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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하다면 조직에서는 어떻게 대응할까? 아마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브레인스토밍(Brainstorming)’일 것이다. 브레인스토밍은 창의적인 기업으로 유명했던 BBDO의 공동창업자 알렉스 오스본(Alex Osborn)이 창의력의 원천으로 그의 저서에서 주장하면서 유명세를 탔다. 그런데 브레인스토밍이 실제로 그렇게 창의적인 문제를 잘 풀어내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1958년 예일 대학의 연구팀에서는 대학생 48명을 열두 개 그룹으로 나눠 창의적 사고를 필요로 하는 퍼즐을 풀게 했다. 이 중 절반은 브레인스토밍을 하면서 문제를 풀도록 했고, 나머지 절반은 각자 풀게 했다. 예상과는 달리 혼자 문제를 푼 학생들이 브레인스토밍을 한 그룹보다 2배 가까운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이와 유사한 연구는 그 이후에도 많이 이뤄졌는데, 대부분 결론은 비슷했다. 오히려 혼자 있을 때 아이디어가 더 많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오스본이 주장한 브레인스토밍의 요체는 다른 곳에 있다. 직장 내의 수많은 관련자들이 실제로 모일 자리를 마련한다는 점이다. BBDO의 가장 중요한 고객사 중 하나였던 B.F. 굿리치 연구센터에서는 직원 250명이 매일매일, 매 시간마다 아이디어를 내기 위해서 모인다고 한다. 이들은 열두 개 그룹으로 나눠서 작업을 하는데 이를 통해 많은 성과를 거뒀다.

실험실과 같이 똑같은 조건에서 창의적 생산성을 내는 데는 브레인스토밍이 큰 역할을 못하지만,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창의적인 작업에 들어가는 기회와 시간을 확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사람들이 쉽게 만날 수 있는 터전과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창의성을 높이기 위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된다. 융합도 이렇게 서로 다른 전공을 가진 사람들의 만남을 주선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이들의 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만들어주고, 이것이 문화로 자리잡을 때 창의와 융합이 꽃을 피우게 된다.

창의와 융합하면 떠오르는 스티브 잡스는 픽사(Pixar)를 통해 이런 원리를 깨달았고, 실제로 이를 실천하기 위해 최대한 배려를 했다. 월터 아이작슨의 스티브 잡스 전기를 읽어보면, 스티브 잡스가 1999년 픽사 본사를 건축할 때 가장 신경을 쓴 것이 픽사에서 일하는 예술가, 작가, 컴퓨터 과학자 등이 서로 다른 곳에서 일을 하다가도, 언제나 쉽게 만날 수 있도록 중앙에 커다란 만남의 광장을 조성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한술 더 떠 사람들에게 이 공간에 가도록 강요 아닌 강요를 했는데 개인의 메일박스를 로비로 옮기고, 회의실도 빌딩 중앙에 모았으며, 카페테리아나 편의점 등도 설치했다.

심지어는 화장실도 몰아서 배치했다. 이렇게 환경을 만들고 나니,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방에서 나와서 우연한 만남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초기에는, 직원들이 뭐 하나를 하더라도 중앙에 있는 로비까지 걸어 나가야 하기 때문에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라며 불평이 많았다. 그렇지만 스티브 잡스가 의도한 우연치 않은 만남은 실제로 픽사의 수많은 직원들을 엮어, 집단적인 잡담과 친구의 친구를 소개하도록 만들었고 이로 인해 넓어진 인맥과 대화는 이들에게 세계 최고의 창의적인 집단이라는 명성을 안겨줬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같이 만나서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달려 나갈 때, 그 그룹의 역동성이 창의와 융합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이것이 바로 창의적 프로세스가 된다. 간혹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의 대화는 불쾌하기도 하고, 이해하기도 어려우며, 알아듣기 어려울 때도 있다. 그렇지만 이런 만남이 지속되고 문화가 될 때, 치열한 비판과 대화는 서로에게 커다란 자극이 되고 창의성이라는 열매를 풍성하게 맺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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