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 간 의학자/396쪽/어바웃어북/18,000원

화가 이중섭은 디프테리아로 아들을 잃고 잠을 자다 벌떡 일어나 그림을 한 점 그렸다. 구상 시인이 그림에 대해 묻자, 이렇게 말했다. “우리 아기 천국 가는 길이 심심하지 말라고 친구들을 그려 넣었어. 배고프지 말라고 복숭아도 그려 넣었고.” 이중섭은 작은 나무 관에 아들의 시신과 그림을 함께 넣고 묻어주었다.

생로병사는 모든 인간이 숙명처럼 안고 살아가는 삶의 궤적이다. 한 인물의 삶의 궤적을 몇 점의 명화를 통해 훤히 들여다볼 수 있다. 1821년 사망한 나폴레옹은 사인(死因)을 둘러싸고 음모론이 끊이지 않는 인물이다. 나폴레옹의 재기를 원천봉쇄하기 위해 누군가 독이 든 음식을 먹였다는 독살설, 나폴레옹이 유배됐던 집의 노란색 벽지가 세인트헬레나 섬의 축축한 공기와 만나 화학 반응을 일으켜 맹독성 비소를 내뿜어내 나폴레옹이 비소에 중독돼 사망했다는 비소 중독설 등이 있다. 나폴레옹 사인에 얽힌 미스터리를 풀 열쇠가 미술관에 있다.

나폴레옹은 세인트헬레나 섬에 유배된 지 6년 뒤 영욕이 교차했던 생을 마감했다. 나폴레옹의 마지막 모습을 그린 베르네의 <임종을 맞는 나폴레옹>위암이라는 사인에 힘을 실어준다. 그림 속 나폴레옹은 앙상하게 말라 있다. 유배되기 몇 달 전을 묘사한 들라로슈의 <퐁텐블로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속 배가 불룩 나왔던 모습과 매우 대조적이다. 위암은 체중 감소와 식욕 부진, 지방 조직 및 근육 쇠퇴 등의 증상을 동반한다.

과학과 예술은 대척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명언을 남긴 사람은 서양 의학의 선구자로 불리는 히포크라테스다. 의학자가 왜 예술의 수명에 탄사를 보냈을까?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히포크라테스는 과학자에 속하는 의학자지만, 당시 기준으로는 예술가였다.

본래 과학과 예술은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 ‘아트(art)’의 어원은 그리스어 테크네(techne)’. ‘테크네(techne)’가 라틴어에서 아르스(ars)’로 바뀌었다가, 영어에서 예술을 의미하는 아트(art)’와 기술을 의미하는 테크놀로지(technology)’로 분리됐다. 의술은 본래 예술 안에 있었다. 히포크라테스는 의학을 찬미했던 것이다.

진료실에서 보내는 시간 다음으로 미술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의사가 있다. 그는 오늘도 흰 가운을 벗고 병원을 나와 미술관으로 향한다. 그가 미술관에 간 까닭은 무엇일까?

의학자에게 미술관은 진료실이며, 캔버스 속 인물들은 진료실을 찾은 환자와 다름없다. 그림 속 인물들은 질병에 몸과 마음을 잠식당해 괴로워하고, 삶의 유한성에 탄식한다. 그러다가도 질병과 당당히 맞서 승리하기도 한다. 그들의 고백은 인간의 실존적 고통을 담고 있기에, 가장 보편적인 인간의 이야기다.

저자 박광혁은…

진료실과 미술관을 오가며 의학과 미술의 경이로운 만남을 글과 강의로 풀어내는 내과전문의다. 그는 청진기를 대고 환자 몸이 내는 소리뿐 아니라 캔버스 속 인물의 생로병사에 귀 기울인다. 미술과 만난 의학은 생명을 다루는 본령에 걸맞게 차가운 이성과 뜨거운 감성이 교류하는 학문이 된다.

의학자의 시선에서 그림은 새롭게 해석되고, 그림을 통해 의학의 높은 문턱은 허물어진다. 저자는 지난 20여 년 동안 프랑스영국독일스페인이탈리아네덜란드러시아스위스오스트리아미국일본 등 전 세계 미술관을 순례하며 그림에 담긴 의학과 인문학적 코드를 찾아 관찰하고 기록했다.

한양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한림대학교성심병원 소화기내과 전임의를 거쳐, 내과전문의 및 소화기내과 분과 전문의로 환자와 만나고 있다. 네이버 지식인 소화기내과 자문의사로 활동했다.

지은 책으로 미술관에 간 의학자퍼펙트내과(1-7)》 《소화기 내시경 검사테크닉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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