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 단체들이나 사회적 기업들을 보면 ‘착한’이란 수식어를 달고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착하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기관이나 단체에 소속된 모든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하는 모든 활동과 행동들 또한 착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심어 주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착하다는 이미지는 그들 모두에게 의도되지 않은 희생을 강요하고, 외부의 비판에 적절히 대응하거나 내부의 목소리를 묻어버리는 역할도 한다. 그리고 착하다는 이유로 모두를 만족시키고 불편하게 만들지 않도록 강요하기도 한다. 모금을 기반으로 하는 사업을 진행하는 입장에서 대외적인 이미지는 사업을 지속시킬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중요한 장치다. 그런 면에서 이런 치장은 필수적인 과정이기도 하다. ‘아니 좋은 일 한다는 사람들이 모금해준 돈으로 월급 받아서 비싼 커피 사먹고 그러면 쓰나?’ 같은 비난에도 아무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실제로 착한 일을 하는 것 보다도 착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모두에게 그저 ‘잘 대해주는’ 형식상의 착한 일이 더 많다.

기독교계 NGO에서 자주 인용하는 성경 구절 중 하나는 로마서 12장이다. “자선을 베푸는 사람은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한다” 혹은 “불우한 사람들과 더불어 일하는 사람이라면, 그들 때문에 화를 내거나 우울해지지 않도록 하십시오. 늘 얼굴에 미소를 띠고 일하십시오”로 번역된다. 물론 여러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겠지만, ‘늘 미소를 지으며 일하라’는 것은 전형적인 감정 노동이다. 왜 NGO 노동자들은 감정 노동을 강요 받아야 하는가. 왜 꼭 기쁜 마음으로 일해야 하는가. 부당함에 분노하여 일 하면 안되는 것인가. 아니면 확고한 논리에 기반하여 냉철한 이성을 기반으로 옳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 하면 안되는가.

일반적으로 착한일=좋은일=옳은일이라는 등식이 자연스레 성립한다. 심지어 이런 등식은 NGO 내부에서도 통용된다. 하지만 착한 일이 꼭 옳은 일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점차 깨달아 가면서 노동자들은 그 안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고 번아웃 되어간다. 착한 일이나 좋은 일이 꼭 옳은 일인가를 기관이나 단체 입장에서는 고민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잘 대해주고, 적을 만들지 않으면서 옳은 일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지금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타협과 절충의 과정에서 옳은 일 대신 착한 일을 하도록 강요 받고 자신의 감정을 소모 당하기를 강요 받고 있다.

산타 할아버지는 착한 어린이에게 선물을 주신대. 하지만 산타 할아버지가 환상임을 깨달았다면 착한 일이라는 환상에서도 깨어날 때가 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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