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본능/416쪽/더난출판사/18,000원

우리는 동물계에서 인간의 위치가 아주 높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생물학자 입장에서 보면 영장류는 무성하게 자라난 거목의 한 작은 가지에 불과할 수도 있다. 역사적 측면에서 바라보면 인간이 등장한 것은 불과 최근의 일이다. 지구 위에 나중에 가서 덧붙여진 존재에 불과하다.

이 책 인간의 본능의 저자는 인간의 자리를 정의해주던 이야기를 잃은 현대인이 느끼는 공포와 불안을 이야기한다. 다윈의 종의 기원이 가지고 있는 특별함을 언급한다. 저자가 종의 기원을 특별하게 여기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책 결론에서 드러난다. 다소 시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하는 다윈의 자연관 때문이다.

다윈은 각각의 생명체가 고유하게 창조된 것이 아니라 넓은 의미에서 선형적으로 진화해왔다는 사실에 일종의 숭고함을 부여한다. 자연의 유구한 역사 가운데 생명이 온갖 위기에도 끝없이 진화하고 생존하며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경이롭다. 또 진화라는 단순하고 강력한 기제가 몇몇 개체로부터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자연의 복잡성을 추출해냈다는 사실은 일종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다윈이 진화론에 충분한 과학적 근거가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굳이 시적인 숭고함을 불어넣으려고 했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저자는 다윈이 진화론의 설득력 여부를 떠나 적어도 사람들에게 진화론이 숭고하게 여겨지지는 않으리라 염려했던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추측한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가 단일한 자연법칙에 따라 존재하게 된 것이라면 인류를 짐승들로부터, 심지어 단세포 생물로부터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실제 진화론에 대한 반감은 의외로 진화론 자체의 합리성과는 관련이 없다. 오히려 다윈이 염려한 대로, 진화론에 대한 반감은 인간 존재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에 대한 불편한 감정에 가깝다. 예컨대 1925721일 미국 테네시 주에서 있었던 소위 원숭이 재판은 지식과 합리성을 갖춘 진화론과 무지하고 미신적인 기독교 근본주의의 충돌로 묘사되곤 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흔히 놓치는 점은 재판의 근거가 된 버틀러 법’, 즉 공립학교에서는 인간을 원숭이의 후손이라고 가르칠 수 없다는 내용의 버틀러 법이 진화론 자체를 가르치는 걸 막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사실 종의 기원은 학교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가르쳐도 상관이 없었다. 다윈이 그 책에서 인간의 기원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버틀러 법이 정말로 막고 싶었던 건 인간이 다른 온갖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단순한 생물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이었다.

진화론에 대한 현대인의 이 같은 불편함과 거부감은 신앙의 위기와도 직결된다. 저자는 작가 이언 매큐언이 2005년에 발표한 소설 토요일을 통해 비유적으로 설명한다. 토요일에 등장하는 매슈 아널드의 시 <도버 해협>은 현대과학으로 인한 신앙의 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진화 자체가 과학적으로 왜 합리적인지 화석 기록과 유전자 게놈 분석을 통해 설명한다. 특히 모든 생물의 심리나 행동 양상을 설명하는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되고 있는 진화심리학이 점점 더 대중의 관심을 끌게 되면서 왜곡하고 과장된 연구가 등장하게 된 사례들과 진화심리학의 한계에 대한 비판을 제시한다.

진화론은 어떤 부류의 사람들로 하여금 인간을 무의미한 생존 기계처럼 느껴지게 만들곤 했다. 성서의 아담 같은 존재가 인간의 숭고함을 지켜주는 면에선 진화론보다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자의 말대로 진화는 분명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윈이 지적한 대로 우리는 진화에서 숭고함을 찾을 수 있다. 물론 진화론을 만능 이론처럼 생각하지는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진화가 인류에게 플랫폼을 마련해주긴 했지만 실제로 창의성을 발휘해 다양한 가능성을 펼친 건 인류 자신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진화는 단선적인 진보 과정도 아니고 인류가 진화의 최종 목표인 것도 아니다.

이 책은 진화의 손길로 빚어진 생명체가 된다는 것의 아름답고 특별한 의미를 탄탄하고 생동감 넘치는 문장으로 설명하고 있다. 진화론이 불편한 사람 그리고 진화론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싶은 사람 모두에게 흥미롭고 유용한 안내서가 되어줄 것이다.

저자 케네스 밀러(Kenneth Miller)

브라운대학 생물학 교수로 세포생물학과 일반생물학을 가르친다. 세포막 중에서도 엽록체 틸라코이드막의 구조와 기능에 초점을 맞춰 연구를 진행해왔다. 가톨릭교 신자임에도 지적 설계론을 포함한 창조 이론에 반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그의 과학 논문과 리뷰는 <사이언스> <> <네이처>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등 선도적 학술지에 발표됐다. 밀러는 브라운대학을 졸업하고 콜로라도대학에서 생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버드대학 교수를 거쳐 1980년부터 브라운대학에서 생물학을 가르치고 있다. 미국과학진흥회 과학대중참여상(AAAS Award for Public Engagement with Science)과 진화연구학회 스티븐 제이 굴드 상’, 빌라노바대학의 그레고어 멘델 메달’, 노트르담대학의 라에타레 메달’(Laetare Medal)을 수상했다지은 책으로 다윈의 신을 찾아서(Finding Darwin’s God)(1999) 단지 하나의 가설(Only a Theory)(2008)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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