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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년 전 '세기의 성범죄 재판'과 미투 캠페인

10월 초 할리우드의 영화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이 귀네스 팰트로, 앤젤리나 졸리 등 유명 배우들은 물론 회사 여직원 등을 상대로 30여 년간 성추행,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의혹이 보도되면서 '미투 캠페인(#MeToo)'은 시작되었다. 이후 찰리쉰, 에드 웨스트윅, 아버지 부시 대통령, 우버 CEO 트레비스 칼라닉, 스틴 호프만, 케빈 스페이시,  래리 나사르(미국 체조팀 주치의)까지 내재되어 있던 성범죄의 그늘이 미국 사회의 모든 산업군에 독버섯처럼 퍼져 있다는 것을 한달여 만에 체험하게 된다.

이후 미투 캠페인은 글로벌 네트워킹의 힘을 가진 SNS에 동반해 점입가경으로 미대륙에서 전세계로 들불처럼 번져 나갔다. 비록 1200만이라는 캠페인 참여 숫자 안에 한국은 많이 포함되지 않았지만 연일 언론을 통해 한국사회에 만연한 성범죄와 성차별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로 보인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는 유디트,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이탈리아의 화가 아고스티노 타시는 1600년대 로마에서 명망 있는 풍경화의 대가로 이름을 날렸다. 외국에서도 찾아와 그에게 그림을 배울 정도였고 동업자 오라치오 젠틸레스키의 딸인 아르테미시아의 스승이기도 했다. 하지만, 현대에서 이 빼어난 프레스코 화가는 18세 여성의 '강간범'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Artemisia Gentileschi, 1593~1652)는 여성이 남성의 소유물로 인식되던 전근대적 사회에서 최초의 여성 직업화가로 살았던 인물이다. 그녀의 그림에 대해 이후에도 비평가들은 아버지나 스승인 타시와의 협업에 의한 작품이라고 평가할 정도였는데 이유는 간단했다. '여성이 이렇게 훌륭한 그림을 그릴 수가 없다.'는 사회적 편견 때문이었다. 그런 그녀가 스승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했지만 오히려 결혼을 원했던 건 어찌보면 불가항력적인 일로 느껴진다. 물론 그런 바램조차 배신을 당하고 법정에 강간죄가 아니라 '처녀성 강탈'의 죄목으로 타시를 세우기까지의 과정은 타인은 알 수 없는 처절한 투쟁이었으리라 짐작된다.

재판장에서 아르테미시아는 음란한 여자로 매도당했고 순결에 대한 증명을 강요당했으며 결국 승리했지만 처벌은 미미했다. 하지만 세월은 지났고 그녀는 작품으로 기억된다. 유명한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는 유디트>가 그것이다.

서양의 논개와 같은 유대 여성 유디트의 얼굴과 몸은 당시 관능의 대상으로만 그려지던 여성상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유디트의 얼굴은 아르테미시아 자신의 얼굴이었고 적장을 단칼에 제압하는 힘있는 팔뚝을 가진 여전사의 모습에서는 관능을 찾아볼 수 없었다.

400년전 그녀가 바랐고 그림에서 이루어낸 그것, 어찌보면 이제 시작일지도 모른다.

David Min 객원기자  new617@docdocdo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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