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에 빠진 뇌 과학자/360쪽/심심/19,000원

과학의 눈부신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수많은 사람이 중독으로 찰나의 기쁨을 맛보는 한편 끝나지 않는 고통을 겪는다.

전 세계적으로 중독은 15세 이상 인구 5명당 1명이 겪고 있다. 매년 중독 치료와 예방에 드는 비용은 에이즈의 5, 암의 2배에 달한다. 미국에서는 전체 사망자 수의 약 4분의 1이 과도한 약물사용으로 목숨을 잃고 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2020년 약물중독사망자가 2019년 대비 약 29.4% 늘어났다.

사람들은 흔히 중독이 나약한 성격 탓에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마음이 약해서 인내하고 절제하는 합리적인 선택을 하지 못한다고 말이다. 이러한 결론은 예전에는 타당하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뇌 과학의 시대가 도래한 후 가설은 뒤집어졌다. 이제 중독의 원인에 대해 이야기할 때 정신력성격개인 차원의 책임감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중독자들은 생물학적 이상의 피해자일 뿐이며, ‘선택의 여지가 있다는 것 자체가 착각일 수 있다고 여겨진다.

저자 그리셀은 이 책에서 중독에 빠지게 되는 경로는 중독자의 수만큼이나 다양하지만, 모든 강박적 사용의 기저에는 뇌 기능의 일반적인 원리들이 자리하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왜 중독에 빠질까?’ ‘중독의 생물학적 원인은 무엇일까?’ ‘중독에 취약한 사람이 따로 있을까?’ ‘우리는 중독을 해결할 수 있을까?’ 등 중독에 관한 가장 첨예한 문제들을 제기하고, 신경과학생물학정신의학약리학의 최신 발견과 지식을 근거로 명료하게 풀어나간다.

이 책은 저자가 약물 중독자에서 중독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신경과학자가 되기까지를 소개한다.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을 약물에 관한 묘사가 가득하다. 저자의 압도적인 경험담에 빠져들어 정신없이 약물의 효과를 간접경험하다 보면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와중에 약물과 중독에 대한 찌릿한 공포감이 뒷목을 타고 올라온다.

그리셀은 집도, 직업도 없이 호시탐탐 향정신성 약물을 사용할 기회를 엿보며, 그를 위해서라면 어떠한 대가도 기꺼이 지불했다. 연방 요원에게 쫓기고, 친구가 죽고, 학교와 집에서 쫓겨나고, 금단증상에 시달리는 등 수많은 비극에 시달렸음에도 그는 약을 끊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리셀은 거울 속에서 비친 자신의 눈에서 바닥이 보이지 않는 심연을 마주한다. 그것은 자신이 여태껏 시달려왔던 공허보다도 훨씬 더 비참한 것이었다. 그는 곧장 대마를 피우기 위해 돌아섰지만 그날의 소름끼치던 기분을 떨쳐낼 수는 없었다. 그는 그때를 자신의 밑바닥을 본 때라고 회상한다.

그 후 그리셀은 일련의 환경적 요인들 덕분에 약에 취하지 않은 맑은 상태를 경험한다. 그리고 타락과 갱생의 갈림길 앞에 선다. 약을 끊는 대가가 너무나 커보였지만 기나긴 고민 끝에 그는 약물 없는 새로운 삶을 선택한다. 중독에 관해 연구하며 그는 중독이 생물학적 문제임을 알고 자신의 중독을 치료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리셀은 궁극적인 회복의 길이 다름 아닌 자유에 있다고 말한다. 의료적 중재법으로 개입하여 신체적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지지와 다양한 대안을 제공할 때 비로소 중독자들이 죽음 대신 삶을 선택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셀은 자신이 중독에 빠져 있을 때, 그를 변화시킨 것이 인간적인 사랑과 타인의 연결이었다고 말한다.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해주고자 했던 아버지의 마음이 합리화와 정당화로 무장되어 있던 외로운 마음을 비틀어 활짝 열었다고 말이다.

우리의 삶에서 가장 밀접하고 영향력이 큰 것이 바로 타인과의 연결이다. 자신의 경험을 통해 그리셀은 물음을 던진다. 우리가 중독을 해결하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은 의학적 치료나 외부의 해결책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이 아닐까?

저자 주디스 그리셀(Judith Grisel)

세계적으로 저명한 행동신경과학자이자 미국 벅넬대학교의 심리학과 교수. 플로리다 애틀랜틱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콜로라도대학교에서 행동신경과학과 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독의 신경과학적 기제 및 중독 고위험군과 일반적인 뇌 사이에 나타나는 차이를 규명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학문적 연구 외에도 <가디언><사이언스 매거진> <NPR> <워싱턴포스트> 등에 자신의 중독 경험과 중독의 신경과학적 원리에 관한 칼럼을 썼다. 2012년에 하워드 휴스 의학 연구소의 훌륭한 멘토2020년에는 마인드 사이언스 재단의 우수 과학자로 선정됐다. 중독자의 자전적 에세이이자 중독의 신경과학적 원리를 치밀하게 탐구한 과학서인 이 책은 중독에 빠지는 심리와 약물이 뇌에 작용하는 방식을 알려준다. 이뿐만 아니라 어느 때보다도 약물이 풍족한 지금, 사람들이 중독에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개인사회적 차원의 방법들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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