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러스-단로스증후군 환우 정수진 씨

정수진 씨
정수진 씨

나는 선천적 유전질환을 진단받는데 37년의 세월이 걸렸다. 물론 이전에도 내 증상에 대한 대학병원 진료를 본 뒤 입원하기도 하고 나름대로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았다. 나는 진단 전에도 류마티스내과, 통증센터, 내분비내과, 순환기내과 등의 진료를 보고 있었고 내 증상을 조절하는 것은 항상 뭔가 일반적인 환자들처럼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나의 관절통은 어린 시절부터 항상 있었는데, 견디기 힘든 수준의 통증으로 발전하면서 20대 초반에 통증으로 의식을 잃고 병원에 입원해서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수많은 검사를 한 적도 있다. 특히 주로 통증을 심하게 느끼는 천장관절 통증에 있어서 설명할 수 있는 진단명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섬유근육통이라는 진단을 받았는데, 내 증상은 통상적인 섬유근육통 환자들이 호소하는 불편감과는 거리가 멀었다. 나는 내과적 접근으로 통증 치료의 한계가 생기면서 통증센터에서 중재적 치료를 통해 통증을 관리했다.

내분비적 문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수치상 갑상선기능저하증을 보였으나 갑상선 호르몬 보충만으로 조절이 되지 않는 특이한 범주의 환자였다. 임상 연구에도 참여했고, 거기에서도 큰 문제점을 찾지 못했다. 나중에 전체 호르몬검사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나의 모든 호르몬 이상 문제는 비정상적으로 수치가 저하된 뇌하수체기능저하로 인한 것이었다.

뇌하수체기능저하를 치료하는 소량의 도파민 효현제와 갑상선 호르몬제를 동시에 보충하면서 수년간 미스테리 같았던 여러 호르몬적 문제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정상적으로 조절됐다. 오랜 시간 갑상선기능저하 상태를 어쩔 수 없이 겪는 동안 심근이 약해지면서 심박출량도 줄어들고, 부정맥이 동반돼 내 심장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실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호르몬이 정상적 범주를 유지하면서 병적인 부정맥은 사라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빈맥과 서맥이 왔다갔다 하는 불편감이 생겼다. 연쇄적으로 나타난 설명하기 어려운 증상들이 계속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그래서 나는 나 스스로 무엇이 문제인지 수년의 시간을 걸쳐 깊게 파헤쳐 나갔다.

공부를 업으로 살아가겠다고 다짐하고 석사과정을 시작했다. 나는 당시에도 건강이 좋지 않았지만 대학원 시절 내가 몰랐던 새로운 재능의 발견은 논문을 상당히 잘 찾는다는 점이었다. 나는 영어로 된 논문을 찾는 데 아주 특화된 사람이었다. 나는 이러한 재능을 내 병을 찾는 데에 수년간 공을 들여가면서 6개월간 질병명을 찾는 것에 몰두했다. 섬유근육통으로 헷갈리기 쉬운 질병을 정리를 하면서 우연히 눈에 들어온 엘러스-단로스증후군은 나의 모계 유전력에서 발견되는 공통점들이 유독 많은 병 중 하나였다.

나는 가족의 병력을 조사하면 할수록 엘러스-단로스증후군의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에서 성인 미진단 희귀질환 사업이 시행된 시점이 2021년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 해 전원을 결심하고 서울대병원 희귀질환센터에 온라인 상으로 글을 남겼다. 이틀 뒤 희귀질환센터 담당간호사 선생님이 내 증상만으로 엘러스-단로스증후군이 의심된다는 교수 회의 소견이 나왔다며 진료 대상으로 충분하다는 결과를 알려 주었다. 그렇게 나는 생각보다 빠르게 희귀질환 심층진료 대상으로 진료예약을 했다. 지난 시간 동안 허탈하고 막막한 감정들이 스쳐 지나가면서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과 동시에 지난 시간 수 없이 실망스러운 상황을 경험하고 난 생채기 때문에 큰 기대 없이 진료를 보러 갔다.

