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eticsMode 김아랑 대표

환자는 억울하다. 분명히 방금 진료를 받고 나왔는데, 아무 설명도 듣지 못한 기분이 든다. 

의사도 억울하다. 주어진 시간 안에서 최선을 다해 설명을 했는데, 환자는 설명을 안 해줬다고, 불친절하다고 한다. 

왜 의학유전학과 진료는 양쪽 모두 억울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렇다. 유전상담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유전상담은 의사와 환자 사이에 놓여 있는 '다리'와 같은 존재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이 '다리'의 역할이 무엇인지 제대로 경험하고, 공부를 한 인력이 부재한 실정이다. 유전상담은 겉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보다 복잡한 과정이다. 유전상담은 환자의 필요를 듣고, 설명해서, 환자와 그 가족들이 자신들의 상황에서 가장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쌍방향 의사소통이 핵심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는 의료시스템 상 외래 진료가 3~5분 내로 이루어지다 보니, 쌍방향 의사소통 보다는 의료진이 환자에게 일방적으로 설명을 해주는 방식의 진료가 진행되고 있다. 

나는 분명 교수님들께서 친절히 잘 설명해주고 계시다고 믿는다. 미국으로 유학오기 전 참관했던 교수님들의 진료는 지금까지도 마음에 울림으로 남아 있을 정도로 친절하고 자세했기 때문에, 모든 교수님들께서 환자 한 명 한 명에게 얼마나 최선을 다하고 계시는지 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들은 진료실을 나오는 순간, 아무 설명도 듣지 못한 기분이 든다. 왜 그럴까?

“환자의 필요를 듣는다”라는 의미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환자 입장에서는 본인이 방문한 목적을 설명하는 것이 다가 아니다. “내 이야기”를 눈치보지 않고, 편견없이 들어줄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한 것이다. 내가 생각하고 고민하던 것들이 바보 같은 질문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모를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한 것임을 깨닫고, 현재 상황에서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 정도의 라포(rapport)를 쌓으며 믿음의 베이스를 마련한 후에 비로소 환자들은 의료진의 이야기가 이해가 되고 들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환자들의 요청은 간단하다.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달라는 것이다. 짧은 3~5분의 외래시간에 할 수 없는 일을 유전상담사들이 할 수 있게 만들어낼 수 있다. 그게 '다리'의 역할이다. 모든 환자가 다 유전상담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유전상담이 필요한 환자에게만 다리를 놓아주면 된다. 그렇게 함으로 외래가 한층 더 빛날 수 있다. 

네이버 카페 '유전질환의 모든 것'을 운영하면서 가장 많은 요청을 받는 것 중 하나가 검사결과지를 해석해 달라는 것이다. 검사 결과지가 아무리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어도 유전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 입장에서는 그냥 외계어나 다름없는 것이다. 한글을 읽을 수 있지만 못 읽는 느낌. 영어로 써져 있는 c. p.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지, 숫자들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지 간단히 설명을 해드리는 것만으로도 속 시원해 하신다. 검사 결과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지, 현재까지 밝혀져 있는 내용은 무엇인지, 다음 외래 때 교수님께 어떤 내용을 질문하는 것이 도움이 될지 등을 함께 고민해드린다. 환자의 모든 병력과 가족력이 없는 상황에서 검사 결과지 만을 보고 얘기를 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검사 결과지에 나와 있는 내용 외에는 절대 말씀드리지 않고 꼭 외래 때 교수님께 여쭤보라고 말씀드리며 마무리하는데, 그 마저도 너무 도움이 된다며 고마워하신다. 카페의 가장 큰 목적은 같은 질환이 있는 환우들과 가족분들이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드리는 것인데, 이미 몇몇 질환들은 개인적으로 혹은 카페를 통해 서로 궁금한 것들을 올리며 소통하고 계시는 것으로 안다. 희귀질환은 의료진들보다는 아이를 매일 키우시는 부모님들이나 환우분들께서 전문가가 되시는 경우들이 많다. 그래서 이런 공간을 통해서도 환우분들과 가족분들께서 진짜 필요로 하시는 것들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유전상담사가 의료진으로 분류가 되고 있지 못하다 보니 '의료진'이 아닌 유전상담사가 유전상담을 하는 것이 불법의료 행위가 될 소지가 있다. 하지만, 법률자문을 구해본 결과 검사 결과지를 쉽게 설명해주고, 진단된 질환에 대해 나와 있는 논문과 문헌을 참고로 설명을 해드리고, 환우회 같은 정보나 환자에게 도움이 될 만한 자료들을 찾아드리고 설명해드리는 것은 현재 의료법상 의료행위로 보기는 어렵다는 해석이 있다. 따라서, 현 의료시스템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우리나라에 유전상담을 정착시킬 수 있는 여러 가지 방안들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Zoom이나 Google Meet와 같은 플랫폼을 이용해서 환자 상담을 진행하는 것이다. 시간적, 공간적 제약에서 조금은 자유롭다 보니 비용 측면에서도 부담스럽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또한, 유전상담사들을 검사 결과지를 쉽게 작성하는데 적극 활용하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환자를 상담하지 않고, 유전자검사 회사 등에서 검사실, 세일즈, 마케팅, 고객서비스 등 다양한 부서 소속으로 일을 하는 유전상담사들이 많다. 해외에서 이미 시행착오를 겪으며 자리잡아 놓은 유전상담의 방법들을 연구해서 창의적으로 접근한다면, 병원, 회사, 학회 차원에서 모두 유전상담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국과 같이 유전상담 역사가 오래되고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는 곳에서 유전상담사 자격을 취득한 유전상담사들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다. 해외 의료시스템을 경험하면서 느꼈던 불편함 혹은 장점들을 우리나라 의료시스템과 비교하면서 우리나라 시스템에 맞는 유전상담을 좀 더 객관적으로 분석해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 있는 유전상담 대학원 교육 뿐만 아니라 학회 차원에서 유전상담을 잘 정착시킬 수 있는 방안을 개발하는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김아랑 GeneticsMode 대표
김아랑 GeneticsMode 대표

김아랑 유전상담사는 University of Cincinnati 대학원의 유전상담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2015년 미국 유전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졸업 후 Genetics Center, UCLA Pediatrics Genetics, Sema4 등 다양한 곳에서 산전진단 및 소아 및 성인 유전상담사로 근무했다. UCLA Pediatrics Genetics에서는 NIH 펀딩을 받는 대사질환 연구 코디네이터로도 일했다. 현재는 뉴욕에 있는 Columbia University Medical Center 소아 유전학과에서 유전상담사로 일하고 있고, GeneticsMode라는 온라인 유전상담 및 유전상담 컨설팅 회사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에서 유전상담학을 가르치며 후배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한 사람도, 한 가정도 유전질환으로 외롭게 싸우지 않도록 함께 하는 따뜻한 커뮤니티를 만들기 위해 네이버 카페 '유전질환의 모든 것'을 개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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