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여 기다리는 신약들①] 비라토비·바벤시오, 암질심 후 '무소식'

효과와 안전성 못잖게 신약에서 중요한 요소는 바로 접근성이다. 아무리 생존율을 높이고, 부작용을 개선했더라도, 정작 해당 환자가 쓰지 못하면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선 신약의 치료 접근성을 높이는 가장 손쉬우면서도 어려운 방법이 바로 국민건강보험 급여 등재다. 급여 등재만 되면 환자의 약값 부담이 많게는 20분의 1까지 줄어들지만, 정부 입장에선 보험재정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어 ‘깐깐’하게 심사를 한다. 그러다보니 허가 후 수년째 급여 등재에 묶여 환자들의 애를 태우는 신약들이 있다. 2회에 걸쳐 이들 신약의 현재를 짚어봤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전경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전경

BRAF V600E 변이 대장암 표적항암제 '비라토비'

'비라토비(성분명 엔코라페닙)'는 이전에 치료 경험이 있는 BRAF V600E 변이 전이성 직결장암 환자들에게 세툭시맙과 병용요법으로 사용되는 표적항암제다.

비라토비 판매사인 한국오노약품공업은 지난 2021년 8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품목허가를 받은 후 곧바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급여를 신청, 이듬해 1월 암질환심의위원회(이하 암질심)까지 초고속으로 통과했지만, 급여 논의는 여기까지였다.

비라토비는 3상 임상시험을 통해 기존에 널리 사용되고 있던 '이리노테칸/FOLFIRI + 세툭시맙' 병용요법 대비 생존 혜택을 입증하며 세계 유수의 가이드라인에서 BRAF V600E 변이 대장암 치료에 우선 권고된 유일한 약제다. 하지만 연구 디자인과 다른 국내 임상 환경이 비라토비 급여 심사에 발목을 잡고 있다.

한국오노약품공업 비라토비
한국오노약품공업 비라토비

국내에서는 비라토비와 동일한 치료 차수에서 세툭시맙이 급여 적용되지 않아 임상연구에서 대조군으로 설정한 '이리노테칸/FOLFIRI + 세툭시맙' 병용요법이 사용되지 않고 있는 것. 대신 '베바시주맙 + FOLFOX/FOLFIRI'가 주로 사용되고 있다.

때문에 심평원은 국내 환경에서 사용되고 있는 '베바시주맙 + FOLFOX/FOLFIRI' 대비 '비라토비 + 세툭시맙'이 가진 혜택을 입증할 추가 자료를 제약사에 요청한 상태다.

일각에서는 심평원의 이같은 요구가 국내 환경에서의 임상적 가치를 정확하게 평가하기 위한 것으로 정당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한편에선 애초에 세툭시맙이 급여 적용되지 않아 발생한 상황으로 결국 ‘심평의학’이 문제라는 비판도 있다.

또 BRAF V600E 변이를 가진 환자가 극소수에 불과하고 예후가 매우 나쁘다는 점, 비라토비 급여 트랙인 경제성평가면제제도가 신약에 대한 환자 접근성 강화 및 치료옵션이 제한적인 희귀질환의 치료 환경 개선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심평원의 요구가 과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이처럼 심평원과 제약사가 보완 자료 제출을 두고 실랑이를 하는 사이, 비라토비의 약평위 상정만을 기다리던 환자들은 급기야 국민청원을 시도하기에 이르렀다.

지난 2월 국회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한달에 1,200만원이 넘는 비라토비 비용을 부담하지 못해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연과 함께 조속한 급여를 호소하는 청원글이 올라왔다.

다행인 점은 최근 비라토비 급여 심사에 진척이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제약사 측은 이달 중순쯤 보완 자료를 제출하고 심평원 역시 심사를 재개할 것으로 알려졌다.

절제불가 방광암 1차 치료 표준된 '바벤시오 유지요법'

최근 암질심 통과 1년째를 맞은 약제도 있다. 바로 절제불가 방광암 1차 치료에 백금기반 화학요법 후 유지요법으로 사용되고 있는 '바벤시오(성분명 아벨루맙)'다.

머크 바벤시오
머크 바벤시오

머크는 지난 2021년 말 식약처로부터 바벤시오 유지요법을 허가 받고 곧바로 심평원에 급여 신청한 후 이듬해 4월 암질심까지 단번에 통과했지만 이후 진행 상황은 깜깜무소식이다.

바벤시오는 지난 십수년간 진척이 없던 방암광 1차 치료에 생존기간 개선을 불러온 최초의 면역항암제다. 백금기반 화학요법에 더해 유지요법으로 사용했을 시 생존기간을 7개월 이상 연장시키며, 현재는 1차 치료 표준요법으로 인정받고 있다.

바벤시오의 급여 논의가 중단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약가와 재정 분담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게 관련 업계의 분석이다.

머크는 바벤시오를 국내에 처음 들여올 때 희귀암인 메르켈세포암 치료제로 허가 받았다. 경평면제 약제로서 비교적 쉽게 급여권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현재 바벤시오의 치료 비용은 동일 기간 다른 면역항암제와 비교해도 상당히 고가로 책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방광암 적응증에 대한 급여 확대는 바벤시오 약가의 대폭 인하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는 게 의료전문가들의 생각이다.

또한 정부 입장에서는 현재 방광암 치료 뒷단에서 급여 중인 '키트루다(성분명 펨브롤리주맙)'와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현 약가대로 바벤시오 1차 유지요법에 급여가 적용될 경우 2차에서 사용되고 있는 키트루다 단독요법에 비해 약 3배 더 재정이 소요된다는 점에서 정부의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약가나 재정분담 방안에 대한 제약사와 심평원 간 의견 조율이 쉽지 않아, 약평위 상정이 지연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국내 의료진들은 방광암 치료에 사용할 수 있는 치료 옵션이 거의 없는 데다, 결국 환자들은 치료 차수와 무관하게 바벤시오나 키트루다 등 면역항암제를 한 번만 사용할 수 있다는 점, 무엇보다도 데이터 상으로 면역항암제를 조기에 사용했을 때 생존 혜택이 더욱 커진다는 점에서 바벤시오 유지요법에 하루빨리 급여가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머크 측은 "현재 바벤시오 유지요법 급여와 관련해 심평원과 논의 중이어서 진행 상황을 공유할 순 없지만, 연내 급여를 목표로 노력 중"이라는 입장을 전해왔다.

 

〈코리아헬스로그 자매지 '청년의사'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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