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지향성 강한 한국에서 거절 쉽지 않아…“불편한 감정 선택도 나의 몫”

 

#1. 회사원 김모(42) 부장 사무실 책상 서랍에는 뜯지 않은 껌이 수십 통이다. 김 부장이 껌을 특별히 좋아하거나 껌 수집하는 취미를 가지고 있어 사 모은 것이 아니다. 직장 회식자리나 친구들 모임에서 거절하지 못해 한 통에 2,000~3,000원 반강매로 산 껌들이다. 하루 회식자리면 껌 3~4통은 기본이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껌이 쌓이면 전 직원들에게 나눠주는 것으로 해결한다. 매번 안 산다고 결심을 굳게 하지만, 거절하기가 쉽지 않다.

#2. “고객님, 백화점에 한번 나오세요. 신상으로 메이크업이랑 서비스 마사지 해드려요.” 전업주부 박모(38)씨는 백화점 화장품 가게에서 전화를 받으면 당혹스럽다. 안 간다고 결심하지만, 가면 백화점 직원의 수고로운 서비스를 나몰라하고 매몰차게 그냥 나올 수 없어 화장품을 사고 만다. 신상이어서 사는 게 아니다. 화장대만 보면 착잡하다.

김 부장과 주부 박씨의 고민은 예외적인 것이 아니다. 거절을 잘 하지 못해 난처했던 경험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정도와 종류의 차이일 뿐이다. 세상살면서 거절과 돌아오는 후회는 디폴트 값으로 깔고 갈 수 밖에 없다. 거절을 해도 후회, 못해도 후회하는 사람들은 우리 주변에 의외로 많다.

거절은 처음 먹은 마음처럼 결코 쉽지 않다. 더구나 한국은 혈연지연학연에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관계지향적특성이 강한 사회 분위기다. 번번이 매정하게 거절을 잘하면 인정머리 없는 개인주의자로 찍히면 세상살기 어려울 수 있다. 오는 거절을 뿌리치지 못해 착한 호구로 사는 게 차라리 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신과전문의들의 생각은 다르다. 정신과 전문의들은 거절하고 거절 받을 때 수반되는 긴장감과 서운한 감정은 반드시 따라올 수밖에 없다는 걸 인정하라고 조언한다. 이 ‘데미지’를 없애는 게 아니라 데미지를 안전하게 갖고 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거절하고, 거절하면 따라오는 불편한 감정을 내 탓으로 돌리지 않는 것, 내 탓은 아니지만 선택은 내가 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 과정에서 무언가를 감수해야 한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여자들을 위한 심리학(다산초당)의 저자인 반유화(연세필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은 건강정보 유튜브 <나는의사다 906회-거절이 어려운 당신을 위한 꿀팁> 편에 출연,진정한 의미의 착한 사람은 무조건 참거나, 눈치를 살피며 자신의 의견을 단념하는 사람이 아니다라며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어디까지 원망하지 않고 감당할 수 있는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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