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더덕 기생충이 궁금해져서 열심히 뒤져보고 있었는데. 의외로 미더덕을 통해 감염되거나 미더덕을 감염시키는 기생충에 대한 정보들은 별로 찾을 수가 없었다. 대신 검색된 논문이 “스파르가눔 감염에 의한 호산구성 흉막염으로 추정되는 환자 1명에 대한 프라지콴텔 치료경험 보고”라는 논문이었는데. 대체 스파르가눔증이 미더덕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혼란에 빠져 읽어보고 있자니 기왕력을 기술하는데 이런 대목이 나온다.

"환자는 40년전 뱀, 개구리를 생식한 기왕력이 있었고, 10년전 개인의원에서 우측 옆구리 피하조직의 종괴를 적출 받았다. 환자 기억으로 피부색은 정상이었고 종괴의 모양과 색깔이 미더덕과 흡사하였다."

즉 10년전 스파르가눔으로 추측되는 종괴를 제거하는 수술을 했는데 환자 기억으로 그것이 ‘미더덕’을 닮았다는 이야기다. 여태까지 여러 사례보고를 읽어보았지만 지금까지 머리속에 이렇게까지 생생하게 그려지는 병변 설명은 읽어본 적이 없다. 미더덕을 닮은 종괴라니.

어쨋든 논문에서는 프라지콴텔을 이용한 스파르가눔 치료를 설명하고 있다. 대체로 스파르가눔은 약물에 잘 반응하지 않는 편이라 환자가 증상을 느낄 때 외과적으로 적출해 내는 방법을 주로 사용해 왔었다. 여기서는 수술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부위에 스파르가눔이 기생하고 있어 프라지콴텔을 투여하는 방식을 이용했는데, 완전히 제거했다기 보다는 성공적으로 활동을 억제했다고 보고 있는 듯. 사실 이런 방식이라면 억제로 침습적인 외과적 적출을 시도하는 것 보다도 정기적인 프라지콴텔 투여를 통해 활동을 계속 억제하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지 않을까 싶은데, 환자들이 기생충이 몸 안에 계속 남아있다고 하면 좋아하지 않겠지…

처음에는 별 달리 떠오르는게 없어서 미더덕이 꽤 특이한 경우라고 생각했는데, 댓글을 주고 받다보니 의학에서 음식을 비유로 쓰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혐오스러울 수도 있는 각종 증상들을 음식에 비유한다는 것이 이상해 보이기는 하지만,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음식물은 직관적인 설명을 제공해주기 때문에 진단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자주 쓰이는 것은 베리 종류의 과일이다. 딸기는 그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자주 쓰인다. 딸기 담낭은 콜레스테롤 침착으로 비대해진 증상을 말하고, 딸기 혀는 카와사키병등 영양결핍에서 혓바닥의 유두가 부어오르는 증상을 말한다. 딸기 혈관종은 유아기에 나타나는 양성종양을 말한다. 급성 자구경부염에서 나타나는 증상을 딸기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 다음으로 많이 쓰이는 것이 사과. 대표적으로 영어권에서는 목젓을 아담의 사과라고 하고, 헤모필루스 인플루엔자의 증상에서 나타나는 초록색 가래를 풋사과 색이라고 하기도 한다. 심상성 루푸스에서 나타나는 슬라이드 형태를 사과 젤리라고 부른다. 그 외에 과일 일반의 냄새를 쓰기도 하는데 당뇨병성 케토산증에소는 과일향과 비슷한게 나고, 녹농균은 포도 비슷한 냄새를 풍긴다. 포도 종류도 자주 쓰이는데 대표적으로 포도상구균이 있다. 

