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에 관하여/312쪽/열린책들/15,000원

이 책 면역에 관하여의 저자 율라 비스는 아이를 출산하고 맞닥뜨린 두려움(백신이 아이를 해칠 수 있다는 두려움)에 맞서면서 백신과 예방 접종이 실제로 아이와 우리의 삶을 어떻게 구원하고 있는지 규명한다.

아이를 낳고 키운 부모라면 누구나 비스가 느꼈던 것과 같은 두려움을 안다. 지금은 중세나 18세기처럼 영아 사망률이 높지 않지만, 그래도 영아들을 사망하게 할 수 있는 위험은 질병을 포함해 허다하다.

부모들은 음식에서 옷가지장난감에 이르기까지 혹 아이에게 해를 입히지 않을까 걱정하고 두려워한다. 최근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이의 건강을 위한 조치가 도리어 아이를 죽일 수도 있다. 비스가 강조하듯이, 이것이 바로 현대의 근본적인 두려움이다. 부모는 아이를 보호하려 하지만, 무엇이 아이에게 해가 되는지 알 수 없다.

비스는 이것을 모르는 것이 주는 두려움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백신은, 예방 접종은 우리가 모르는 것이다. 얼핏 생각하기에 백신은 병균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제너의 종두법은 말 그대로 약해진 병균을 옮기는 것이었고, 때로 사람들을 심하게 앓게 만들었다.

19세기 사람들은 독사의 독과 쥐박쥐두꺼비, 젖 빠는 강아지의 피, 내장배설물이 백신에 들어간다고 생각한 재료였다. 요즘 백신은 매사가 제대로일 경우 무균 상태다.

비스는 심리학자 폴 슬로빅을 인용해 우리가 현대 사회의 위험을 감지하는 관점을 직관적 독성학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무언가 독성이 있는 물질은 비록 조금이라도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학자들은 용량이 독을 결정한다고 말한다. , 유해 물질이라도 일정 용량 이하라면 해가 없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유해하지 않은 물질, 가령 물도 지나치면 독이 된다.

백신에 우리가 걱정하는 화학 물질이 들어 있다는 건 사실이다. 이를테면 수은과 알루미늄포름알데히드가 들어가는 백신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독감 백신, 혹은 아이들에게 맞히는 예방 접종 백신에는 그러한 성분이 없거나 극히 적다. 백신이 자폐증뇌 손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의심은 대체로 근거가 없다. 하지만 전염력이 몹시 강하다.

한편 우리가 일상적으로 섭취하는 음식에, 심지어 아이가 먹는 모유에도 수은과 포름알데히드알루미늄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병균과 바이러스 그리고 독과 함께 살아왔고 앞으로도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이다. 이것을 거부할 도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현대 사회와 마찬가지로, 현대 의학에는 꺼림직한 부분이 있다. 기계적이고 화학적인 치료가 주가 되는 현대 의학의 이미지는 폭력적이고 음흉하다. 그리고 불완전하다. 백신은 현대 의학에 깃든 불안과 두려움을 빠짐없이 대변한다.

대체 의학은 현대 의학의 틈을 파고든다. 우리가 오염되었다고 느끼면, 대체 의학은 정화를 제공한다. 우리가 부적절하고 부족하다고 느끼면, 대체 의학은 보충제를 제공한다. 우리가 독소를 두려워하면, 대체 의학은 해독(디톡스)’을 제공한다. 우리가 나이 들어 몸이 녹슬고 산화하고 있다고 걱정하면, 대체 의학은 항산화제로 안심시킨다.

대체 의학이 제공하는 가장 강력한 강장제는 천연natural’이라는 말이다. 이 단어는 인간의 한계에 좌우되지 않는 의학, 전적으로 자연이나 신이나 그도 아니면 지적 설계에 의해 마련된 의학을 암시한다. 자연이라는 단어는 의학의 맥락에서 순수함안전함무해함을 뜻하게 됐다.

자연이 선하다는 관점은 인공적인 것보다 자연적인 것이 더 안전하고 우월하다는 인식으로 확장된다. 한국에서도 예전 이른바 수두 파티’(수두에 걸린 아이의 집에 일부러 아이들을 모아서 놀게 하는 일)가 유행했다.

자연적으로 획득한 면역이 백신으로 획득한 면역보다 우월할 것이라는 믿음에서 비롯된 위험천만한 행태다. 수두를 걸리게 하는 것과 수두 접종을 받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수두는 대체로 위험하지 않지만 치명적인 피부염과 폐렴뇌염을 일으킬 수 있다. 때로 아이를 죽이기도 한다.

비스는 집단 면역(herd immunity)’이라는 개념을 특히 강조한다. 어떤 백신이라도 특정 개인에게 면역을 형성하는 데 실패할 수 있다. 인플루엔자 백신 같은 일부 백신은 다른 백신들보다 효과가 좀 떨어진다. 하지만 효과가 상대적으로 적은 백신이라도 충분히 많은 사람이 접종하면, 바이러스가 숙주에서 숙주로 이동하기가 어려워져서 전파가 멎기 때문에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이나 백신을 맞았지만 면역이 형성되지 않은 사람까지 모두 감염을 모면한다.

미접종자는 자기 주변의 몸들, 질병이 돌지 못하는 몸들에 의해 보호받는다. 반면에 질병을 간직한 몸들에게 둘러싸인 접종자는 백신이 효과를 내지 못했을 가능성, 혹은 면역력이 희미해졌을 가능성에 취약하다. ‘우리는 제 살갗으로부터보다 그 너머에 있는 것들로부터 더 많이 보호받는다.’ 이 대목에서, 몸들의 경계는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혈액과 장기 기증은 한 몸에서 나와 다른 몸으로 들어가며 몸들을 넘나든다. 면역도 마찬가지다. 면역은 사적인 계좌인 동시에 공동의 신탁이다. 집단의 면역에 의지하는 사람은 누구든 이웃들에게 건강을 빚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공중 보건이 중요한 이유다. 이 책이 거듭 지적하듯이, 우리는 한 번도 독자적으로 존재한 적이 없다. 백신 접종은 가장 안전하고 효과적인 무기다.

신화와 역사문학을 두루 살핌으로써 우리 내면에 자리한 두려움의 실체를 밝히고, 강력한 은유를 통해 우리가 질병과 면역을 바라보는 관점을 확장시킨다. 이 책은 과학적 글쓰기의 모범으로서 의학계와 과학자들의 지지를 받았다. 은유의 강력한 힘을 증명한 빼어난 문학 작품으로서 작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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