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환자에게 편견을 갖고 진료를 한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그 편견 때문에 자칫 환자와 관련된 의학적인 문제를 놓칠 수도 있고, 그로인해 한 사람의 생명이 위태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엄연히 의사로서 자격미달이자 직무유기다. 하지만 때로는 이러한 편견으로부터 도저히 벗어나기 힘든 불가항력적 상황들이 존재한다. 바로 오늘 포털 메인을 장식하고 있는 '<종합>경찰, 도주 강도강간 용의자 공개수배'과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더 재미있는 것은 이런 불가항력적 상황들이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충분히 예방 가능한 것들이라는 점이다.


 일단 이야기에 앞서 용의지가 도주할 정도로 경찰의 감시가 느슨했던 상황에서 공포에 떨며 환자를 치료했던 해당 병원의 의사와 간호사들에게 존경의 인사를 보내고 싶다. 내 경우에도 위와 같이 응급실에서 범죄자나 수감자를 진료해야만 하는 상황이 몇차례 있었는데, 그때마다 공포와 불안에 휩싸여 정상적인 진료를 하기가 힘들었다. 통증 탓인지 아니면 억제되어 있는 상황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늘 그런 환자들은 침상에서 가만히 있지를 못했고, 내게 알 수 없는 미소와 함께 살벌한 농담들을 내뱉었다.

 한번은 수감 중 자해를 하고 실려온 환자가 있었다. 응급실 입구에 들어설 때만해도 수명에 달하는 경찰들은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고 치료를 진행할 수록 담배를 피는 둥 급한 무전이 왔다는 둥 떨어져 나가더니, 급기야 단 한명의 경관만 그 곁에 남아서 지켰던 적이 있었다. 단지 환자의 왼손에 수갑이 채워진 것이 전부였을뿐, 그 외 의료진이나 다른 환자 및 보호자들의 안전을 위한 그 어떠한 보안 체계도 마련되지 않았으며, 그 수감자가 마음만 먹으면 주변의 몇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은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다. 그 환자는 상태 확인을 위해 찾아갔던 나에게 썩은 미소를 지으며 '의사 양반도 여기 한번 찔려보셨수?'라는 의미심장한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등골이 오싹해지고 온 몸에 식은 땀이 흘렀다. 하지만 그 말을 고스란히 옆에서 듣고 있었던 경찰은 아무런 추가 조치도 하지 않았다.

 비단 경찰의 문제가 이것만은 아니다. 응급실에 24시간 상주하는 의료진은 언제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새벽녁 찾아오는 취객이나 상해 환자들이 대표적인 예다. 알 수 없는 말을 해대며 의료진을 위협하고 때로는 기물 파손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경찰은 늘상 이런 사람들을 응급실에 던져놓고 할 일이 다 끝난 사람마냥 돌아가버린다. 일단 기본적인 조사가 끝나고 사건이 그들의 손을 떠나게 되면 그 후부터는 '나몰라'하는 자세로 일관한다. 그들에게 이런 일이 발생한 이유와 향후 발생 가능한 문제나 상황들은 전부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심지어 급한 치료는 뒷전인채 조사만 하는 경우도 있고, 가해자와 피해자를 같은 병원 응급실에 던져놓고 가버리기도 한다. 때로는 응급치료의 필요성을 경찰에게 납득시켜야 할 때도 있다. 또한 진료나 치료 외에도 사건의 중재나 해결을 위해 본의아니게 메신저가 되고, 골머리를 앓아야 한다. 특히 상해로 내원한 단순 타박상 환자들의 경우, 시간이 지날 수록 목소리는 커지고 아픈 곳은 늘어가며, 요구사항이 많아진다. 결국 의료진도 해결할 수 없는 한계에 다다르게 되는 것이다.

 한번은 끓어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고 경찰들에게 항의한 적이 있었다. 당신네들이 이렇게 던지고 가버리면 진료에 임하는 우리의 안전은 누가 보장하느냐고. 그러나 여전히 '응급실에선 늘 있는 일인데', '사건을 신속하게 해결하려면' 등의 대답만 메아리처럼 돌아올 뿐, 그들에게는 일말의 양심이나 책임감조차 찾아보기 힘들었다. 대한민국 경찰, 정말로 엉망 그 자체다. 오로지 요구되는 것은 공권력의 힘을 앞세워 벌어진 상황을 신속히 수습하고 뒤로 빠지는 것 뿐이다. 그 외 발생되는 문제들은 오로지 그 상황을 마주하게 되는 또다른 누군가에게 떠맡겨 버린 채 현장을 떠나기 급급하다. 나는 금번 강도강간 용의자의 도주 당시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생각해보라. 경찰 3명의 감시망에 수갑까지 채워진 병든 용의자가 석호필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대학병원 응급실 창문을 뚫고 도주할 수 있었겠는가.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뻔히 답이 나오는 우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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