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텍사스 아동병원 소아신경과 고현용 박사

아동병원 중환자실에는 선천성 심질환, 호흡기질환, 소아암, 이식 등의 여러 이유로 집중적인 치료가 필요해서 힘든 하루와 사투를 보내는 아이들이 있다. 아동신경과에서 하는 일 중의 하나는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는 아이들의 협진을 받아서 의학적 도움을 주고, 관리하고 감독하는 것이다. 소아의 성장 시기가 특별히 뇌발달에 더 중요한 시기이고, 다른 중증질환으로 인한 신경학적 발달예후를 평가 한다거나 새로운 신경학적인 증상(발작, 의식 소실, 보행 장애 등)이 발견되었을 때 그에 따른 적절한 평가와 치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보스턴에서 유전자 결과를 분석하면서 만났던 한 환아가 기억에 남는다. 당시 나는 중환자실 협진팀에서 신경과 전공의와 주치의가 하는 일들을 어깨 너머로 보면서 부족한 임상적인 감각을 배우고 있던 중이었다. 우리는 어느 여름날 중환자실에서 양쪽 팔에 힘이 빠진다는 6살 아이의 협진을 의뢰 받았다. 전공의와 함께 신경망치를 들고 찾았을 때 아이는 이미 본인 몸보다 큰 인공호흡기의 리듬에 맞추어 숨을 쉬고 있었고, 우리는 조심스럽게 몇가지 이학적 검사를 시행하고 부모로부터 배경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내가 처음에 주목한 것은 아이에게 아주 특별한 배경이 있던 점이었는데, 그 전까지 잘 성장해오던 아이가 갑자기 5, 6살이 되던 해에 무맥성 전기활동 마비(pulseless electrical activity arrest)로 인해 잦은 심폐소생(CPR)을 받은 적이 있고, 특히 천식 악화와 같은 심한 호흡곤란 증상이 있던 후에 그러한 일을 겪어왔다는 것이었다(그러나 실제로는 의료기관에서 천식을 진단받은 적이 없던 것 같다). 초음파 검사는 정상으로 선천성 심질환을 먼저 배제했고, 그 이후에는 심전도에 주목하여 중환자실에서는 호흡곤란에 대한 보조적 조치를 받고 있던 중이었다.

신경학적 증상은 협진을 했을 때 아이에게는 새롭게 나타나는 징후였는데, 호흡곤란, 갑작스런 상지 약화, 그리고 비교적 약화된 심부건 반사(deep tendon reflex) 등의 문제 목록을 두고 뇌와 흉부 MRI 검사에서는 특이점이 없어 구조적인 문제점을 배제했다.

가장 먼저 비특이적 양상의 만성 염증성 탈수초성 다발신경병증(chronic inflammatory demyelinating polyneuropathy)이나 길랑-바레 증후군(Guillain-Barre syndrome)을 염두해 두면서 다른 희귀한 신경운동 장애(e.g., Madras motor neuron disease, Nathalie syndrome, Fazio-Londe syndrome) 등으로 감별진단 하고 있었지만 증상으로는 확실한 진단을 내릴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 사이에 아이의 호흡곤란은 갈수록 나빠져 기관절개와 위루 장치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됐다.

우리는 증상이 심해지자 유전자 검사를 실시하기로 하고, 베일러 임상유전학(Baylor Genetics) 기관에 전장 유전체 검사를 빠르게 의뢰했다. 나는 그 중의 시퀀스 파일을 받아 몇가지 분석을 거쳐 하나의 유전자에 특정화하고 주목했는데 그 유전자는 SLC52A2라는 비타민 B2(리보플라빈)를 세포 내로 조절하는 단백질이었다.

아이는 복합 이형 접합자(compound heterozygote)로 하나의 변이를 엄마로부터, 다른 하나의 변이를 아빠로부터 받았다. 두 변이 중 하나는 이전 학계(e.g., Clinvar Database)에 보고 되지 않았던 새로운 변이였다. 게다가 변이의 양상이 유사한 성질의 아미노산 변화였기에 변이의 효과가 첫눈에는 병원성을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지만, 비타민 B2를 받아들이는 중요한 막단백질 도메인 중의 하나에 위치해 있고, 희귀한 변이면서, 몇가지 컴퓨터로 예측한 병원성에서 유의한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 추측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이 불확실성 변이형(variant of uncertain significance; VUS)을 환아의 표현형에 중대한 증상을 일으키는 원인 유전자로 보았다. 이 유전자의 기능에 근거하여 고용량의 비타민 B2를 주면 되겠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몇가지 과거의 문헌들에서 성공적인 치료사례를 보여주었고, 그러한 증례에 따라 비타민 주사를 아이의 체중에 맞게 주었더니, 신경학적인 증상이 개선되고 어느 정도의 근력을 회복했다.아이가 호소했던 호흡곤란은 횡격막의 근력 약화로 인한 증상이었을 것이라 생각되는데, 놀랍게도 비타민 B2 주사를 주고 나서 시간이 지나 호흡곤란 증상도 좋아져서 결국 인공호흡기를 발관/중단(weaning) 하고 퇴원하게 되었다. 치료과정에 유전상담의 도움을 받았고 당시 이 아이의 가족은 여섯 남매가 있어서 다른 형제 자매들에게도 변이에 대한 조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들 모두 다행히 엄마 또는 아빠 두 사람으로부터 하나의 변이만 가지고 있었다. 또 난청이 찾아올 수 있는 질환의 예후에 맞게 청력 검사도 진행이 되었다.

