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래가 끝날 무렵 두통으로 50대 후반의 남자 환자분이 오셨다.



3일전에 심한 두통이 있어 이미 응급실에 내원한 적이 있다고 한다. 다행히 뇌 CT를 포함한 검사들에서 별다른 이상이 없어서 응급의학과에서 퇴원조치시키고 신경과 외래를 잡아준 것이었다.




 환자분이 진료실로 들어오시기 전에 간호사가 분주하게 진료실 안 밖을 움직인다. 알고보니 응급실까지 왔었는데 외래 진료가 늦은 시간으로 잡혀있다고 불만을 이야기한 듯 하다. 응급실에서도 머리아픈 환자를 약만 주고 보냈다고 의료진에게 심한 항의를 했었다고 간호사가 미리 알려주었다.



 응급실을 경유해서 오시는 분들 중에는, 응급실에서 가졌던 불만을 외래 진료실에 와서 쏟아내시는 분들이 종종 계시다. 애초에 응급실이라는 곳이 우아하고도 신속한 진료를 기대할 수 있는 곳은 아니다. 게다가 응급실의 '신속한' 진료는 말 그대로 '응급환자'에게나 적용되는 것이니 비응급으로 분류된 환자들은 자신의 진료가 늦어지는 것에 대한 불만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 불만을 외래 진료실에 풀어 놓는 경우가 많다보니 가끔 억울한 생각이 든다.










 이런 불만을 가진 환자분들을 만나는 것이 이젠 일상다반사가 되었지만, 그래도 약간의 긴장감과 함께 문제의 환자분을 대면했다.
하긴 금연이나 체중 줄이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지요. 그게 쉬우면 왜 벌써 못하셨겠어요~" 말을 흘렸다.


다행히도 응급실에서 받은 약을 먹고는 두통이 가라앉아 예상 보다 큰 불만을 쏟아내지는 않으셨다. 그런데 두통으로 내원했을 때 응급실에서 처방한 약이 그 흔한 타이레놀이고 복용 후 증상이 사라졌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아프셨다면서 어찌 그 흔한 타이레놀 한 알 안 먹어보고 119불러 대학병원 응급실로 오는 걸까..'



환자분의 증상은 전형적인 긴장성 두통이고, 뇌 CT는 '정상' 소견을 보였다.



"검사도 이상이 없었고, 증상도 좋아지셨는데.." 그냥 가셔도 되겠다는 말을 하려는 찰라 나의 말을 자르면서 환자 분이 하시는 말씀.




"내가 1년전에 심근경색이 있었는데, 이번에 머리 아픈 게 아무래도 중풍이 온 것 같아서 말이요. 정말 중풍이 아닌 게 맞나요?"



 아버지가 고혈압과 뇌출혈로 돌아가셨기때문에 항상 본인도 그걸 걱정하신단다. 고혈압이 있고 심근경색의 병력이 있는데 가족력까지 있다면 당연히 걱정할만 하다. 하지만 병력을 듣다보니 30년 넘게 매일 담배 두갑 가까이 피우시고 계신다. 그나마 1년전의 심근경색 후에 담배 줄여서 하루 한갑이라고. 거기에 비만에 가까운 푸짐한 체격이다.



잠깐의 침묵을 가진 후 (환자에게 잔소리하기 전의 나의 버릇이다. 일단 분위기 잡고 가는 거-), 목소리 깔고 물었다.



 "...다니시는 심장내과 선생님께 자주 혼나시지요?"



그 순간 옆에 가만히 침묵을 지키시던 아주머니가 갑자기 침을 튀기며 목소리를 높이신다.



"아이고, 어떻게 아셨어요~ 이 양반이 맨날 이래요~ 끊으라고 하는 담배도 안 끊고, 하라고 하라고 하는 운동도 안 하고~ 그러면서 맨날 쫌만 아파도 죽을 것 같다 뭐다 난리나 피우고요~ (어쩌구 저쩌구~~~)"



보아하니  1년전 심근경색이 있은 후로, 약간의 두통이나 결림만 있어도 응급실로 왔던 것이 여러번인 듯 했다. 내가 잔소리 안 해도 아주머니한테 엄청 잔소리 듣고 사시겠구나 싶다.



그렇게 본인의 건강에 대해 엄청 걱정하는 분이, 그냥 걱정도 아니고 당장이라도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 사시는 분이, 왜 정작 뇌졸중이나 심근경색의 매우 큰 위험요인인 담배를 끊을 생각은 못 하고, 체중을 줄일 생각은 못 하는 것일까? 비유하자면 손에 불장작을 들고서는 불나면 어떡하나 걱정하는 꼴인거다.


정말 건강하고 싶은건지? 그냥 건강에 대해 걱정만 하고 있을 뿐인 건 아닌지? 묻고싶을 지경이다.



안타깝게도 어찌 보면 바보같다고 할 만한 사람들이 실제로는 참 많다.



그만큼 금연이나 체중감량이 어렵다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어쩌면 금연이나 체중감량을 못 하고 있기에 본인의 불안감만 점점 더 커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의사의 도리로써 아저씨께 잔소리 몇마디 했다. 중풍이 아니라 안심한 표정의, 그러나 진료실을 나가면서 쏟아질 아주머니의 잔소리를 예상해서인지 어깨가 조금 축 쳐진 아저씨가 안쓰러워서, 일부러 아주머니 들으라고 마지막에 "하긴 금연이나 체중 줄이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지요. 그게 쉬우면 왜 벌써 못하셨겠어요~" 말을 흘렸다.



부인에게 잔소리들을 환자를 위한 나의 배려에도 불구하고 이미 처음 진료실에 들어올 때와 다르게 아주머니는 기세등등하고 아저씨는 조용하다.



담배를 원래 피지 않는 나로서는 금연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 때문에 금연의 어려움도 모르면서 연세 지긋한 어른들께 '그깟 담배 하나 못 끊냐'고 쉽게 나무라는 것이 미안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어쩌랴~ 그것이 내 일인 것을. 아버지뻘이던 할아버지뻘이던 관계없이 담배 끊으라고 난 내일도, 모레도 잔소리를 해댈거다.

저작권자 © 코리아헬스로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