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부터 암환자 본인부담금이 10%에서 5%로 낮춰졌다. 언론에서는 본인부담이 더 줄어들어서 다행이라는 식으로만 얘기하지 별로 분석의 칼날을 들이댈 생각은 하지 않는 것 같다. 솔직히 나도 별 생각이 없긴 했다. 그렇게 보험공단재정이 많이 남아도나보다, 했지.

그런데 어제 다른 선생님들과 얘기를 하다가 본인부담금 인하 얘기가 나왔는데 대부분 부정적인 반응들이시다.

"보험안되는 항목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거를 더 커버해줄 생각을 해야지..."

"그렇게 하면 선심행정 티가 안나잖아.5% 같이 눈에 확 들어오는 걸 해야지."

"5%로 줄이고 바닥나는 재정을 뭘로 채우겠어. 앞으로는 심평원에서 더 눈에 불을 켜고 삭감할거야."




그러네....

그러고보니...대장암에서는 4-5년전부터 효능이 입증된 표적치료제가 하나도 보험이 안되고

직장암 수술 전 화학방사선치료할 때는 경구항암제가 보험이 안되어서 일일이 주사약을 써야 하고

고령의 폐암환자에게 첨부터 부작용도 적고 효과도 좋은 표적치료제를 쓰고 싶어도 2차 요법 이상으로만 인정하기에, 일단은 보험되는 항암제를 써서 환자를 괴롭히고 나서야 비로소 쓸 수 있고

HER2 양성 유방암환자에서 필수적인 약제인 허셉틴을, 같이 쓰는 항암제가 정작 보험이 안되어서 주머니 사정 넉넉한 환자에게만 쓸 수 있고

암환자에게 자주 생기는 심부정맥혈전증, 폐색전증에 비교적 안전하게 쓸 수 있는 저분자량헤파린도 보험이 안되고, 비보험으로 환자부담으로 쓰면 불법진료이고...
 
이런거, 나는 보험공단재정이 부족해서 그럴거야, 우리나라 사람들 보험금 부담도 얼마 안하면서 이런저런거 다 급여 인정해주면 공단 재정이  어떻게 유지가 되겠어,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런데 이렇게 파격적인 인하조치를 단행할 돈은 많이 남아있었던거구나! 오오....
 
그런데, 그런 돈이 다 어디에 쓰일까?
 
기존의 10%를 5%로 내리려면 정말 막대한 재정이 소요되긴 할 것이다. 게다가, 예상과는 달리 가외의 비용이 더 소요될 가능성도 농후하다. 뭐냐면...

중증등록을 한 진료과에서 약을 타면 이제까지 모두 10%가 적용이 되었기 때문에, 암과는 관련없는 혈압약 당뇨약 인슐린 등등을 모두 암센터에서 타가려고 하는거 (평소에 다니던 동네병원을 마다하고) 심사평가원에서는 알고 있을까? 5% 적용되면 더 심해질 것이다. 수술 및 항암화학치료 마치고 멀쩡히 일년에 두세 번씩 병원 오셔서 검진받는 분들이, 혈압약 당뇨약을 모두 종양내과의사인 나에게 처방해달라고 할 것이다.  내분비/ 순환기내과의 전문 선생님께 가셔서 혈당, 혈압 재보고 약타시라고 하거나, 또는 다니시던 동네병원에서 타시라고 하면 막 짜증내겠지. 심지어는 보호자 감기약도 타가려고 하시는 분들도 계시다.

그러면서 낭비되는 재정 상당히 될텐데 이거 한번 얼마나 되는지 산출해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새는 돈들은 그냥 놔두고, 정말 환자에게 필요해서 처방한 항암제 비용청구를 하면 온갖 핑계를 다 대면서 삭감하고 (그 삭감기준이라는 것도 때에 따라, 또는 지역에 따라 오락가락한다고 한다)....게다가 5%, 그거 아무리 해봐야 급여대상이 아닌 항목에는 전혀 도움이 안된다. 5%란 전적으로 보험급여대상이 되는 항목에만 해당되는 것이다. 100% 전부 환자가 부담하도록 되어 있는 비급여 항목에는 전혀 해당되지 않는다.
 

어제도 외래에서 몇몇 환자분들이 "5%로 본인부담 인하된다는데 그러면 신약 쓸 수 있나요?" 물어보시던데. 아니라고, 전혀 아니라고 말씀드렸다. 그러려면 아직 멀었다고, 5% 인하로 인해 더욱 멀어졌다는 말씀까진 차마 못드렸지만... 5%로 낮추면서 비급여약제가 보험급여대상이 될 수 있는 길은 점점 더 멀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그리고 말이 나온김에....암환자가 세법상 장애인 등록을 하면 세제혜택주는 것 말이다.  요새 소득공제철이라 "장애인 증명서"들 많이 떼가신다. 그 관련 법규는 아래와 같다.
 

*장애인의 범위 (소득세법시행령 107-1)

4. 기타 항시 치료를 요하는 중증환자

*관련예규 (소득 46011-3517, 1996.12.28)

장기간 치료를 요하고 취학 또는 취업이 곤란한 상태에 있는 중증환자인 암환자는 장애인에 해당함.


그런데 위와 같은 "장기간 치료를 요하고..." 뭐 이런 구체적인 기술이 다 사실 소용이 없다. 그것에 대해 의사가 판단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그게, 암진단을 받으면 무조건 5년까지 계속 해당이 된다고 한다. 수술받고 수개월 지나면 다 회복되어서 멀쩡하게 직장도 다 다니시는 초기암환자들도 5년까지 다 그 혜택을 받는다. "장기간 치료를 요함"은 커녕 등산도 다니고 마라톤대회에도 출전하시는 등 너무 멀쩡하셔서 장애인증명서 안떼드리려고 우리병원 제증명창구에 문의해봤더니, 5년까지는 다 무조건 해줘야 한단다.

그런 선심성 혜택은 좀 아껴서 말기 암환자 간병 서비스 시스템을 좀 제대로 만들면 안될까? 너무 아프고 못먹고 숨찬데 집안에는 돌볼 사람이 없고 간병인은 너무 비싸고 호스피스입원시설은 턱없이 부족하고...그래서 자꾸 병원 응급실만 들락거리는 말기 환자들이 너무 많단 말이다.
 
물론 이제까지 10% (이젠 5%) 적용, 세제혜택 등이 암환자들의 경제적부담을 많이 낮춘 것은 사실이고 필요한 제도들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솔직히, 적어도 내 생각엔, 암환자 본인부담경감은 10%도 충분하다. 5%로 낮출 바엔 보험이 안되는 표적치료제나 기타 약제, 또는 간병인 비용, 각종 수술 및 시술재료 등에 대해 폭넓게 보장해주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암환자 세제혜택은 현재 수술받은지 3개월이내 및 방사선/화학치료받고 있는 환자들로 국한하고, 암수술 후 수년째 검진만 하시는 분들은 좀 빼고, 그대신 저소득층 세제혜택이나 말기암환자에 대한 호스피스 케어와 관련된 지원을 좀더 늘리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왕 선심쓰는거 혜택의 기준을 좀더 구체적으로 정하고 정말 필요한 이들에게 더 많은 혜택이 가도록 하면 안될까? 4대강 논란을 슬쩍 5%로 덮을 생각일랑은 하지 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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