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의 "올해의 기생충 논문"을 뽑아보면 어떻겠냐는 권유에 못이겨 결국 2009 올해의 기생충 논문 10선을 뽑아보게 되었다.
아무리 기생충으로 분야를 한정시킨다 하더라도 매주 수백편의 논문이 쏟아져 나오고, 읽은 논문들을 되돌아보니 백수십편이 넘어가는
마당에 딱 10편을 뽑자니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이 블로그가 그래왔듯, 학문적 기여도나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오로지
"재미"에 촛점을 맞추어 리뷰 아티클, 리서치 아티클, 케이스 리포트 들에서 되도록 골고루 골라 보았으니 많은 분들이 즐기실 수
있은 논문 리스트가 되길 바라마지 않는다. 이미 포스팅을 통해 소개했던 논문들은 되도록 제외하려 노력했다. 그리고 비단 기생충
뿐만 아니라 올 한해 재미나게 읽었던 논문들을 각 분야에 계신 거장 분들께서 돌아가며 정리해 주시는 것도 재미난 일이 되지
않을까요?




1. Vidal-Mart­nez et al. Can parasites really reveal environmental impact?. Trends in Parasitology (2009) pp. 1-8

레퍼런스가 덜 갖춰진건 아직 article in press라(...) 최근 들어 기생충을 단순히 박멸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용도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기생충을 환경 지표로
사용한다는 아이디어다. 기생충은 어떻게 보자면 진정한 최상위 포식자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사자나 표범 같은 생태계 최상위
육식동물들의 장에도 기생충은 있기 때문에 기생충의 생물농축도는 가장 높을 수 밖에 없다. 중금속이나 잔류물을 검사하기에는 이보다
더 좋은 샘플이 없는 셈이다. 아직 정확히 가이드라인지 잡혀있지 않다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굉장히 쓸모 있는
아이템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자세한 내용은 다른 포스팅을 통해 소개할 계획이므로 이쯤.


2. Lo. Human Trichinosis after Consumption of Soft-Shelled Turtles, Taiwan. Emerg. Infect. Dis. (2009) vol. 15 (12) pp. 1-3

거북이 날 것으로 드셨다 선모충에 걸린 불운한 타이완 분들에 대한 케이스 리포트. 선모충 감염은 주로 소, 말, 돼지, 너구리,
멧돼지 등 포유동물의 고기나 내장을 제대로 조리하지 않고 섭취하여 감염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거북이를 통해서도 감염이
가능하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케이스 내용은 크게 특별난 것이 없지만, 감염 경로가 워낙 독특하여 선정.


3. Vickery and Poulin. The evolution of host manipulation by parasites: a game theory analysis. Evol Ecol (2009) pp. 1-16

Robert Poulin
진화 기생충학의 네임드 중 한명으로 좋은 논문을 많이 내고 있다. 이번에는 게임이론을 통해 기생충과 숙주의 행동 변화를 설명하고
있는 논문을 내놓았는데 상당히 흥미롭다. 최근 학문의 융합이 많아지면서 숙주와 기생충의 관계를 경제학적 이론을 도입하여
설명하려는 노력들이 많은데, 그 중 네트워크 이론들이나 게임 이론을 이용하여 숙주와 기생충의 관계를 들여다 보는 것들이 많다.
일단 숙주와 기생충간의 관계 속 득과 실을 관찰만으로는 명확히 설명하거나 예측하기 힘들다는데서 이런 융은 매우 바람직하고, 또
나중에 재미난 연구결과들이 많이 등장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4. Hakeem and Bhattacharyya. Exotic human myiasis. Travel Medicine and Infectious Disease (2009) vol. 7 (4) pp. 198-202

역시 언제봐도 신기한 구더기증 이야기. 구더기증 케이스 리포트들은 많이 소개했지만, 정작 잘 정리된 리뷰 논문은 딱히 없었는데
이번에 괜찮은 리뷰가 나와주었다. 또 요즘 알게모르게 병원 내 구더기증 감염이 문제가 되고 있기 때문에 한번 읽어볼만 하리라
생각된다. 특히 복합골절 환자들의 경우 철심으로 골절을 고정시켜 놓은 곳에 구더기증이 발생하는 예가 심심찮게 보고되고 있다.
의학의 발전이 많은 감염성 질환을 몰아낼 수 있었지만, 그 반대로 새로운 서식 환경을 제공해 주고 있다는 이야기도 되는 것이다.



