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의 진화'
포스팅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요리의 발전은 음식을 통해 전염되는 다양한 전염성 질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었고,
그에따라 인간 생활의 질도 나아지게 되었다. 하지만 요리의 발달과 전염성 질환 감염률의 저하를 어떻게 정확히 관찰할 수 있을까?
요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물론 '불'의 발견이고, 다른 동물들의 재료 손질법과 가장 주목할만한 차이를 보이는 요소이기도
하지만 요리의 구성 요소에 불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불의 사용량 보다 정량적으로 측정 가능하고, 역시 요리의 중요한 구성 요소
중 하나인 '향신료'가 있다.
 

향신료는 수천년 전부터 요리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였다. 단순히 요리의
맛을 더해주는 것은 물론, 재료 보관이나 손질을 용이하게 해주었고, 의약품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대항해시대를 지나면서 다양한
향신료가 전세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당시 향신료 무역은 국가의 운명을 좌지우지 할 만한 사건들이 되기도 했다. 물론 지금도
향신료가 차지하는 위상은 낮지 않다. 미국만 하더라도 연간 8700만톤의 후추를 수입하고 있다. 하지만 각 나라의 전통 음식들을
살펴보면, 모든 요리들이 향신료를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 문화권에서는 다량의 향신료를 듬뿍듬뿍 사용하는 반면, 일부
문화권에서는 충분한 종류의 향신료가 주변에 존재하더라도 몇가지 사용하지 않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즉 향신료에 대한 접근성
이외의 다른 요소가 향신료의 사용 여부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기생충 학자들의 가설은 바로 "향신료를
통한 기생충 및 감염성 질환의 억제"
라는 것이다. 실제로 상당수의 향신료는 항기생충, 항박테리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향신료는 주로 식물에서 추출된 열매나 꽃, 잎, 줄기 등을 사용하므로 그 안에 다양한 2차대사산물들이 들어있다. 이
2차대사산물들은 식물이 자신을 공격하는 다양한 박테리아나 초식동물들에 대항하는 방어체계기 때문에, 향신료를 사용한다는 것은
식물의 방어물질을 그대로 우리가 먹는 음식에 넣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음식을 향신료로 처리하게 되면
재료 안에 자라고 있던 다양한 기생충이나 박테리아들을 제거하여, 안전한 식생활을 즐길 수 있다. 물론 주의할 점도 있다. 농도에
따라 이차대사산물들은 인간에게도 독이 될 수 있기 때문
이다. 많은 양을 섭취할 경우 발암원이나 알레르기원이 될 수도 있고,
유산을 유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임산부는 되도록 담백하고 심심한 음식을 먹어야 하고, 조리 과정에서는 소량의 향신료만이
사용되는지에 대한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가설을 가지고 실제에 적용시켜본 연구팀이
있었다. 이 팀의 가설은 재료가 손상되기 쉬운 저위도 지역일 수록 항박테리아 효과가 있는 향신료 사용량이 늘어나고, 재료의
손상이 덜 한 고위도 지역일 수록 향신료 사용량이 적어진다는 가설을 세운 것이다. 또한 음식을 매개로한 병원체 전파가 더 자주
일어나는 고기요리에 야채요리 보다 더 많은 향신료가 사용될 것이라고 추측했다. 36개국 107권의 전통요리 책에 등장하는
수천여가지의 고기요리와 야채요리를 분석하여 얼마나 다양한 향신료가 사용 되었는지를 알아보았다.




간단히 이 표만 살펴보더라도 연평균기온이 높아질 수록 사용하는 향신료의 가짓수도 늘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사용되는
향신료들 중 항박테리아 효과가 높은 향신료들의 사용비율이 덩달아 상승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과연 조리 과정 중 열
때문에 파괴되는 향신료와, 잔류하는 향신료의 양이 항박테리아 효과를 내기에 충분한가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요리
하나에 들어가는 향신료의 양은 0.25g-3.0g/kg인데, 이는 항박테리아 효과를 내기에 충분한 양이라고 한다. 또한
조리과정에서 파괴되는 향신료 역시 카레에 들어가는 커민(cumin)의 경우 불에 약한 반면 고춧가루에 들어있는 캡사이신의 경우
조리 과정에서도 잘 파괴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일반적인 가열 과정에서 향신료 뿐만 아니라 상당량의 박테리아 역시 사멸하게
된다는 점을 감안해야겠다.


물론 단순히 재료 보존과 안전성 차원에서 향신료 사용량의 차이를 평가하기는 아직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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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래프는 고기 요리와 야채 요리 간의 향신료 사용량 차이, 그리고 연평균 기온과 평균 향신료 사용량의 차이를 더욱 극명하게
보여준다. 기온이 상승할 수록, 그리고 재료가 상하기 쉬울 수록 향신료의 사용량이 증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단순히 재료 보존과 안전성 차원에서 향신료 사용량의 차이를 평가하기는 아직 이르다. 고기 요리의 경우 누린내 등을 없애기
위해 더 많은 향신료가 사용된다는 점을 배제하기 어렵다. 또한 각 지역간의 사용 가능한 향신료의 차이가 있을 수 있고 문화 차이
역시 배제하기 힘들다. 하지만 이러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지구온난화와 향신료 사용량의 변화, 혹은 향신료 사용량과 식인성
질환(foodborne illnesses)의 유병률 차이를 조사해 보는 것도 흥미롭겠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걱정거리. 근래
판매되는 상당수의 향신료들은 공장에서 여러 정제과정을 거쳐 생산, 판매된다. 이 과정에서 향신료의 풍미는 남아 있을 수
있더라도, 항박테리아 효과를 가지는 다양한 2차대사산물들이 파괴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식생활의 개선이 사실은 식생활의
위험성을 초래할 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해봄직 하지 않을까?

Reference:
1. Sherman PW, Hash GA. Why vegetable recipes are not very spicy. Evol Hum Behav. 2001 May;22(3):147-163.
2. Billing J, Sherman PW. Antimicrobial functions of spices: why some like it hot. Q Rev Biol. 1998 Mar;73(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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