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암 수술받고 항암치료 하던 중 폐 전이가 발견되어 귀원으로 전원합니다"

대장암 수술은 언제 했나? 당시 병기는 몇 기였나?

다른 부분의 전이는 없었나?

항암치료는 어떤 약을 언제부터 언제까지 썼나?

치료에 대한 반응은 어떠하였나?

폐 전이는 전이병변 절제수술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인가?


오늘 신환이 가져온 소견서인데 이 문장 하나 달랑이다.

서울의 유명대학병원에서 치료받던 환자인데 이런 소견서를 가지고 왔다.

도대체 어떤 상황인지 파악하기 위해 나는 약 1.5cm 정도 두께의 복사한 차트를 뒤지고 환자가 가져온 CD 영상을 열고 하며 약 10분 정도 헤멨던 것 같다.


대장암 수술은 언제 했나? 당시 병기는 몇 기였나?

다른 부분의 전이는 없었나?

항암치료는 어떤 약을 언제부터 언제까지 썼나?

치료에 대한 반응은 어떠하였나?

폐 전이는 전이병변 절제수술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인가?



다른 곳에서 치료받던 환자를 이어받아 진료를 하려면, 나는 최소한 이런 것들을 알아야 한다.

도대체 자기가 이제껏 보던 환자를 전원하면서 왜 이런 것들을 안써서 보낸단 말인가? 알아서 파악하라는 말인가?

이렇게 허접한 소견서 가지고 오는 분들이 꼭 차트는 엄청 두껍게 복사해서 가지고 온다. 담당의사가 성의가 없는 것이다. 이런이런 정보가 필요하다고 찍어서 복사를 시켜서 보내는 것이 아니라 모든 차트를 다 복사해서 보낸다. 비교적 간단한 환자면 모르지만, 복잡한 환자는 외래진료 끝나고 그것을 하나하나 뒤져보면서 파악해야 한다.
 

이런 환자들은 대개 외과에서 항암화학치료를 받던 분들이다. 사실 종양내과에서 진료받던 분들이 가져오는 소견서는 대부분 기본은 다 들어있다. 일단 내과의사들, 특히 종양내과 의사들이 꼼꼼하기도 하고, 같은 종양내과 하는 사람들끼리는 언제라도 얼굴을 마주할 수 있기에 적어도 욕먹을 짓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들을 하기 때문이다.
 

주로 종양내과의사들이 항암화학요법을 담당하는 미국이나 유럽과는 달리, 우리나라나 일본에서는 많은 경우 수술한 의사가 항암치료도 한다. 종양내과에서 항암치료를 주로 맡아서 하는 병원은 서울 및 수도권의 일부 대형 암센터 이외에는 별로 없다. 항암제는 다소의 규제는 있으나 처방에 자격이 따로 필요하지는 않다. 어떤 의사도 항암제를 처방할 수 있다.


항암화학치료에 관심이 있다면 어떤 의사라도 공부해서 처방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자격증 같은 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러나 공부는 해야 하고 원칙은 지켜야 한다. 그리고 원칙에 맞게 환자상태를 기술하는 법을 알아야 하며, 그래야 의료진간의 의사소통이 수월해진다.


또한 그렇게 소견서를 써서 보내주는 것이 상대의료진에 대한 예의이고 환자에 대한 예의이다. 수술때문에 시간이 없어서 그렇게 자세히 쓰지 못한다면, 그렇다면 항암제처방을 하지 말고 수술에 전념하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을 드리고 싶다. 나는 아무리 외래진료시간이 지연되어도 그렇게 소견서를 적어보내지는 않는다. 다른병원에 가더라도 이 환자의 치료과정에 혼선이 없도록 하는 것은 나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없어서 대충써서 보내면, 그거 파악하느라고 다른 의사가 외래진료시간을 허비해야 할거라는 생각은 못할까? 자기가 그런 소견서 받으면 짜증나지 않을까?

3차기관인 대학병원 외래에 진료 환자가 많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이렇게 환자를 보내서야...  하긴 진단명만 달랑 적은, 더 심한 소견서도 많고 많으니 오늘은 그냥 참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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