5. Omenn. Evolution and public health.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2009) pp.

이건 기생충 논문은 아니지만 내용이 워낙 좋아 소개해본다. "인간은 왜 병에 걸리는가?(Why we get sick?)"의
연결판이자 공중보건 측면에서 바라본 논문이라 할 수 있는데, 진화 의학과 인간의 질병, 그리고 공중 보건의 발달을 종합적으로
다루고 있다. 또 앞으로 넘어야할 문제점이나 한계를 자세히 보여주고 있으므로 관심 있으신 분들에게는 필독을 권하는 바이다.
개개의 질병 연구에 대해서는 진화 의학이 점차 보편적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추세지만, 정작 정책적인 면이나 공중보건의 측면에서는
그렇게 심각하게 다루어지고 있지 않은 현실에서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


6. Winzeler. Advances in parasite genomics: from sequences to regulatory networks. PLoS Pathog (2009) vol. 5 (10) pp. e1000649

분자생물학과 유전학의 발전에서 큰 혜택을 입고 있지 못했던 기생충학에게 2009년은 의미있는 해였다. 파동편모충을 비롯해 다양한
기생충들의 유전체 지도가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지도 한장 제대로 없이 광활한 평원을 헤메고 있던 때에 알맞게
나타났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PLoS Pathogens 10월호에서는 기생충 유전체 지도 사업에 대한 리뷰들과 현재
상황, 그리고 앞으로의 방향 등을 제시하는 일련의 스페셜 이슈를 내놓았는데 전부 한번씩 읽어볼만 하다. 연구 테크닉에 있어
기생충학은 그리 발전이 빠른 편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상황인데, 이런 계기를 통해 한걸음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7. Beldomenico and Begon. Disease spread, susceptibility and infection intensity: vicious circles?. Trends in Ecology & Evolution (2009) pp. 1-7

질병의 증가는 숙주의 면역력 저하를 가져오고, 더 많은 감염성 질환에 취약하게 만든다. 이렇게 감염에 노출되면 경제 사회적 상황이
악화되고, 기본 생활 환경이 악화되면서 굶주림이나 위생 악화로 더 많은 감염성 질환에 노출된다. 그리고 다시 감염성 질환에
노출되면 경제 사회적 파급력은 더욱 커지는 물고 물리는 끝없는 악순환(vicious circle)이 반복되고 만다. 빠져나올 수
없는 소용돌이 같은 이 악순환의 고리를 어디서 끊어야 할까. 그 순환의 고리에 등장하는 다양한 요소들 중 숙주의 취약성을
중심으로 바라본 내용. 대단히 제한적인 자본과 인력만 사용할 수 있는 제3세계의 감염성 질환 문제에 있어 정확한 문제점 파악은
자원의 집중의 측면에서도 꼭 필요한 연구다.


8. Mideo. Parasite adaptations to within-host competition. Trends in Parasitology (2009)

한종의 기생충이 하나의 숙주에 기생하는 단조로운 모델에서 벗어나 근래에는 여러 기생충이 하나의 숙주에 동시에 기생하면서 생겨나는
다양한 영향과 관계를 연구하고 있다. 사실 현실에서 한 종의 생물이 하나의 기생충만 가지고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보통 여러종의 기생충이 하나의 숙주에 기생하기 마련이고, 이렇게 기생충들이 하나의 숙주에 몰리게 되면 당연히 기생충 간의 경쟁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 기생충 간의 경쟁관계를 연구하는 것은 기생충이 다른 기생충이 자리잡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새로운 숙주에
적응할 수 있었는가를 알아보는 측면에서도 많은 재미를 던져주지만, 다른 기생충의 성장을 억제하는 특정 물질 등의 분리를 통해
새로운 기생충 대항 무기를 개발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보여준다.


9. Moncayo. Carlos Chagas: Biographical sketch . Acta Tropica (2009)

일전에 소개한 바 있는(샤가스병: 백년전쟁의 역사) 샤가스병 발견의 영웅, 카를로스 샤가스의 일대기를 그린 아티클이다. 사실 진정한 영웅담이란 이런 것을 말하는게 아닐까. 샤가스의 흥미진진한 일대기를 보는 것 만으로도 시간이 훌쩍 지나갈 것이다.


10. Solomon et al. Recent advances in tropical medicine. Transactions of the Royal Society of Tropical Medicine and Hygiene (2009) vol. 103 (7) pp. 647-652

그리고 마지막으로. 영국 왕립 열대의학&위생 학회지에 나온 열대 의학과 기생충학이 이룬 여러가지 성과들을 리뷰한 것으로
마무리할까 한다. 지금까지 이루어 낸 것도 많지만, 앞으로 이루어야 할 것들이 더 많다. 이제는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들었던 기생충학이지만, 2009년 현재의 모습을 보면 그런것 같지도 않다. WHO를 비롯해 DNDi와 게이츠 재단은
열대 질환 퇴치를 위해 엄청난 양의 자본을 투자하고 있고, 기생충의 역습은 기후 변화나 정치 경제적 불안국면과 맞물려 더욱
거세지고 있다. 그런면에서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곰곰이 생각해보는 이런 리뷰는 의미있다
생각된다.

꼭 올해의 저널을 꼽자면 Trends in Parasitology가 올 한해 보여준 활약은
그야말로 눈부셨다. 다윈 200주년 기념으로 올 한해를 evolutioanary parasitology라는 테마로 진화라는
관점에서 바라본 다양한 기생충의 면면을 소개하는 일련의 글들을 한 해 동안 꾸준히 실어왔는데, 하나하나 꼭 읽어볼만한 글들이다.
기생충의 의학적 이용이나 고기생충학, 기생충이 생태계에서 차지하는 위치, 기생충과 숙주의 진화와 관계를 설명하는 내용 등 폭
넓은 토픽을 커버하고 있다. 2010년에는 더 많은 기생충, 열대 의학 관련 논문들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해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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