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19.8.26 월 10:57
상단여백
HOME Column
환자안전법이 놓쳐서는 안되는 것, 바로 수가 문제다

존스홉킨스도 위험한 병원이었다


2014년 늦은 가을, 신해철씨 사망을 즈음해 이전부터 책장에 꽂아만 두고 있던 ‘존스홉킨스도 위험한 병원이었다’를 꺼내 읽었다. 저자 피터 프로노보스트는 중심정맥관감염과 탈수로 사망한 조시 킹이라는 어린이가 겪은 비극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책을 썼다.

일명 ‘종현이법’이라고 하는 환자안전법이 4년간의 제정운동을 통한 기나긴 논의와 조정을 거쳐 지난해 12월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종현이도 한국의 조시 킹이 될 수 있을까. 진정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사실 빈크리스틴 사고는 종현이 이전에도 몇 건이 더 있었다. 일부 병원에서 재발방지를 위한 시스템개선을 해왔던 것이 사실이지만, 개별 사건과 개별 병원의 차원에 국한된 예방활동에 그쳐왔다. 이번에 국회를 통과한 환자안전법에서는 300병상 이상의 병원에서는 ‘환자안전위원회’ 및 ‘환자안전 전담인력’을 갖춰 같은 사고가 또 발생하지 않도록 했다.

전공의의 과로와 수면박탈이 환자 안전을 위협할 수 있음은 연구를 통해 상당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전공의가 아닌 종합병원의 30~40대의 주니어급 의사들 역시 일에 치인다. 환자 진료 업무 말고도 연구와 교육은 물론 각종 행정업무와 위원회 참석, 학회관련 업무, 기타 ‘잡무’로 찌든 상태다. 심지어 전공의 정원을 채우지 못한 일부 병원에서는 당직까지 서야 할 형편이다. 필자만 하더라도 몸담고 있는 위원회가 10개고, 핵심적인 조정업무를 맡고 있는 것만 3개나 된다.

대학병원에서 학생교육까지 도맡아 해야 하는 젊은 교수들의 업무부담은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환자안전법이 단순히 법에 명시된 환자안전위원회와 전담인력고용조건을 충족시키는 방향으로만 기계적으로 진행된다면 분명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다.

주니어급 전문의 또는 교수들과 몇몇 수간호사, 책임간호사급을 끌어들여 환자안전관리전담팀을 구성한다. 간호사 한명은 간사를 맡아 ‘전담인력’으로 지정된다. 몇 차례 맥 빠진 회의가 지속되고 의사들은 바쁘다며 (실제로 바쁘니까) 참석률이 저조하다. 간사는 위원들의 서로 맞지 않는 일정을 조정하여 회의 자체의 성원을 충족시키는 것에 에너지를 소모하다보니 지치기만 한다.

제출해야 하는 서류작업을 나누어 맡고 점검하는 지루한 과정 속에 실제로 나아지는 것은 없다. 점차 구성원들은 자기 시간만 빼앗기고 있다는 생각 속에 한숨과 분노만 늘어간다. ‘인증제와 다를 게 뭐냐’, ‘중복으로 하는 일 아니냐’는 불만도 커져간다. 이런 과정들은 ‘환자 안전’과는 거리가 멀다. 분명 환자안전법 제정을 위해 노력해온 환자들과 구조적 의료과실의 피해자들이 바라는 것도 아닐 것이다.

병실전담전문의 및 간호인력의 실질적인 고용확대, 이를 뒷받침할 입원료의 현실화가 동반되지 않는다면, 위원회의 활동만으로는 분명 환자 안전확보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6인병실의 입원수가는 가장 비싼 상급종합병원도 5만원, 병원급은 2만 8,000원 정도에 불과하다.

이 수가로 충분한 수의 전문의와 간호사를 선발하고 훈련시키며 기본적인 위생관리, 보안, 시설관리 및 보수에 더하여 병실안전까지 챙길만한 비용이 되는 것인지 검토가 반드시 필요하다.

또 실제로 얼마나 안전해졌는지 모니터링을 통해 객관적인 데이터로 확인해야 한다.

여기에도 역시 상당한 비용이 들어간다. ‘존스홉킨스도 위험한 병원이었다’에서도 저자는 환자 안전활동과 연구에 필요한 재원을 어떻게 확보하였는지의 과정을 매우 중요하고도 절실하게 다루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환자안전법에서는 전담인력을 두고 있는 의료기관에 경비를 보조할 수 있다는 조항만 있을 뿐, 전반적인 시스템개선을 위해 투자를 장려하지는 않고 있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언론의 보도처럼 ‘제대로 지켜지기만 하면 연간 1만 7,000명의 사망을 막을 수 있다’는 식으로 법만 지키면 된다는 전망은 지나치게 낙관적이다.

환자안전은 단기적으론 돈이 든다. 물론 길게 보면 예방 가능한 사고로 인한 생명의 손실과 단축을 막을 수 있으니 사회로써는 비용을 절감하는 길이 될 수도 있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환자안전법이 의료기관에 또 하나의 규제가 아닌, 안전과 질 향상을 위한 투자가 되도록 해줘야 한다.

김선영  cathykimmd@gmail.com

<저작권자 © 예스헬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선영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