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19.9.23 월 11:06
상단여백
HOME Column
항암 치료의 명의는 없다
아내가 전화를 받았다. 오랜 친구의 어머니가 폐암 3기로 입원 중이시란다. 다른 곳이 아파서 응급실로 가셨는데 우연히 폐암인 것을 발견한 것 같다. 수술이 불가능해서 항암 치료 준비 중이다. 아무래도 주위에 아는 의사도 없고…… 그래서 아내에게 전화를 해서 의사인 나의 조언을 구하고자 한 것 같다. 문제는 나도 정확한 폐암의 종류나 병기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고, 그동안 폐암의 항암 치료도 많이 발전하고 달라졌을 텐데 내가 그 분야에 대해 새로운 지식 습득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안타깝지만 그쪽에서 원하는 속 시원한 대답을 해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아내의 친구가 하는 말 중에 무척이나 걸리는 말이 있었다. ‘공기 좋은 곳에 가서 민간요법을 하면 어떨까?’와 ‘명의를 찾아봐야겠다’는 말이다.

공기 좋은 곳에 가서 민간요법을 한다고? 폐암에 걸린 환자는 ‘공기 좋은 곳’으로 가면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나 보다. 그분은 그동안 서울 도심에서 살아온 분도 아니고, 담배를 피운 분도 아니며, 무슨 공기 안 좋은 곳에서 일을 하신 분도 아니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공기 좋은 곳’으로 가서 해결될 일도 아니다. 그냥 ‘항암 치료가 너무 힘들고 두려우니 치료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라면 이해를 하겠지만 말이다. ‘자연’이 우리를 치료해주는 것은 아니다.


출처 - 위키피디아


나의 환자 중에도 자신이 약을 먹고 있다는 것에 대해 무척이나 자존심을 상해하는 환자가 있다. ‘내가 이런 약에 의존하고 살아야 하다니……’란 식으로 말이다. 그러면 나는 왜 약을 먹어야 하는지 설명을 하지만, 영 설득이 안 될 때는 조금 강력한 방법도 쓴다.

“그러면 병원도 없고 약도 없는 아마존 같은 밀림 속이나 심심산골에서 사실래요? 그런 곳에 살면서 기생충에 감염되고 모기에 물리고 독사에 물려가면서 살면 참 오래도 살겠습니다. ‘자연’적으로 살던 100년 전에는 도대체 인류의 수명이 어땠나요?”

이렇게 조금 독하게 말하면 대개는 할 말이 없어지고 그냥 끄덕거리고 나간다.

그 다음, ‘명의를 찾는다’란 말인데……. 현대 의학에서 명의가 과연 존재를 하는 것일까? 나는 과거부터 언론에서 ‘명의를 찾아서’ 또는 ‘국내의 명의 ○○명’ 이런 식으로 프로그램을 기획한다거나 책을 펴낸다거나 특집기사를 실어대는 것을 안 좋게 보고 있다. 대개는 그런 곳에 나오는 소위 명의들은 정말 이름난, 유명한(유명해지고 싶은?) 의사일 뿐이다. 좋은 의사라고 보이지 않는다.

옛날에는 명의가 있고 그 명의만의 비방이 존재했을 게다. 그런데 현대 의학에는 그런 비방이 존재할 수가 없고 그런 비방을 혼자만 알고 있는 명의가 존재할 수 없다. 요즘 나오는 획기적인 신약들은 엄청난 돈이 들어가서 개발된 약들이며 그런 약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업은 소수의 다국적 기업들뿐이다. 그리고 그런 약의 정보는 이미 모든 사람들과 모든 의사들이 알고 있다. 또한 여러 가지 약을 복합적으로 처방해야 하는 경우에는 엄청난 수의 논문과 임상 예로 근거가 확립된 프로토콜(protocol)이나 가이드라인이 정해져 있다. 그러니 ‘어느 병원, 누구에게 갔더니 잘 낫더라’는 말은 이제 불가능해진 것이다. 물론 어느 나라에는 그 약이 수입이 안 되어서 또는 어떤 약이 너무 비싸서 못 쓰는 경우는 있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명의가 존재할 수 있다면 아직은 사람의 손기술이 중요한 외과 수술 분야에는 가능하겠다. 그리고 어떤 분야에 좀 더 많은 공부를 하고 다양한 경험이 있어 환자의 분류를 잘 해나가는 의사를 명의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즉 어떤 환자의 증상이 있을 때 ‘이런 증상은 이런 원인이고 저런 증상은 저런 원인이다’라는 식으로 잘 체계화하고 기존에 알려진 치료법 중에 적절한 치료법 적용을 잘 하는 의사 말이다. 암 치료에는 이런 명의보다는 잘 체계화된 프로토콜과 시스템을 갖춘 병원이 중요한 것이지 그 속에 있는 개인 의사 하나하나가 중요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결론적으로 최소한 암 치료에는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던 명의와 비방은 현대 의학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은 잘 정비된 시스템이 그것을 대신해주고 있다. 그러니 명의를 찾기보다는 시스템이 잘 갖춰진 병원을 찾는 것이 더 낫다. 또한 암 치료는 초기에는 당연히 적극적으로 치료를 해야 하지만 말기에는 그 치료 효과와 남은 여명, 그리고 환자와 가족의 철학과 환경 등을 잘 살펴서 결정해야 할 문제다. 거기에 정답은 없다.

작성자 : 박기호

닥터스블로그  webmaster@healthlog.kr

<저작권자 © 예스헬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닥터스블로그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