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인간다운 죽음을 말하다’/504쪽/시공사/17,000원

사람을 살리는 사람, 의사. 하지만 환자를 살리는 것이 결코 최선이 아닌 상황이라면, 과연 의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브렌던 라일리 박사는 최첨단 의학의 집결지이자 미국 최고의 종합병원, 뉴욕-프레즈버티어리언 병원의 내과 의사다. 치매에 걸린 노모 앞에서 그리고 자신의 부모와 같이 늙고 병들어 죽음을 목전에 둔 수많은 환자들 앞에서 번민한다. 과연 무엇이, 어디까지가 올바른 치료인가?

책을 펼치면 메디컬 드라마를 보는 듯 구구절절한 사연을 가진 환자들의 이야기가 흡인력 있게 펼쳐진다. 자신의 상황에 대해 깊이 있게 의사소통할 주치의도 없이 이 병원 저 병원을 떠돌며 수술만 받으면 완쾌하리라 믿는 말기암 환자, 언뜻 건강해 보이지만 사실은 심각한 섬망 증세에 시달리고 있는 치매 환자, 의식적 자해로 의료진을 감쪽같이 속여온 정신질환 환자, 그리고 아무런 사전 징후나 조짐 없이 어느 날 문득 갑작스런 자살로 생을 마감한 환자 등.

저자의 시선은 단순한 이야깃거리에 머무르지 않는다. 병원 밖에 있는 사람들, 환자로서는 결코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없는 의료 시스템, 현대의학의 불편한 진실과 선뜻 드러낼 수 없는 속사정 그리고 한계를 이야기한다.

생명을 다루기에 그 무엇보다도 가장 고귀한 기술이어야 할 의학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많은 오류와 허점으로 얼룩져 있는지, 시장 논리와 의사소통의 부재, 불합리한 시스템으로 인한 실수를 가감없이 들춰낸다. 결국 그 모든 폐해는 내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그 분들과 다를 바 없는 환자들, 특히 생의 황혼기에 죽음을 목전에 둔 중증 질환자들에게 가장 크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죽는다(mortality)’의 운명을 가진 인간은 언젠가 늙고 병들어 마지막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그 순간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인공호흡기와 심폐소생술, 심박조율기 등 무의미한 연명 치료로 수많은 기계에 둘러싸여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과연 행복할까?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마지막이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저자 브렌던 라일리 박사는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질문을 남긴다.

이 책은 죽음을 앞둔 환자들 특히 그들이 죽음을 목전에 두고 받는 무의미한 연명치료에 대해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워너라는 이름의 노인 환자는 준중환자실에서 급격히 상태가 나빠졌고 이에 수많은 의사와 간호사들이 마치 손발이 가득 달린 하나의 생명체처럼 거대한 팀을 이루어 그를 살리기 위해 온 힘을 쏟는다.

심박수와 혈압을 높이기 위한 약물을 투입하고, 기관내관에 인공호흡기를 연결한다. 레지던트의 진두지휘에 따라 심장박동기를 삽입하며, 심장이 멈출 때에는 제세동기를 가동한다. 그러한 노력에도 워너의 상태는 전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더 절망적이다. 심지어 그는 수많은 처치들이 몹시도 고통스러운 듯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악령에 씌기라도 한 듯 거칠게 몸을 일으키고 침대가 흔들릴 정도로 몸을 떨다가 커다랗게 눈을 뜨기까지 한다.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가족은 과연 저것이 워너가 원했던 치료인지 반문하며 눈물 흘리고 결국 환자의 심장은 고통 속에서 정지한다.

저자는 이러한 비극적인 상황을 통해 의료 시스템과 의료 자원의 할당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제시한다. 그리고 자연 수명을 다 산 환자들에게 값비싼 치료법을 시행하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불합리한 일인지 역설한다. 가슴 뛰는 감동 실화와 생명을 살리는 기쁨, 환자를 잃는 슬픔 그 이상의 것이 책에 담겨 있다.

지은이 브렌던 라일리(Brendan Reilly) M.D.는…

뉴욕 최고 종합병원인 뉴욕-프레즈버티어리언 병원NYPH의 내과 의사이자 부원장이다. 의사가 된 지 40여 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환자가 기다리고 있는 곳이라면 하루 24시간, 일주일에 7일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는, 오늘날 좀처럼 보기 드문 구식 의사다. 그는 철저히 상업화된 의료 시스템을 비판한다. 생의 마지막을 무의미한 연명 치료로 맞이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한다. 그는 현대의학이 인간애라는 본질을 회복하고 환자들과 적극적으로 의사소통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말콤 글래드웰은 책 블링크에서 브렌던 라일리 박사가 시카고 쿡 카운티 병원에서 근무할 당시의 모습을 상세히 묘사했다. 이후 인기리에 방영된 TV 드라마 ER의 소재와 배경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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