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340쪽/동아시아/16,000원

오랫동안 우울증에 걸린 여성은 치료와 분석의 대상이었다. 작가 하미나는 오랜 일방통행의 관계에 반기를 들고, ‘우울증에 걸린 여성으로서 우울증이라는 거대한 의학 지식이 만들어져 온 역사를 파헤친다.

이 책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은 우울증과 자주 동반하여 나타나는 신체형 장애의 뿌리인 히스테리아를 다시 검토하면서 시작한다. 여성 환자들이 대다수였던 히스테리아라는 병명의 어원은 자궁이다. 고대 이집트 고문서에 마비 증세를 보이며 신체질환을 호소하거나 그 원인을 찾지 못하는 여성의 질병자궁의 굶주림으로 진단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정신의학이라는 학문의 문을 연 장 마르탱 샤르코와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 역시 히스테리아의 원인을 탐구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여성 환자는 연구를 위한 재료에 지나지 않았다. 이들은 여자들의 고통을 믿지 않았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일 것으로 기대되는 현대 의학은 여성의 우울을 어떻게 설명할까? 정신의학 교과서는 여성 우울증의 원인으로 호르몬을 꼽는다. 여성은 남성과 달리 호르몬 변화에 따른 월경 주기를 가지기 때문에 기분 변화도 더 심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 방식은 우울을 경험한 여성의 구체적인 사회문화적 맥락을 지운다. 여성은 감정 관리를 잘하지 못하는 취약한 존재가 되고, 의학적 설명 외에 자신의 고통을 둘러싼 배경을 살피기 어려워진다.

작가 하미나는 호르몬은 충분한 답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의 유병률이 높은 질병은 현대 의학 안에서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고,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병명을 진단받지 못해 우울과 불안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한다. 세상에는 엄살로 여겨지고 침묵을 강요당한, 여전히 제대로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한 고통들이 있다고 주장한다.

여성의 우울증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이해받지 못했던 고통에 다시금 이름을 붙이고, 자리 없는 아픔에 새로운 공동체를 만드는 일이다. 우리는 누구의 관점에서 누구의 아픔을 어떻게 들여다보아야 할까?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은 이러한 질문에 질병 당사자로서, 연구자로서 연대하며 답하고자 한 시도가 응축된 기념비적인 작가의 첫 저작이다.

저자 하미나는

1991년생 출생 논픽션 작가. 과학철학을 공부하고 싶어 학부에서 지구환경과학과 철학을 함께 전공했다. 과학사및과학철학 협동과정 대학원에 입학한 뒤에는 길을 조금 틀어 과학사를 공부했다. 같은 시기 2016년 강남역 여성 표적 살인사건 이후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여성 운동 단체 페미당당에서 활동가로 지냈다. 이 시기에 깊어진 우울증을 고민하다 이를 주제로 석사학위 논문을 쓰고 대학원을 탈출했다. 생계를 위해 칼럼니스트과학기자글쓰기교사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다 작가로 살기로 결심했다. <시사IN><한겨레21> <한국일보> 등 다양한 매체에 짧은 글을 기고하고 있다. 이 책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은 그간의 연구와 만남, 고민을 한데 모은 첫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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