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585쪽/동녘사이언스/19,800원

진화가 뭐냐고 100명에게 물어보라. 대부분 자연선택의 결과로 대답할 것이다. 다시 물어보라. 자연선택이 뭐냐고. 아마도 사람들은 적자생존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이 책 연애를 쓴 제프리 밀러의 대답은 다르다.

그는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은 지금으로부터 5억 년 전, 눈과 뇌를 지닌 동물이 처음 진화한 이래 우리 유전자가 매 세대마다 불패의 성관계를 이어온 덕분이다. 우리 유전자는 매 세대마다 짝 고르기라고 불리는 관문을 통과해야 했다. 인간의 진화란 결국 이 관문이 어떻게 새로운 보안시스템을 진화시켰는가에 대한 이야기며, 우리의 마음이 갈수록 삼엄해지는 문지기를 홀려 그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어떻게 진화했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라고 말한다.

흥미롭다. 말하자면, 상대 유전자 품질을 염두에 두고 선택권을 행사하는 쪽은 감별능력을 향상시켰고, 선택되는 쪽은 감별사의 식별기능을 속여 번식에 이르는 관문을 통과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는 용어의 재정의로 시작한다. 1930년대 이후 오늘날까지 생물학계에서는 자연선택을 한 유전자가 생존이나 번식 측면에서 다른 유전자보다 경쟁력을 갖도록 유도하는 모든 과정으로 정의한다.

이에 비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자연선택은 적자생존과 같다. 동일시된다. 생물학계에서 자연선택=자연선택+성선택이지만, 보통 사람들에게 자연선택=적자생존인 것이다. 그는 이러한 용어사용은 성선택에 대한 경시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한다. 다윈의 용어사용법으로 돌아갈 것을 제안한다. 다윈에게 자연선택은 생존경쟁을 통해 이루어지는 진화과정이고, 성선택은 번식경쟁을 통해 이루어지는 진화과정이었다.

성선택에 눈을 돌린 이유는 자연선택이 인간의 진화를 설명하는 데 부족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언어는 생존에 필요한 기본 기능 이상으로 복잡하게 진화했다. 예술은 생물학의 실용주의 관점에서 볼 때 에너지 낭비일 뿐이다. 도덕은 식량을 구하고 포식자를 피하는 일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인간의 지능이 생존에 그토록 도움이 됐다면 왜 다른 유인원들은 그것을 진화시키지 않았는가? 특히 인간의 지능과 관련하여 그는 그것이 결코 생존을 위해 발달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의 논리는 간단하다.

인간의 뇌 발달은 적어도 10만 년 전 현생인류의 등장과 더불어 완료됐다. 그러나 기술혁신, 농업의 발달, 인구팽창 등은 그로부터 9만년 이후에 일어난다. 진화는 당장 이익을 남기지 않는 미래를 위해 투자할 여력이 없다. 인간 지능의 발전을 생존이익과 연결시키는 것은 틀렸다.

그는 자연선택과 성선택론이 인간의 진화를 설명할 수 있는 유력한 후보임을 상기시킨다. 무엇보다도 짝 고르기를 통한 성선택은 생존을 위한 자연선택보다 훨씬 지능적인 과정이다.

성선택에서 선택자는 자기 유전자의 확산이라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섹스 파트너의 유전자의 질이 평균적으로 자기 새끼의 유전자의 질의 절반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성선택은 자연선택보다 훨씬 강력하고, 뛰어난 식별능력을 보인다. 성선택에서 섹스가 차별적, 선택적으로 이루어지는 이유다.

인간 본성은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는가? 오늘 인간의 모습을 형성하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차지했던 것은 이었다. 구애의 역사가 없었더라면, 경쟁자들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고 성공했던 섹스가 없었더라면 인류의 진화는 이뤄질 수 없었다. 아무리 훌륭한 개체라 하더라도 번식이 없는 진화란 있을 수 없다.

다른 연구자들이 우리 조상들이 낮에 부딪쳤던 생존의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면, 이 책의 저자는 밤에 겪어야 했던 구애의 고민들을 풀어보고 싶었다고 한다. 짝 고르기를 통한 성선택은 종족의 보다 훌륭한 번식에 지대한 역할을 담당했다. 그에 따르면 성선택은 번식 경쟁을 통해 이뤄지는 진화과정이다. 성 선택에서 섹스는 차별선택적으로 이뤄지는 지능적 행위다.

제프리 밀러는 정교하고 현명한 짝고르기에 성공한 우리 조상들의 이야기로 우리 종의 성 선택은 우리만큼 총명하다는 명제가 상당한 설득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저자 제프리 밀러(Geoffrey Miller)는

1965년 신시내티에서 태어났다. 콜롬비아대학교에서 수학하고 스탠포드대학교에서 인지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뉴멕시코대학교 심리학과 부교수로 있다.

유럽으로 건너가 서식스대학교와 노팅엄대학교, 뮌헨의 막스 플랑크 심리학연구소, 유니버서티 칼리지의 Economic Learning and Evolution Centre에서 일했다.

제프리 밀러는 언어본능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의 스티븐 핑커와 이기적 유전자만들어진 신을 쓴 리처드 도킨스의 뒤를 잇는 진화심리학계의 손꼽히는 연구자이자 젊은 논객으로 평가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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