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보건복지가족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는 최근 심각한 경제난을 이유로 유례없는 건강보험료 동결을 결정했습니다. 건정심은 이와 함께 난치성질환자 본인부담을 낮추는 등 5개 항목의 보장성 확대 방안을 마련하고, 이를 위한 재원은 종합전문병원의 외래 본인부담률을 현행 50%에서 60%로 인상하여 마련하기로 했구요. 건정심의 이같은 결정에 따라 내년도 수가인상률도 최저 수준에서 결정될 공산이 커진 셈입니다.





불경기로 인해 국민들의 주머니 사정이 나쁜 점을 고려하면 이번 결정은 일견 국민을 위한 좋은 결정으로 보입니다. 종합전문병원을 주로 이용하는 환자들의 부담이 커지기는 하겠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같은 보험료를 내면서 좀 더 많은 혜택을 누리게 되기 때문이죠.









하지만 건정심의 이번 결정은 장기적으로 볼 때 크게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알고 있듯이, 현재 우리 의료의 문제점은 단시일 내에 전국민의료보험 제도를 구축하느라 적정 수준보다 낮은 보험료를 책정한 데서 문제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정치적 논리에 의해 보험료 인상이 제때에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상태가 악화된 것이죠.





2000년 이후 건강보험료가 과거에 비해 크게 인상되면서 그에 따른 저항도 있기는 했지만, 그 과정을 겪으면서 많은 분들이 사회보험으로서의 건강보험의 특성을 더 많이 이해하게 되었고, 우리의 문제점을 알게된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우리 의료의 여러 문제점들이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낮은 건강보험료 때문에 비롯된다는 것을 아시는 분이 많아진 것이죠. 국민 인식이 바뀌고 있는 시점이기에 정부의 태도도 바뀌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정부는 국고지원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거나 건강보험 부과 체계가 불합리하다거나 급여 체계가 일부 잘못됐다거나 하는 점은 개선하지 않고 보이는 것에만 신경쓰고 있습니다. 지금의 상태가 계속된다면 의료기관은 수익성에 치중할 수밖에 없어지고, 이는 의료 서비스의 질과도 직접 연관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좀 더 많은 보험료를 내고 좀 더 많은 혜택을 누리는 방향으로 우리 건강보험이 발전해야 합니다.





이번에 건강보험료가 동결된 근본 원인은 경제난일 겁니다. 하지만 IMF 시절을 포함하여, 우리 건강보험료가 동결된 것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입니다. 건강보험은 단순한 비용이 아니라 어려운 시기를 대비하는 ‘보험’이기에 경제가 어려울수록 건강보험의 보장성은 특히 중증 질환을 중심으로 확대되어야 하고, 그를 위해서라도 건강보험료는 적정 수준으로 인상되는 것이 옳습니다.









건강보험료의 결정을 비롯한 건강보험 재정 추계는 장기적 전망과 철학을 바탕으로 하여 행해져야 하지 그때그때의 정치 경제적 상황 논리에 휘둘려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이번 동결 결정은 단기적으로는 이미 심각한 수준으로 왜곡된 우리 의료를 더욱 뒤틀리게 만들 가능성이 큽니다. 더구나 이를 지적하는 의사들의 이야기가 혼자 살겠다는 이기적인 이야기로 취급될 수 있기 때문에 무척 조심스럽고, 이 때문에 가뜩이나 약해진 의사와 환자, 의사와 보험자의 신뢰 관계가 더욱 위태롭게 될까 우려스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번 조치가 장기적으로 볼 때 향후의 보험료 인상을 더욱 어렵게 만들어 우리 의료 시스템의 문제를 해결하기 더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건강보험료는 최대한 적게, 그 혜택은 최대한 많이 누리는 것은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앞으로 이 건강보험제도를 유지하려면 그에 따르는 부담을 늘릴 수 밖에 없는 실정입니다.





정부가 보험료를 동결하면서 보장성을 확대하는 정책은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교묘한 방법으로 외형상으로만 보장성이 확대된 것처럼 보이게 하거나, 공급자를 더욱 쥐어짜면서 의료 왜곡을 부추기는 것이죠. 어느 경우이든 머지않아 더 큰 문제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정부는 알아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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