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새벽부터 열이나는 둘째 아들 녀석을 데리고 늘 다니던 소아과를 갔습니다. 이른 시각임에도 불구하고 어제 이광기씨 아들의 신종플루 확진 소식 때문인지 이미 많은 부모님들이 아이들과 진료를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접수대에는 접수업무 이외에도 신종플루 백신 접종 및 간이검사와 확진검사에 대한 문의로 정신이 없었고 그 때문에 직원도 지쳐보였습니다. 진료실 속 소아과 선생님도 '이광기씨 아들의 신종플루 확진으로 아마도 걱정하는 부모님들이 늘겠네요.'라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보건당국은 거점병원이 신종플루 의심환자 수용 한계를 넘어가면서 개원가에서 신종플루 환자를 보도록 권하고 있습니다만 개원가에서 얼마나 잘 버텨줄지는 모르겠습니다. 특히 확진 검사를 위탁해야하기 때문에 시일이 오래걸리는 것도 문제입니다. 현재 정부에서는 의심환자에게 타미플루를 바로 처방하라고 권하고 있지만, 의학적으로 신종플루 가능성이 약간이라도 있을 때 모든 환자에게 타미플루 처방을 해야하는가에 대한 논란이 있기도 하고 또 처방과 무관하게 검사를 요구하는 부모님들도 계시기 때문에 갈등이 있기도 합니다.


당국이 아무리 원칙을 세워도 원칙을 믿지 않는 상황이 오래전부터 만들어져 온 것


중앙일보 노태운 기자님의 경우(http://v.daum.net/link/4710929)처럼 의심환자로 타미플루를 처방받았는데 약을 먹는 가운데 확진 검사 결과가 음성으로 나와 약 복용을 중단하는 일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증상이 경미하다고 통상적인 감기약만 복용하다가 갑자기 증상이 악화되고 사망하는 일도 드물지만 안타깝게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보건당국에서 간이검사를 믿지 말라고 말하고 있음에도 현실적으로 실행될 수 밖에 없는 간이 검사로 인한 문제도 큽니다. 오늘 소아과에서도 빠른 검사 결과를 요구하는 보호자들이 검사 결과를 확신할 수 없다는 의사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검사를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기서 음성이 나와도 신종플루가 정말 없다고 말하기 어렵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원가에서는 이 간이 검사를 전혀 안할 수도 없습니다. 보호자들의 요구나, 확인서 문제, 신속성 등을 들어 개원가에서는 여전히 간이 검사를 하고 있습니다. 저희 아들의 경우에도 만약 지금 먹는 감기약이 효과를 보지 않고 열이 나면 간이 검사를 해보자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검사에서 음성이 나오면 타미플루 처방이 늦어질 가능성이 더 많습니다. 보건 당국은 그런 이유로 간이 검사를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인데, 상당히 많은 의사들은 타미플루 처방에 신중을 기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렇게 간이검사를 하면서 타미플루 처방을 조심스럽게 하는 것이 의학적인 이유에만 있지는 않을 겁니다. 의사 사회와 정부와의 오래된 불신이 그 기저에 깔려 있기도 합니다. 현재 타미플루 처방에 대해서는 불이익을 전혀 주지 않겠다고 보건당국은 말하고 있지만,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 건강보험공단 심평원이 다 조금씩 입장이 다르고 이미 오랜 시간 '뒤통수 맞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장관이 앞에 나와 '불이익 없다'는 말을 그대로 믿는 의사들이 별로 없습니다.

'타미플루 처방을 받은 사람이 확진 검사에서 음성이 나온 경우는 삭감될 것이다', 또는 '검사 결과 없이 타미플루를 처방한 사람들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를 통해 상당 수는 삭감될 것이다'는 이야기가 개원가에는 돌고 있습니다. 결국에는 당국이 아무리 원칙을 세워도 원칙을 믿지 않는 상황이 오래전부터 만들어져 온 것이죠.

게다가 신종플루와 같은 전염병으로 인한 국가적 위기 상황에 대해 공공의료 영역에서 준비해온 것이 별로 없다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지방자치제도가 실시되고 나서 중앙 정부의 목소리 특히 공공의료에 대한 목소리는 약해져왔고 지역의 보건소는 지역 주민들이 원하는 동네 병원에서 하는 진료를 값싸게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만 여겼습니다. 그러다 보니 공공의료기관을 확충해야한다는 이야기만 나오면 민간병원과 경쟁하는 정부 병원이 생긴다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많은 의사들이 반대하게 되었고, 또 그런 반대가 있었기 때문에 이런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활용할 공공병원이 별로 없기도 합니다.

결국 해묵은 의-정 불신, 안이했던 보건당국의 준비, 공공영역의 의료기관의 지나친 영리화, 공공의료 확충에 대한 갈등 등이 만든 것이 지금의 상황인 것 같습니다. 그 덕분에 이런 비상상황에서도 보건 당국은 공공의료에서 감당해야하는 많은 것들을 민간병원으로 넘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민간병원에서는 정부의 이야기를 믿지 못하고 정부는 민간병원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복잡한 의료계 사정 속에 희생되는 신종플루 감염자가 없을까요?

다행히도 우리가 잘 해서가 아니라 신종플루라는 새로운 인플루엔자가 아주 치명적이지 않아서 그런데로 잘 넘길 수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진행 중이기 때문에 어떻게 될지는 모릅니다만, 이번 경험을 통해 전염병으로 인한 재해 상황을 잘 극복할 수 있는 협력체계를 구축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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