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라이팅’은 개신교 목사가 여신도들에 대한 지속적인 성적 학대 사건과 연인 사이 데이트 폭력에 연관돼 자주 등장한다. 타인의 현실 감각과 상황 등을 교묘하게 조작해 자신을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발표한 ‘성인의 데이트폭력 가해요인’ 연구에 따르면, 데이트폭력 가해 유형 가운데서 상대 남성이 ‘누군가와 있는지 항상 확인했다’와 ‘통화가 될 때까지 계속 전화’하거나 ‘옷차림 제한’ 등의 통제행동이 71.7%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이러한 통제행동은 연인뿐만 아니라 부모-자식, 친구 등 가까운 관계에서 조용하게 일어난다. 피해자는 물론 가해자도 이러한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신이 가스라이팅을 하고 있거나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진 않은지 경계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가스라이팅 피해자는 지속적인 자기의심과 자존감 하락 등의 심리적 불안 상태로 모든 잘못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결국 가해자의 의견에 동조하는 경향을 보인다. 자신의 상황을 스스로 인지하고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가스라이팅은 정신 병명이 아닌 심리학적 용어다. 1944년 조지 쿠거 감독의 영화 ‘가스등(gas light)’에 처음 등장했다. 남편이 아내의 재산을 노린다. 속임수와 거짓말로 아내를 정신착란으로 몰고 가는 내용에서 유래했다. 영화의 제목 ‘가스등’은 남편이 아내에게 가하는 정신적 학대를 상징한다.

가스라이팅 욕구가 생기는 원인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타인을 조종해 실체적 이득을 얻거나 심리적 이득을 얻기 위해 타인을 조종하는 경우다. 소시오패스적 성향의 사람이 금전적 또는 물리적 이득을 얻고자 타인을 세뇌하는 경우라면 실체적 이득이 목적이다. 영화 ‘가스등’의 상황과도 유사하다.

단지 심리적 이득을 얻으려는 경우라면 자기애성 인격인 사람이 자기와 가까운 사람을 반복적으로 비난하면서 무기력하게 만들고, 자신에게 결국 의존하게 만들어 자기애적 욕구를 충족하는 것이다.

‘조종하고자 하는 욕구’는 자기애성 인격장애가 아니더라도 나타날 수 있다. 자기애적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보다 더 착취적으로 자기애적 욕구를 실현하는 사람들을 자기애성 인격장애라 한다.

‘가스라이팅’은 부모-자녀‧상사-부하 등 불균형한 권력 상황에서 나타나기 쉽다. 부부‧연인‧친구 관계에서도 서서히 불균형한 권력 상황이 구축되면서 나타나기도 한다. 가해자는 상대방을 비난하면서도 ‘나 정도 되니까 너를 받아준다’라며 피해자를 안심시키고, 길들인다.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구도가 된다.

가해자는 부족하고 못난 피해자를 자신이 받아주었다는 자기애적 욕구를 충족한다. 심지어 스스로 너무 착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피해자는 가해자의 반복적인 비난으로 자기의심을 지속하고, 결국 가해자가 자신을 받아주었다는 만족감으로 의존 욕구를 충족한다. 가스라이팅이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나고, 피해자와 심지어 가해자도 가스라이팅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는 이유다.

평소 자신이 누군가의 눈치를 살피느라 늘 불안하고 우울감을 느낀다면 가스라이팅의 피해자가 아닌지 스스로 의심해야 한다. 가스라이팅 피해자는 가스라이팅 과정에서 자존감 상실, 심한 경우 인격의 황폐화까지도 경험한다. 괴로운 상황에서도 다시 가해자를 찾거나 또 다른 가스라이팅을 경험할 가능성이 있다.

에이치플러스(H+) 양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한규희 전문의는 “자신이 가스라이팅 피해자라는 것을 아는 것도 필요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가스라이팅하고 있지는 않은지 경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정신과적 상담‧치료 등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이유”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