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eticsMode 김아랑 대표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인다는 것이 좋을 수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요즘이다. 유전상담 대학원을 졸업하고 일을 시작했을 때 나의 나이는 20대 후반이었다. 동양인이어서 어려 보인다는 편견에다 20대의 경험 없음이 환자들을 상담할 때 고스란히 불편함으로 다가왔다. 갓 졸업한 사회 초년생이라 더 그랬을 수도 있지만, 자신감도 떨어져 어려 보이는 게 싫었던 적이 그때 말고 또있을까 싶다.(절대 어려 보이는 얼굴이 아니지만 미국에서는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이며 내 사업을 시작하고, 또 결혼도 하고 아이 둘을 낳고 키우는 경험을 하고 나니 더 많은 것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만큼 더 겁도 많아지고 걱정도 많아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이 좋다.

나의 지금을 사랑하기까지 지난 10년간 정말 쉼 없이 달려왔다. 도대체 유전상담이 무엇이길래 나의 20대와 30대가 유전상담으로 가득 차게 되었을까. 오늘은 나의 첫 시작과 유전상담 대학원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대학교 4학년 전공수업에 유전상담학이라는 과목이 있었다. 사업적 안목과 미래를 보는 눈이 뛰어나신 교수님께서 앞으로 유전상담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을 아시고, 내가 대학교를 다니던 2000년대에 그 수업을 시작하셨다. 당시 막연하게 유전학을 하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의학전문대학원을 생각했던 나는, 유전상담이라는 직업이 있다는 얘기에 귀에서 종소리가 들렸다. 아 이거구나. 난 지금까지 이걸 찾아 헤매며 살아왔던 것이구나.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점점 커져 내 안에 어떤 커다란 열정 같은 것을 만들게 되었다. 이 열정이 지금 생각하면 참 무모하고 대담한 일을 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이 열정 하나로 지금까지 버티고 있으니 말이다.

대학원을 준비할 당시 정보가 없어서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 미국으로의 유학을 결심한 이유도 정보의 부재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마다 감사한 분들을 만나 시의적절하게 분에 넘치는 도움을 받으며 유학길에 오를 수 있었다. 첫 해 대학원 진학에 도전했다 실패하고 재수를 하던 중, 유전상담이 하고 싶은데 의학유전학 클리닉이나 유전상담을 참관한 경험이 없어서 미국 대학원에 떨어졌다고, 참관하게 해달라고 대뜸 부탁하는 아무것도 아닌 학생이었던 나에게 흔쾌히 손을 내밀어 주신 한 교수님 덕분에 나의 유전상담 인생이 시작되었다. 재수를 하면서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들도 있었지만 다행히 감사하게도 교수님과 같이 좋은 분들을 만나 끝까지 할 수 있었다. 

미국 오하이오 주에 있는 신시내티대학의 의대 캠퍼스에 발을 디딘 첫날. 그날의 공기와 분위기, 냄새가 아직도 생생하다. 너무 행복했다. 그동안의 고생이 이 순간을 위한 것이었구나 하는 느낌과 함께 이제부터 행복한 일만 있겠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원하던 공부를 해서 행복하긴 한데, 순간순간 너무 힘들어서 그 행복함을 자꾸 잊게 되었다. 첫 수업 시간부터 몰아치는 과제와 다음 수업 시간까지 읽어가야 할 책 챕터들, 논문 등으로 정신을 못 차렸다. 더군다나 수업만 듣는 것이 아니고, 첫 학기부터 시작되는 클리닉 로테이션과 논문 준비로 수업만 따라가기도 벅찼던 나에게 정말 말도 안 되는 공부량이 덮친 것이었다. 캠퍼스에 첫 발을 디딘 날의 행복함이 무색하게 2년 내내 매일 잠을 줄여가며 공부했다. 대학원 2년 과정 동안 공부한 과목들을 보면, 유전상담학, 의학유전학, 분자/세포 생물학, 해부학, 역학 (epidemiology), 암 유전학, 산전 유전학, 사회심리학적 유전상담, 기형학, 윤리학, 심장 유전학, 신경 유전학, case conference, emerging topics 등 정말 다양하다. 한 과목 한 과목 정말 깊이 있게 공부했다. 

클리닉 로테이션은 정말 다양한 클리닉들을 경험할 수 있도록 디자인되어 있었다. 의학유전학 클리닉, 신경유전학 클리닉, epilepsy 클리닉, Ehlers Danlos Syndrome(EDS) 클리닉, 다운증후군 클리닉, 구순구개열 클리닉, craniofacial 클리닉, DiGeorge syndrome 클리닉, 심장의학과 클리닉, Marfan syndrome 클리닉, 산전진단 클리닉, 고위험 산모 클리닉, 암 클리닉, 유전자 검사실 로테이션 등 정말 다양한 클리닉들이 있었다. 당시 모든 클리닉을 경험할 수는 없었지만 졸업할 때까지 한 클리닉 당 3~4주 정도 환자를 보며 여러 클리닉을 돌았다. 처음에는 참관만 하다가 나중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전 세션을 맡아서 상담을 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렇게 되기까지 정말 많은 롤 플레이와 공부를 했다. 그렇게 케이스들을 쌓아 나가며 유전상담사가 되는 밑거름을 완성시켜 나갔다. 

내가 유학을 떠나올 당시, 할아버지께서 많이 아프셨다. 할아버지와 각별했던 나에게는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유학길이었다. 할아버지께서 나에게 편지를 주셨었는데, 거기에는 “아랑이가 훌륭한 사람이 되어서 아픈 사람들 많이 도와주면서 살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기도를 드린다”라고 적혀 있었다. 지금도 가끔 내 자신이 의심될 때는 그 편지를 펼쳐본다. 내가 정말 할아버지께서 축복해주신대로 잘 살고 있는 것일까.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다 보면 처음 시작할 때 가졌던 무모하고 대담한 열정이 다시금 고개를 든다. 

김아랑 GeneticsMode 대표
김아랑 GeneticsMode 대표

김아랑 GeneticsMode 대표는 University of Cincinnati 대학원의 유전상담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2015년 미국 유전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졸업 후 Genetics Center, UCLA Pediatrics Genetics, Sema4 등 다양한 곳에서 산전진단 및 소아 및 성인 유전상담사로 근무했다. UCLA Pediatrics Genetics에서는 NIH 펀딩을 받는 대사질환 연구 코디네이터로도 일 했다. 현재는 미국에 GeneticsMode라는 온라인 유전상담 및 유전상담 컨설팅 회사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에서 유전상담학을 가르치며 후배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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