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코마(trachoma)를 네이버 백과사전에 쳐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이전에는 실명원인의 큰 부분을 차지하였으나,
최근에는 예방과 치료법의 진보에 따라 급성기나 만성기의 것은 거의 볼 수 없다."라고. 하지만 과연 그럴까?
트라코마는 Chlamydia trachomatis라는 박테리아 감염에 의해 일어나는 안과질환이다. C. trachomatis
는 여러가지 serotype들이 있는데 A, B, C 타입이 눈에 감염되어 트라코마를 일으키고, D-K 타입들이 생식기나
비뇨기에 감염되어 클라미디아라는 성병을 일으킨다. 앞서 언급한 네이버 백과사전의 무지에서도 드러나듯, 트라코마는 요우스 처럼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벗어난 대표적인 질병 중에 하나다.

요우스와 마찬가지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감염되어 있는지,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질환으로 인해 영구적인 시력손상을 입고 있는지 정확한 통계조차 집계되고 있지 않다. 2006년에 들어서야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고 WHO에서는 Global Alliance for the Elimination of Blinding
Trachoma(GET2020)라는 프로그램을 발족시켜 본격적으로 트라코마 퇴치에 나서기 시작했다. 당시 집계로는 56개국에서
4천만명 이상의 트라코마 감염자와 트라코마로 인해 시력을 잃은 사람이 130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
되었다. "거의 볼 수
없다"라는 말과는 한참 동떨어진 이야기다.



-적도 지방 거의 대부분의 국가에서 발생하고 있을 정도로 흔한 질병이다.

트 코마에 의한 피해정도를 정확히 집계하기 힘든 이유 중 하나는, 이 질병이 다른 모든 소외질병들 처럼 외딴 저소득 마을들에서
일어난다는 점과 함께 트라코마의 진행 정도에 따라 피해도 다르기 때문이다. 때문에 2006년 WHO에서 트라코마 박멸 프로그램을
발족시키며 수행한 첫번째 과제 중 하나는 트라코마의 진행 정도에 대한 정확한 분류였다.

보통 감염률이 높은 지역에서 C. trachomatis
감염은 신생아 시절 부터 나타난다. 트라코마는 크게 파리, 오염된 수건 등의 물건, 혹은 직접적인 접촉에 의해서 감염된다.
신생아는 눈에 달라 붙는 파리들을 물리치기도 힘들고, 부모가 트라코마의 전염경로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아이의 눈을 오염된
수건이나 손으로 만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감염에 대단히 취약해진다.



그림 A와 B에서 보이다시피 급성 감염에서 결막에 침투한 C. trachomatis
눈꺼풀과 같은 주변 조직들에 염증 반응을 일으킨다. 보통 별다른 치료 없이도 급성 감염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가라앉지만, 어린
아이들의 경우 면역계가 충분히 발달하지 않아 증상이 완화되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문제는 한번 감염되었다고 해서
면역력을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C. trachomatis에는 여러 serotype들이 있는데 한 종류에 감염되었다고 해서 다른 종류에도 면역력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아니며, 면역력의 효과도 지속시간이 길지 않다.

때문에 C. trachomatis
백신을 개발하려던 노력도 무위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렇게 재감염이 일어나기 쉽기 때문에, 아무리 급성 감염이 자체적으로 호전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나이가 들며 점차 그 피해가 누적되기 시작한다. 염증으로 부어오른 눈꺼풀의 안쪽 조직은 점점 거칠어지기
시작하고 차츰 각막을 손상시키기 시작한다. 또한 염증이 누적되면 속눈썹과 눈꺼풀이 안쪽으로 말려들어가 이러한 손상을 가속시킨다.
트라코마의 유병률이 높아 재감염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지역에서는 20-30대에 이미 심각한 시력손상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20-30
대는 가장 활발한 경제활동을 하는 시기다. 이 시기에 심각한 시력 손상을 입는다는 것은 개인 차원을 넘어 사회적으로도 큰
문제다. 트라코마로 인해 일어나는 경제적 손실은 정확히 측정하기는 어렵지만 연간 약 30-53억 달러로 추정하고 있다. 이러한
질환들이 저소득 국가에서 주로 발생한다는 것을 고려해 보면 실로 엄청난 액수다. 이렇게 질병에 의해 경제적 활동이 제약을 받게
되면 더욱 가난해지고, 가난은 가족원 중 누군가가 새로이 감염되더라도 치료 받을 기회를 잃게 한다.

결국 간단한 치료를 통해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던 사람도 가난 때문에 치료받지 못한채 영구적인 장애를 입게 되고, 가난은 더욱 심각해진다.
트라코마 치료는 그렇게 어렵지 않다. 급성 감염의 경우 tetracycline이나 azithromycin을 통해 손쉽게 치료할
수 있다. GET2020 프로젝트에서 제공된 항생제를 이용해 유병률이 높은 지역에 집중적으로 사용한 결과 1-9세 아이들에게서
유병률이 5% 미만으로 낮아졌다. 불행히도 이미 만성이 되어 심각한 시력손상이 일어난 경우에는 각막 이식이 유일한 치료법이다.
하지만 이미 눈 자체에 많은 손상이 일어났고, 수술의 예후도 좋지 않은데다 경제적 부담도 심하기 때문에 이 단계에서는 손을 쓰기
힘들다.

때문에 예방과 조기 치료가 중요한 것이다. 단순히 항생제 살포 뿐만 아니라 트라코마의 전염원이나 위험성을
사람들에게 충분히 알릴 필요가 있다. 감염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수건이나 개인 위생용품을 공유하지 않도록 하고, 부모들에게도
아이들의 위생을 철저히 관리할 필요성을 알릴 필요가 있다. 눈과 코의 분비물을 노리는 파리들도 위험 요소다. 집안 위생을
향상시키고 파리 개체수를 줄이기 위해 제대로 설계된 화장실을 구비하는 것이 좋다. 어찌보면 간단해 보이는 일이지만, 간단한 만큼
현실에 적용시키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런 간단한 일들만 제대로 이루어지더라도 눈에 띄는 유병률 감소 효과를 보여준다.

사람들은 흔히 질병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치사율에 현혹되곤 한다. 하지만 치사율은 낮지만 영구적인 장애를 일으키는 수 많은
질병들이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으며, 실제로 더 많은 피해를 입히고 있다. 자극적인 데이터를 제시하지 못하는 이런 질병들은 금새
기억에서 사라지거나 잊혀져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세상의 구석구석에서 자극적인 데이터를 제시하는 질병들 보다 더 큰 고통과
슬픔을 사람들에게 가져다 준 다는 것을 모르고 산다. 트라코마 역시 이러한 질병의 대표적인 예 중 하나다. 질병은 단순히 사람을
얼마나 빨리 죽이고 많이 죽이는가로 평가되어서는 안된다. 죽음은 질병이 가져오는 고통과 슬픔의 일부분일 뿐이기 때문이다.

Reference:
Burton MJ, Mabey DC. The global burden of trachoma: a review. PLoS Negl Trop Dis. 2009 Oct 27;3(10):e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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