에서 느끼는 안도감과 해방감은 그들이 존중받아야 하는 문화와 이해가 있음을 느끼게 해 준다.  그런 그들의 문화와 공간까지도 듣고 말할 줄 아는 사람들이 통제하려는 시도는 이 책에서도 소개된다.  여전히 그들은 도와주어야만 하는 약자이자 소수자로서 이해하던가 이해되어야만 하는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공지영의 소설 '도가니'에 소개된 농아학교의 실제사건이 존재했다.  



쉽게 나의 느낌을 적어내지 못한 것은 내가 여전히 그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함을 알기 때문이다.  너무도 새로운 그들만의 세계와 공간을 만났기에 마음은 놀라움 자체에서 쉽게 더 나아가지 못한다.  그만큼 내가 인간의 영역에서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세계가 존재함을 몰랐던 것이고, 그들은 여전히 이해와 존중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었다.  수화를 배우자는 운동이 얼마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수화를 통해 청각장애인들과의 대화는 어느정도 가능하겠지만, 우리는 수화너머의 그들의 세계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일까?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어쩌면 수화의 세계를 이해한다는 일은 '대단히 충격적인 사건'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릴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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