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디언에 기사가 하나 올라왔는데(http://www.theguardian.com/commentisfree/2014/feb/21/food-banks-dignity-hungry-denial-crisis?CMP=fb_gu) 영국도 경제난으로 정부의 긴축이 심해지면서 사회보장제도가 많이 무너져 가고 있다. 기본적으로 정부에 의한 사회안전망이 잘 갖춰져 있는 영국이지만, 그 외에도 빅토리아 시대 이래로 종교단체가 개인들이 운영하는 다양한 자선사업들이 그 빈자리를 메꾸고는 한다. 이런 상황에서 빈곤층이 늘어나고 영양결핍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푸드뱅크라는 시스템을 운영하게 되었는데, 교회 같은 곳에서 필요한 사람들이 음식을 배분 받는 구조다. 여기서의 문제는 공개적인 장소에서 음식을 받아와야 하는 구조가 필요한 사람들의 존엄성을 지켜주기에 충분하냐 하는 점이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사회 안전망은 그런면에서 비교적 덜 수치스러울 수 있는 장점이 있다는 것이다.

대체로 물질적으로 부족한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전해주는 기부/자선/원조 행위들은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으나, 일단 급한대로 퍼준다는 식의 접근법이 받는 사람들의 기분이나 존엄 등은 고려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효과성이나 자원에 제약 때문인 경우도 있지만, 부족한 사람들에게는 일단 당장의 허기를 면할 수 있는 것, 당장의 추위를 피할 수 있는 것 등으로 전달되는 경우가 많다. 즉 당장 뭐가 없는 사람들에게 최소한이라도 해주어야 하는 것 아니겠냐는 그런 태도인데, 맞는 말이지만 범위가 그 이상으로 확대되어 가는 경우도 많다. 예를들어 최근 이슈가 되었던 아프리카예술박물관의 이주노동자 착취 사건을 보자. 빈곤한 아프리카인들에게 ‘이 정도라도 해주는게 어디냐’는 식의 태도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그렇다. 현지에서 하나를 해주면 요구하는게 한도 끝도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 한다. 우리에게 당연한 것들이 제대로 제공되지 않는 환경에서 하나가 생겼을 때 다른 것을 요구하는 것이 과연 잘못된 일인가.



예전에 이런 허황된 생각을 해본적 있는데, 빈곤지역에 사치품 보내기, 혹은 헌옷 모으기 대신 새옷 모으기 같은걸 해보면 어떨까 했었다. 왜 빈곤하면 더 낮은 대우를 받아야 하고 더 값싸고 덜 좋은 것을 요구해야만 하는가. 왜 헌옷과 값싼 물품, 질 낮은 음식, 적정기술 같은 최소한에 만족하라고 계속 길들여야 하는가. 그런 의미에서 새옷을 모으고, 가장 좋은것, 가장 훌륭한 것, 최소한이 아닌 최대한을 지원하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건 너무 큰 욕심인가. 지역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한 개발이라는 이유로 욕구와 요구를 거세시키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물론 지역의 단계적 개발이나 시장 왜곡 등을 막기 위해서라는 논리적 연계성은 이해하지만, 그런 테두리에서 너무 자신을 합리화시키고 있는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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