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의 마지막날이였다. 그 누구도 나에게 휴일날 병원에 와서 회진을 하라고 요구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병실에서 연휴를 보내고 있는 환자들이 있는한 하루 한번이라도 얼굴을 들여다보는 것은 나의 의무다. 물론 그렇다고 이런 연휴에 놀러도 못가는 신세라고 한탄하는 건 아니다. 병원 일때문에 가족에 대한 의무마저도 저버리는 사람이 되고 싶진 않고 그렇게까진 안해도 되니까.

황금연휴 두번 다 가족과 함께 여행을 떠날 상황은 되지 않았고, 여행을 떠나지 않는한 나는 집에 있고, 집에 있는 한 집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병원에 못나올 상황을 만들고 스스로 핑계를 대고 싶진 않으니까.

그러나 내가 연휴에 병원에 나오는 가장 큰 이유는 어떤 환자 때문이다.


그는 이전에 계시던 선생님께 진료를 받던 말기 암환자다. 그는 사업체 몇을 거느리고 있는 부호이며 항상 그를 보좌하는 심복들이 있다. 항암치료는 안해본 것 없이 다 해봤고, 이 암이 재발 이후 평균생존기간이 2년이 채 안되는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오래 살았다. 벌써 4년을 살았으니. 젊었을때 주먹꽤나 휘둘렀다는 그는 소변줄, 대변주머니, 통증조절장치까지 안달고 있는 것이 없건만 아직도 삶에 대한 의지는 충천하며 거의 먹지못하고 걷지도 못하는 와중에도 부아를 터뜨리는 기운은 우렁차다.

그런 이가 전문의자격증 딴지 2년이 막 지났을 뿐인, 자신의 이름을 건 외래를 올해 처음 열게 된 나에게 올 이유는 없다. 그러나 이 병원에 워낙 오래다닌 환자였고, 나 말고도 여러 다른 과 선생님들과의 teamwork로 진료를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리고 툭하면 병실에서 버럭 소리지르며 욕을 해대는 그를 참고 견뎌줄 간호사들은 이곳밖에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는 이곳에 남았다.

그가 시쳇말로 곱게 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환자 본인을 제외하고는 누구나 알고 있다. 그는 아직도 살겠다는 일념 하나로 보험이 전혀 되지 않는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를 받고 있다. 이를테면 이 정도 상태라면 섣불리 시도하지 않을, 다소 실험적인 치료를 그는 받고 있다. 그는 자신이 지불하는 돈만큼의 치료효과와 대우를 기대하지만 사실 그럴 수가 없다. 그는 쓸수있는 모든 항암제를 다 쓴 상태였고 현재 쓰는 약은 이전에 썼던 약의 조합에 불과하며, 방사선치료가 들어가고 있는 병변은 그의 온몸에 퍼진 암세포 중 일부에 불과하니까.

최근에는 병세가 나빠지면서 두어번 새벽과 휴일저녁에 다시 병원에 들어왔었다. 다행히 환자가 실제로 응급조치를 요할 만큼 나빠진 것은 아니었다. 한번은 혈관주사를 다 빼고 집에 가겠다고 소리를 질러서고, 두번째는 자신의 증상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나 당직 레지던트가 감당할 수 없어서였다. 마침 부산에서 올라오신 시아버지와 주말만 만나는 우리 아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을때 병원에서 call이 왔고 나는 식구들을 다 병원 주차장에 남겨놓고 환자를 보러 올라갔다.  이런 일이 앞으로 점점 잦아지겠지. 위험한 고비들도 점점 찾아오기 시작할 것이다.

그가 누워있는 특실은 여러 다인실 환자들을 다 살펴본 다음 마지막으로 들르게 된다. 다른 환자들을 다 보고나서 그 병실로 걸음을 옮길 때만큼은 맥이 빠지고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는다.

그러면서 항상 생각한다.

좋은 약이 있어도 돈이 없어, 또는 남은 가족들이 걱정되어 못쓰는 사람들,
그래도 별로 해주는 것 없는 나에게 고마워하는 사람들에게, 이 문제환자에게 들이는 시간의 절반만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지.

이제 어쩔 수 없다고, 이젠 하늘나라 가실 준비 하시라고, 더 방법이 없다는 말에
그게 의사의 탓인양 돌리지 않고 자신의 운명임을 받아들여주는 환자와 보호자들이 얼마나 고마운지.

나의 판단을 믿고 몸을 맡기는 환자들이 있다는 것이 사실 얼마나 감사할 일인 것인지,
그 병실로 가면서 역설적으로 다른 환자들에게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인도주의적인 의사에 대한 바람이 꽤 신파스럽게도 그려졌던 "뉴하트"에서 최강국 교수가 했던 말이 있다. 품고 있던 환자들 사진을 누군가에게 보여주며, 자신을 믿고 가슴을 맡긴 환자들이 고마워서 이들의 사진을 찍어서 간직하고 있다고 했었다.

그때 그 장면을 보며 정말 낯간지러웠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도 이런 몹쓸 환자를 겪고 나니 나머지 대다수의 양순한 환자들에 대한 고마움이 배로 느껴져서 그랬던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 드라마 열심히 보진 않아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잘 모르지만 아마도 무슨 소송같은 것에 휘말리지 않았던가. 그 드라마 이제보니 산전수전 다 겪은 의사라면 이해할 수 있는 고도의 신파를 구사하고 있었던 건가.

피할 수 없다면 즐기랬지. 물론 차마 즐길 수야 없지만, 내 환자들이 말기를 고하는 나의 말을 순응하며 받아들이듯이, 나도 이 생각만 해도 고통스러운 환자를 내 숙명이거니 하고 받아들일 수 밖에 없겠다. 물론 나를 못믿겠다고, 이제라도 다른 병원 가시겠다고 한다면 당연히 붙잡지 않는다. 여기 있는 동안, 그 동안 만이다. 참고 견뎌내며 그에게 최선을 다해보자. 언젠가는 그에게도 감사할 일이 있겠지.

의사생활 8년째 되던해, 그는 나를 그렇게 단련시켜주었지, 하고 기억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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