기생충, 특히 흡충류들에 쌀알이나 좁쌀처럼 보인다는 표현을 많이 쓴다. 결핵 중에도 다른 기관으로 퍼져나간 것을 속립성 결핵이라 부른다. 복부에 결핵이 퍼졌을대 촉진해보면 밀가루 반죽 같은 느낌(doughy)이 난다는 표현을 쓴다. 진균성 부비동염에서 나오는 분비물을 땅콩버터에 비교하고, 장티푸스 감염자가 곡물을 섭취하면 갓 구운 빵 냄새가 난다고 하기도 한다. 콜레라의 대변은 쌀뜨물 - 아침햇살에 더 비슷한것 같기도 하지만 - 에 자주 비유되고. HIV 환자에서 자주 나타나는 진균 감염인 히스토플라즈마증을 X선 촬영하면 나타나는 병변을 팝콘에도 많이 비유한다. 야채 중에서는 콜리플라워가 자주 등장하는데, 레슬링 선수처럼 자주 귀에 상처를 입어 말려들어가는 증상에 쓰기도 하고, 사마귀 모양도 자주 콜리플라워에 비교된다. 

고기나 해산물을 비유로 그리 자주 쓰이지는 않지만, 아메바성 이질에서 나오는 초록색 점액을 앤쵸비 페이스트에 비유하고, 기생충 중에는 게(crab)으로 자주 등장하는 사면발이가 있다. 음료 역시 자주 등장하는 주제 중 하나인데, 사구체신염등 신장에 문제가 있을때 나타나는 갈색 오줌을 콜라나 홍차 색으로 자주 이야기 한다. 철 중독증에서 나타나는 핑크색 오줌을 로제 와인으로 자주 비유하고, 상부 소화관 출혈이 있을때 나타나는 토혈을 갈린 커피원두로 비유한다. 또 연주창에서는 상한 맥주 냄새가 난다고 한다. 

향신료 중에서는 소금후추가 압도적이다. 선천성 매독에서 나타나는 망막증의 특징은 소금후추와 비슷하다고 하고, 다발성 골수종을 X선 촬영했을 때 두개골쪽에 소금후추를 닮은 특징이 나타난다고 한다. 만성 담도폐색에서 나타나는 간의 형태는 육두구(넛멕)에 비유하곤 한다. 치즈나 우유 종류는 쉽게 상상할 수 있듯 고름이나 분비물에 자주 비유하는데, 칸디다성 질염에서 나타나는 분비물은 코티지 치즈로 설명하고, 마이코박테리아성 질환(결핵 등)에서 나타나는 괴사를 치즈형 괴사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실 보면 제법 많은 음식물들이 우리들에게 익숙하고 - 육두구는 좀 너무했지만 - 직관적으로 연상되기도 한다. 하지만 의학교육이 영미권 중심을 벗어나 아프리카나 기타 지역으로 확대되면서 문제가 생겼다. 음식 문화가 크게 다른 지역에서는 많은 비유들이 먹히지 않게 된 것이다. 특히 아프리카 등의 지역에서는 교육 자료 개발 과정에서 영미권의 텍스트를 그대로 가져다 썼기 때문에 문제가 되었다. 

90년대 나이지리아 의대에서 진행된 연구들을 보면 올리브를 실제로 보았던 학생은 13%, 딸기를 실제로 본 학생은 25%에 불과했다. 증상 중에 딸기와 관련된 비유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떠올려보자. 이 식재료들을 본적 없는 학생 중 딸기 혈관종을 정확히 진단할 수 있었던 학생은 불과 3.8%였다. 반면 커피, 콜라, 소금후추, 쌀 같은 익숙한 음식물에 비유된 증상을 맞춘 비율은 30-61%로 큰 차이를 보였다고 한다. 비유라는 것이 교육적인 측면에서나 이해, 암기 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주지만, 해당 문화권 내에서 충분히 받아들여질만한 기반이 없다면 오히려 독이 되기도 한다.

참고문헌 : 최민호, et al. “스파르가눔 감염에 의한 호산구성 흉막염으로 추정되는 환자 1 명에대한 프라지콴텔 치료경험 보고.” Infect Chemother 44.6 (2012): 522-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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