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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근거'만큼이나 '스토리'도 중요해

위키피디아 이미지 - The DNA double helix is a molecule that encodes the genetic instructions used in the development and functioning of all known living organisms and many viruses.


TV 뉴스나 신문 등을 보고 있으면 어떤 과학적 발견이나 기술로 인해 혜택을 받은 감동적인 스토리가 간혹 소개된다.

예를 들어, “새로운 첨단 진단기술이 개발됐는데, 이 기술을 이용해서 과거라면 알 수 없었을 조기암을 진단하는 데 성공해 생명을 구하게 됐다”거나, 과거라면 치료가 불가능했을 질병을 첨단 의료기기로 치료했다는 등이다.

과학에서는 일회성 증거(anecdotal evidence)라고 해서, 하나의 사건 자체는 그다지 중시하지 않는다. 이런 증거가 모여서 일종의 시리즈가 되고, 여기에 객관성을 갖추기 위한 다양한 제어기법이 들어가면서 그 증거수준이 점점 올라가게 된다.

최종적으로는 많은 데이터를 통계적으로 분석해서 객관적 결론을 도출하려 노력한다. 그래서 과학적 연구방법론에 익숙한 사람들은 주관적일 수 있는 일회성 증거보다 객관성 높은 증거들을 중시한다. 이는 과학연구의 본질과도 관계된 것이기 때문에 잘못됐다고 말할 수 없다.

그렇지만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증거만 중요시한 나머지 스토리와 감성, 사회 반응을 무시하는 과학적 태도는 좋지는 않다.

과학과 기술은 그 어느 때보다 우리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과학기술의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편이지만 과학과 기술이 사회와 호흡하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과학기술이 희망을 가져오거나 부정적 효과를 가져오는 것에 대해 사회가 이해하고 이를 대비하는 등 소통하는 것은 과학기술의 미래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인데 의사를 포함한 많은 과학기술자들이 이에 대해 둔감한 듯하다.

JAMA(Journal of American Medical Association) 2011년 11월 9일판에는 Zachary Meisel과 Jason Karlawish의 ‘Narrative vs Evidence-Based Medicine-And, Not Or’라는 에세이가 실렸다.

이 글에서 저자들은 “스토리는 개개인이 증거를 이해하고 사용하는 데 핵심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스토리가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으며 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뜻이다.

딱딱하게 증거만 제시하고 사람들의 감성과 스토리를 담아내지 못하는 과학기술은 찬란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업적을 오히려 퇴색시킬 수도 있다. 디자인을 입히지 않은 기술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는 것처럼.

과학기술의 약점은 스토리의 강한 힘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스토리는 발표되는 순간 인간의 행동에 변화를 일으켜서 그때까지는 옳게 받아들여졌던 진실조차 받아들이지 못하게 할 정도로 강력한 힘이 있다.

예를 들어 현재까지 사람들의 행동패턴을 포함해 만들어진 가정이 검증도구를 통해 객관화됐을 때 이 가정에 대해 ‘진실일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러나 그 결론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의 행동 패턴이 달라지거나 이런 사실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가정을 무너뜨리는 예상치 못한 변화 앞에서 과학은 무력해질 수 있다. 미래를 통제할 수 있는 힘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 스토리는 사람들의 생각과 감성에 영향을 주고 이를 통해 미래도 바꿀 수 있다. 그 예로 특정 기술을 이용한 조기검진을 통해 암을 극복한 사례가 많은 이들에게 알려져 조기검진 비율이 확 높아진다면 많은 연구결과의 예측치가 바뀔 수도 있다.

과학기술의 연구방법론이 잘못됐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딱딱함을 너무 찬양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과학기술도 인간이 행복하게 살기 위한 도구다. 진단기술이 발전해 비침습적 신기술이 바늘로 찌르는 생검과 비슷하거나 조금 못한 결과를 낸다고 치자.

생검이 주는 고통과 스트레스는 쉽게 정량화하기 힘들지만 부정적 사회심리적 효과는 생각보다 크다. 비침습적 신기술의 조금 못한 결과와 생검으로 인한 고통 중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나 자신 그리고 우리 부모를 포함한 일반인들이 이 두 가지를 경험하고 어떤 선택을 하려 할까. 이들의 선택에 비해 객관적 증거를 내세운 과학자들의 선택이 ‘정의롭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가 믿고 있는 과학기술 방법론과 과학기술에 대해 논의하는 방식, 그 신화적인 믿음에 대해 한번쯤 뒤돌아보는 자세를 가졌으면 한다.

정지훈  jihoon.je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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