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미국





2008년 11월 4일 밤, 미국 서부의 개표결과도 미처 나오기 전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미국 건국 이래 최초의 흑인 대통령
탄생을 알렸다. 오바마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당선이 확정되는 순간, 언론들은 일제히 고난과 차별로 얼룩진 미국 흑인역사에 승리의
한 장을 새겨넣고 있었다.





거의 일년 내내 오바마 지지 스티커로 차량은 물론 집 안팎을 장식했던 오바마 지지자들은 이날 밤 곳곳에서 그의 당선 축하 파티를
열었다. 전파를 통해 보여지는 뉴욕 타임스퀘어, 시카고 그랜트공원, 또 오클랜드의 잭 런던 스퀘어는 물론 가깝게는 우리 동네의
신학교에서도 학생들의 파티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TV에서는 마침내 오바마의 당선수락 연설을 보여준다.









연설 후 그의 가족들과 바이든 부통령의 백인 가족들이 연단에 나와 함께 축하인사를 나누는 장면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그토록
염원하던 “예전 노예의 후손들과 노예소유주의 후손들이 함께 형제애의 식탁에 둘러앉는” 그 꿈이 눈 앞에서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이제 조지아의 붉은 언덕뿐 아니라 백악관에서도 옛 노예의 자손들과 그 주인의 자손들이 마주앉아 정사를 논하게 된 것이다. 미국에서 노예해방선언이 선포된 지 146년, 흑인들의 투표권 행사가 보장된 지 43년 만의 일이다. 





“미국의 역사는 이민의 역사이다. 유럽인들이 미 대륙으로 올 당시 이미 이곳에 살고 있던 5백만 여 명의 미국 원주민(인디안)을
제외하고 미국에 있는 누구든 이민자나 이민자 후손, 혹은 강제이주자들이다.” 미국 온 첫 해에 National Network
for Immigrant and Refugee Rights에서 주최한 훈련프로그램에서 이주민, 난민활동을 하는 모든
참가자들에게서 이구동성으로 들었던 말이다.





미국에서 9.11 이후 거세진 반이민정서에 쐐기를 박는데 이만큼 먹히는 말도 없지 싶다. 미국인 중 누구도 이러한 말에서
자유롭거나 또 이를 부정할 사람은 없으므로...... 그러나 처음부터 누구나 미국시민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미국시민에
대한 최초의 규정인 1790년 귀화법은 오직 ‘자유로운 백인’만이 미국시민이 될 수 있음을 법제화했기 때문이다. 식민시대에
미국으로 건너간 계약노동자, 노예, 자유인이 된 흑인은 물론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미국시민이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 기다려야했다.









흑인들은 링컨의 노예해방선언(1862) 이후 마틴루터 킹 목사를 위시한 수많은 흑인인권운동가들의 눈물과 땀, 피어린 투쟁으로
흑인들의 실질적인 투표권 행사보장(1965)이나 흑,백 인종간 결혼금지 위헌판결(1967) 등 인종차별금지를 법과 제도로
이루어내었다. 그러나 뿌리깊은 인종차별 의식과 문화에 대한 그들의 도전과 투쟁은 오늘도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이라는 사건이 미국 사회 유색인종, 소수자들에게 불러일으킨 희망과 “할 수 있다(Yes
We Can - 오마바 후보의 선거 슬로건)”는 자신감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물론 대통령 당선이라는 하나의 사건이 미국 내
인종차별을 비롯 수많은 난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적어도 새로운 가능성과 그 가능성에 도전할 꿈을 꾸게
만들었다는 점에서는 진정 역사적 사건일 수밖에 없다.







2008년 11월 한국





반만년 단일민족의 역사를 보물처럼 자랑해온 한국사회도 최근 10여 년 사이 급속히 다인종사회로 변모되고 있다. 90년대 이후
한국사회 변화를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다민족, 다문화’라는 용어는 80년대 후반부터 국내 노동시장에 유입된 외국인 이주노동자들과
90년대 들어 증가추세인 국제결혼가정의 이주여성들과 그 가정의 자녀 등 한국사회 인구구성의 변화를 지칭하는 유행어가 되었다. 





