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한 투과성을 지니는 튼튼한 나일론 천을 필터 대용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저렴한고 안전한 식수를 공급

-메디나충의 감염경로. 메디나충 유충에 오염된 물을 마시게 되면 감염된다. 따라서 물은 꼭 걸러마시거나 끓여마시고, 감염된 사람은 물에 들어가지 말아야 한다.

메디나충증(dracunculiasis)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기생충 질환이다.(이전 포스팅 참고: http://fiatlux.egloos.com/3308379)
그리고 최근 메디나충이 다시 한번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 기생충이 마침내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마침표를 찍고 또 한번의
'역사'를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다. 1979년 WHO가 천연두 박멸을 선언한 직후 마침내 모든 감염성
질환을 박멸할 수 있을것 같은 꿈에 부풀었지만, 30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감염성 질환은 세계 사망 원인 2위를 달리고 있다.
그리고 천연두 박멸의 눈부신 성과에 힘입어, 감염성 질환을 박멸시키기 위한 수많은 프로그램들이 설립되고 예산이 책정되었지만
여전히 이렇다할 성과는 없는 형편이다. 하지만 메디나충증은 마침내 우리가 두번째로 질병을 '박멸' 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1981년 WHO에서 1990년까지를 식수 공급과 위생 기간(Drinking
Water Supply and Sanitation Decade)로 지정하면서 단순히 안전한 식수를 공급하는 것 만으로도 전염
경로를 차단할 수 있는 메디나충증을 박멸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실제로 1980년대 초반, 인도, 파키스탄을 포함한
20개국 이상에서 350만건 이상 발생하던 메디나충 감염은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식수 공급과 위생이 향상되었기
때문이다. 1986년 WHO에서는 본격적으로 메디나충증 박멸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시작한다.

프로그램 진행 초기에
가장 큰 어려움은 감염자를 확인하는 것과 안전한 식수를 공급하는 것이었다. 메디나충 감염은 상하수도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는
도시지역 보다는 식수를 구하기 어렵고 하나의 식수원에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외딴 지역에서 주로 발병하는데, 이런 지역에 의료진을
파견해 감염자를 확인하여 치료하고 주의사항을 교육시킨다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각각의 마을에 우물을 파주는 것은
우물당 약 1만 달러의 경비가 소요되어, 소득이 낮은 아프리카, 특히 외딴 지역에서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궁하면
통한다 했던가, 일정한 투과성을 지니는 튼튼한 나일론 천을 필터 대용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저렴한고 안전한 식수를 공급
수 있게 되었다.




-1990년대 수십만 평방미터에 달하는 나일론 천이 이런 지역에 보급되었다.


한 눈에 쉽게 띄이는 메디나충증의 증상과 비교적 간단한 치료법과 예방법 교육은, 각각의 지역에 있는 일부 사람들을 훈련시켜
메디나충 감염례 보고와 관리를 좀 더 짜임새 있게 운영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2007년에는 발병 보고가
9585건으로 20년 전과 비교해 99%이상 줄어들었고, 올해에는 1000건 미만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제
메니다충이 보고되는 지역은 80년대 당시 20개국 이상에서, 에티오피아, 가나, 말리, 나이지리아, 수단, 니제르 6개 나라
뿐이다.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수단 같은 지역은 내전의 후유증으로 감염률이 높았지만, 평화협정 체결로 이들 국가에서
정치적 안정이 이루어지면서 공중보건과 위생도 함께 나아지고 있다.

경제적 이득도 상당하다. 메디나충이 몸안에서 다 자라
번식을 하기 위해 피부 밖으로 나올 때는 엄청난 통증을 동반한다. 이러한 통증은 메디나충이 다 나올때 까지 거의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할 정도인데, 문제는 메디나충이 몸 밖으로 나오는 시기가 주로 농사가 아주 바쁜 철과 겹친다는 점이다. 때문에 농사일에
모든 가족이 동원되어도 모자랄 판에 기생충 감염으로 거동이 불편해 지면 크만큼 생산량이 줄어들 수 밖에 없다. 1986년
메디나충 박멸 프로그램 시작 당시 조사된 바에 따르면 메디나충 감염은 농업생산량을 최대 5%까지 감소시킨다고 한다. 이 기간
동안 메디나충 감염률이 낮아지며 높아진 농업 생산량과 그에 따른 경제적 이득은 비록 금액으로 따져서는 미미할지 몰라도 해당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는데는 큰 기여를 했을 것이다.

한가지 놀라우면서도 씁쓸한 사실
한가지. 1987-1998년 사이 메디나충 박멸 사업을 진행하며 사용된 돈은 총 8750만 달러이다. 헐리웃에서는 블록버스터 한
편 제대로 못 찍을 그야말로 '소박한' 돈이다. 단순히 이정도 규모의 돈을 투자하고도 10년 사이 1300만건의 감염을 예방한
것으로 추정
하고 있다. 즉 1300만명이 질병의 고통에서 해방된 것이다. 감염성 질병은 우리가 다 몰아냈다고 생각했을 때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70년대 인도에서 말라리아가 박멸됐다고 생각했지만, 소홀해진 틈을 타 불과 몇년 후 수만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메디나충 역시 이제는 박멸이 눈 앞이라고 마냥 안심하고 있을 수 만은 없다. 수단이 좋은 예다. 8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메디나충 감염률이 그렇게 높지 않던 수단은 90년대 내전을 겪으면서 오히려 감염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대량의 난민이 발생하고
위생과 보건 시스템이 망가지면서 관리가 되지 않았던 탓이다. 이제 승리의 날이 머지 않았다. 완전히 사라지는 그 순간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말고 꾸준히 확인하고 발병 케이스를 하나하나 꼼꼼히 관리하다보면 마침내 인류는 감염성 질병에 대항한 전쟁에서 두번째의
'위대한 승리'를 거머쥘 수 있을 것이다.

Reference:
http://www.who.int/topics/dracunculiasi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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