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사는 신년 특집으로 ‘脫章 Talk’ 를 통해 말 그대로 계급장 떼고, 평소 하고 싶었던 말을 털어놓는 코너를 만들었습니다. 이름도 안 나가고 고료도 없지만, 보건의료 분야에 종사하는 많은 분들이 글을 보내오셨고요, 앞으로도 계속 투고를 받을 예정입니다. ‘짧게 써 달라’고 부탁했지만, 다들 기대(?)보다 긴 글을 보내왔습니다. 그만큼 가슴 속에 쌓인 말들이 많았나 봅니다.
앞으로 이러한 지면을 부정기적으로 계속 마련할 예정이고, 혹시 보시고 동참하시고 싶은 분은one97@docdocdoc.co.kr 청년의사 앞으로 이메일을 보내시거나, 헬스로그를 통해 싣고 싶으면 gamsa@gamsa.net으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단, 최소한의 사실 확인 등의 절차가 필요할 수 있으므로 본인의 연락처는 남겨주셔야 합니다. <청년의사 편집부>
* 독자 투고 내용은 청년의사나 헬스로그 논조와는 다를 수 있습니다.
“거기 정품 보톡스 쓰나요?”
보톡스 시술을 하는 의사라면 누구나 한번쯤 들어보았을 질문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두 가지 큰 오류가 있다.
우선 정품의 반대말은 소위 ‘짝퉁’, 즉 가짜가 되는데 그럼 가짜 약품을 이용해 시술하는 의사인가 하는 질문이 된다.
다음은 ‘정품’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보톡스’는 다들 알다시피 미국 A사에서 클로스트리디움보툴리눔 독소 A형을 최초로 상용화하면서 붙인 상품명이다.
이 명칭이 비록 브리태니커 사전에 오를 정도로 보통명사화 되었다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제품이 정품이라는 논리는 억지다. 마치 바이엘 아스피린을 제외한 아스피린은 모두 가짜라고 하지는 않는 것처럼.
이는 인터넷을 통한 고도의 마케팅 전략과 의사들 또한 ‘나는 정품을 씁니다’라는 말을 환자에게 하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데서 빚어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국내 T제약에서 보툴리눔 독소 제제가 나왔을 무렵 환자들에게 시간을 들여가며 국산이나 영국제가 절대 가짜가 아님을 설명했었다. 하지만 인터넷을 통해 ‘정품 보톡스’라는 단어에 익숙해진 환자들에게 이런 설명은 구차한 변명으로 여겨지는 듯했다.
급기야 A사가 자사 제품의 뚜껑을 보라색으로 바꾸고 ‘보라색 뚜껑 확인하셨나요?’라는 카피를 사용하는 순간부터는 더 이상 타 제품을 사용하는 것을 포기하고야 말았다.
최근 들어 비슷한 경험을 다시 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PRP(platelet rich plasma) 요법이다. 가장 먼저 수입을 시작한 L사는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면서 친절하게도 내 오피스에 ‘본 병원은 L사의 정품 PRP를 시용하고 있습니다’라는 문구를 붙여주고 갔다.
하지만 얼마 후 내 병원의 홍보를 해주겠다며 광고성 인터뷰 기사를 만들어 온 것을 보고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PRP 요법의 장점을 서술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마지막에 더 좋은 효과를 위해서는 L사의 정품을 이용해야 한다는 말을 마치 내가 이야기한 것처럼 삽입해 놓은 것이다.
마치 그들이 내 홍보를 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들의 홍보 모델이 되어 버린 것처럼 느껴졌다. 물론 그 기사에서 마지막 문구는 빼기로 했고, 병원에 붙어 있던 ‘정품 PRP’라는 스티커도 떼어버리게 되었다.
아마도 레이저나 기타 의료장비 영역으로 가면 이런 예는 더 많을 것이다. 때로 의료기상의 설명을 그대로 환자에게 전하는 의사들이 있다고 하는데, 우리 스스로가 의료기상의 홍보 수단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한번쯤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다.
<기고자 - 성형외과 개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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