2007년 8월 법무부 출입국. 외국인정책본부는 국내 체류 외국인이 우리나라 주민등록 인구(4천913만명)의 2%인 100만
명을 돌파했음을 발표했고 이날 각 언론들은 일제히 한국사회가 이제 ‘외국인 백만 시대’의 ‘다인종, 다문화 사회’가 되었음을
보도하였다.









국내 일간지의 “5개 핵심문장으로 압축한 2007년 한국사회”(조선일보 2007년 12월 11일자)에 다인종사회가 포함된 것은
물론 미국 워싱턴 소재 이주정책연구소(Migration Policy Institute)가 이주관련 2007년 세계 10대 뉴스에
한국사회의 변화를 포함시킨 것에서도 국내외적 관심사를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같은해 대한민국 국가보고서에 대한 최종견해에서 현재 한국사회의 다민족 성격을 인식하고 한국의 단일
인종국가 이미지를 극복하기 위해 각 분야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 한 바 있다. 이는 더 이상 한국사회가 ‘순수혈통’,
‘혼혈’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특정인종 우월주의를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사회 인구구성의 변화는 관련 법과 제도에 반영되고 있는데, 법무부는 2004년 9월 출입국관리국 산하에 이민행정연구위원회를
설치하고 2007년 5월 출입국관리국을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로 지위를 격상, 개편하는 등 이민사회를 준비하는 정책적, 기구적
변모를 꾀한 바 있다.





2006년 5월 국무총리 소속 하에 설치된 외국인정책위원회는 이주노동자, 국제결혼 가정 외국인 배우자 등 외국인정책(이민정책)에
관한 기본방향과 추진계획을 수립하고, <재한외국인 처우 기본법> (2007년 7월 시행)과
<다문화가족지원법> (2008년 9월 시행) 등을 통해서 외국인 이주민에 대한 법적,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가고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의 인종차별이 법과 제도만으로 해결되지 않듯 한국사회도 우리가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인종차별, 외국인혐오에 대해
근본적인 의식개선과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아무리 다문화 사회라고 주문처럼 되뇌어도 인도네시아 엄마와 한국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자기 피부색 때문에 커서 아무도 자기와 결혼해주지 않을 거라는 절망에 빠져있는 한, 한국어가 유창한 몽골아이가
친구들이 싫어할까봐 몽골사람임을 감추는 한 우리의 다문화는 생색내기 구호일 뿐이다.









더욱이 최근 정부의 이주노동자 정책 - 국가경쟁력 강화 방안이라며 엉뚱하게 이주노동자들의 임금과 근로조건 개악은 물론 과거
연수생송출 비리로 얼룩진 중기협을 제조업분야 고용허가제 업무대행, 취업교육, 사후지원서비스 전담기관으로 일원화하겠다는 방침 -
은 시대를 거스르는 모순책이다. 정부에서조차 다문화 포용정책을 외치며 실제로는 반 이주민 정책을 내놓는 한 다문화, 다민족
사회는 우리 사회에 유행처럼 떠도는 허상일 수밖에 없다. 





오히려 지금은 몇 십년 후 생김새나 피부색이 다른 그 누군가가 시장, 국회의원, 나아가 대통령에 도전할 날을 바라보며 우리의
의식과 제도상의 개방성과 포용성을 점검할 때이다. 이주민에게 단지 형식적인 ‘주민’ 지위 부여에 머물지 않고 그에 걸맞는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행사할 수 있도록 돕는 사회, 또 이들이 정치는 물론 사회 각 분야에 스스럼없이 도전할 수 있고 또 이를 당연시
여기는 사회여야 진정한 다문화, 다민족 사회의 실현이라 할 것이다.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 뿐 아니라 이번 선거에서 캘리포니아 어바인 시장에 당선된 한국인 이민 1세대 강석희 씨를 주목하는 이유도
이것을 가능케 한 미국사회의 단면을 보기 때문이다. 한국이 다문화, 다민족 사회로 가는 길은 우리의 의식이 단순히 구호에 머물지
않고 이처럼 모든 변화의 가능성에 대해 열려있을 때 진정한 출발을 알릴 수 있을 것이다.




by 김미선∥한국이주민건강협회 국제협력 이사
저작권자 © 코리아헬스로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