SLC52A2 변이는 열성 유전의 결과로는 브라운-비아레토-밴 라레 증후군(Brown-Vialetto-Van Laere(BVVL) syndrome)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같은 희귀한 질환(orphan disease)에서는 유전적 변이의 효과가 크기 때문에 유전변이로 질환의 원인을 가늠하기에 충분하다. 다시 말해 이 유전변이를 해결하면 질환의 병적 상태를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 다만 이 때는 유전변이의 교정이 유전자의 기능을 복원시킬 수 있다는 가역성이 전제돼야 한다. 신경계는 발달 과정 이후에 후성 유전학적인 변화나 세포내부의 분자적 조절로 인해서 원인 유전자를 회복시켜도 다시 표현형 자체가 회복되기 어려울 수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유전자 검사를 통해서 질환의 진단을 찾아내고, 다행히 그 치료가 현대 과학과 의학의 증거로 가능했던 일이었기에 환자는 신경학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결정적인 생사의 문제(호흡곤란과 추가적인 심폐소생의 필요성)를 해결할 수 있었다. 사실 브라운-비아레토-밴 라레 증후군은 일반적으로 알려지기에는 감각 신경성 난청이나 뇌신경 마비를 먼저 호소해서 찾아오는 경우가 많은데 위의 환아처럼 잦은 호흡곤란이라는 증상을 시작으로 비정형적인 양상을 보이는 사례를 보니 드물게는 유전자 검사가 (심폐소생과 같이) 결정적인 단서가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보통의 단일 유전질환에서는 변이의 유형에 따른 유전자형-표현형(genotype-phenotype)을  많이 하는데 이 예외적인 표현형은 내게 SLC52A2 뿐만 아니라 아이에게 존재하는 흔한 변이들을 포함한 다른 변이들이 브라운-비아레토-밴 라레 증후군 표현형의 다양성을 보일 수 있는 취약성(vulnerability)을 암시했지만 이를 유의한 통계로 증명해낼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더더욱 발달 소아의 유전학적, 분자적 지도가 없었기에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많지가 않았고 이러한 흔한 변이들의 임상적 전달을 공고히 할 American College of Medical Genetics의 기준이 아직 정확히 확립되지 않았다).

두번째는 변이의 병원성을 예측하는 부분에서 내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컴퓨테이션 기반 단백질 구조 모델이 일반 자유 단백질인데, 지질층에 삽입된 막단백질의 구조변화를 예측하는 것은 지질 상에서의 안정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더 고민일 것 같다. 이런 복잡한 생화학적인 예측에 대해 기계학습이나 컴퓨테이션 기술을 이용한 툴(PredMP, mCSM-membrane)이 있지만 구조가 변한다는 것이 기능에 이상을 암시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이기 때문에 일단 우선목록에서 배제하기로 했다.

다음으로는 비타민 대사 관련 유전자 문제와 관련해 유전자 검사의 실행 가능한 임상(clinically actionable point)에 대해 생각하다가 UCSD Rady Children's Institute for Genomic Medicine의 Stephan Kingsmore 그룹에서 신속 전장유전 검사로 찾아낸 SLC19A3(티아민 수송체) 변이 케이스가 머릿속에 들어왔다. 고용량 비오틴과 티아민(비타민 B1)을 주입했고, 아이가 발달단계에서 나빠질 수 있는 신경학적인 합병증을 미리 예방했다. 같은 소아신경과 레지던트를 하고 있는 1저자 동료를 만났었는데 우리는 서로 다른 비타민 대사장애에 대해 유전자 검사의 실행가능한 임상의 경험을 공유했다.

한국에서는 GenomeInsight에서 신속 전장유전자 검사를 빠르게 하는 기술개발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듯하다. 이러한 기술은 예방가능한 신경학적인 또는 선천적 유전 문제를 빠르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환아의 가족들이 퇴원하기 전에 유사한 유전적 문제를 가진 환자 단체(CureRTD)를 소개해주었다. 위로가 되었길 바란다. 

<Reference>

https://www.ncbi.nlm.nih.gov/books/NBK299312/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6413615/

https://pubmed.ncbi.nlm.nih.gov/27777325/

https://pubmed.ncbi.nlm.nih.gov/30084960/

https://pubmed.ncbi.nlm.nih.gov/32469063/

http://curertd.org/

고현용 박사
고현용 박사

고현용 박사는 2015년 차의과학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한 후 2019년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에서 신경유전체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23년까지 보스턴 어린이병원에서 뇌전증 유전학 박사후 연구과정을 거친 뒤 현재는 텍사스 아동병원에서 소아신경과 레지던트로 일하고 있다. 뇌전증, 자폐증, 지적장애, 운동장애, 뇌종양 등의 소아신경질환과 희귀 소아질환의 유전학적 원인 규명, 환아들의 옹호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저작권자 © 코리아헬스로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