그렇지만 심층진료라는 긴 시간이 주어진만큼 준비는 아주 철저하게 해갔다. 17년간의 의무기록, 신체 전반적으로 나타난 증상을 찍어 놓은 컬러 사진, 의무기록상 중요한 것을 엑셀 표 두 장으로 요약을 했다. 아버지와 동행한 초진은 꽤 순조로웠다. 아버지는 진료 후 모든 것이 잘 되고 있는 것 같다고 하시면서 언제 이렇게 치밀한 준비를 했는지 물어보셨다. 교수님께서는 많은 환자분들이 어느 정도 준비를 해 오지만 이렇게 철저하게 준비를 해 온 경우는 처음이라고 "무슨 일을 하시는 분이시나요?"라는 질문을 했다.

주어진 기회에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후회가 될 것 같아서 수년간 준비를 헸을 뿐이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엘러스-단로스증후군 환자가 맞았다. 여러 검사를 수 개월동안 진행을 하고 검사 결과를 듣는 진료에서 남편과 함께 확진 결과를 듣고 진료실을 나왔다. 선천성희귀유전질환을 진단받고 의사가 이 병은 불치병이라고 말했음에도 슬프거나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집요한 조사와 진단에 대한 집념의 결과물에서 후련함을 느꼈다. 진단과정은 내 인생에서 불가능한 연구주제를 가지고 잘 알지도 못하는 분야에 대한 패러다임을 파악하는 것부터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을 끈질기게 반복적으로 읽어나가면서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려는 간절함의 결과물이었다. 이미 여러 서적과 논문을 통해 내가 어떤 질병을 가졌는지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두려움은 크지 않았다. 오히려 미진단 상태에서 악화되는 불확실성이 훨씬 더 두려웠다. 지난 의학적 평가들은 나를 정확히 보지 못했던 것이고, 내가 의심한 질병을 진단할 수 있는 의사가 확인을 해준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관리를 잘 해나갈 수 있는 전환점이라고 다짐했다.

이미지 제공=게티이미지
이미지 제공=게티이미지

내가 진단을 받으려는 시점에서 건강이 너무 좋지 않았기 때문에 더 이상 좋아지지 않는 부분이 막막하고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지 마는지도 모르는 것들을 하고 있을 때마다 높은 벽이 나를 둘러싼 것 같은 갑갑함에서 순간적으로 모든 벽이 해체되고 새 벽돌을 새 의료진과 다시 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확진을 받는 날, 나는 염증 수치가 갑작스럽게 올라가 컨디션이 나쁜 상태에서 인생에서 다사다난한 하루를 보냈다. 남편이 옆에서 아내가 몇 주간 많이 아팠다는 부연 설명을 하자 교수님께서 응급실에 편지를 써주시고 바로 응급실 진료를 보라고 했다. 1층 로비에서 허무함과 후련함으로 한바탕 웃은 뒤 남편의 격려를 받으면서 응급실 접수를 하고 진찰과 검사를 받았다.

20년 전부터 앓던 만성 담낭염이 급성 담낭염으로 돌변해 나를 매우 고통스럽게 했다. 외과 교수님은 응급 수술은 아니지만 외래 일정을 잡고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두 팩의 항생제를 맞으면서 응급실에서 기본적으로 하는 검사들과 수술 전에 필요한 검사 몇 가지를 했다. 외과 교수님은 일주일 전 다른 병원에서 찍은 CT상으로도 염증이 확인되지만, 엘러스-단로스증후군으로 인해 조직이 약해서 혹시라도 담낭의 염증 부위가 터지거나 나빠지기 쉬운 신체적 상태가 염려돼 CT를 비교 판독해 경과를 재확인하고 안심이 되면 퇴원을 지시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10시간 동안 응급실에 있으면서 느낀 점은 이제 엘러스-단로스증후군 환자이기 때문에 다른 의료진들의 시각이 달라졌음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결합조직의 결함이 있어서 다른 사람들과 신체적 상태가 다른 희귀질환 환자가 됐다.

정수진 씨는 선천적 콜라겐 유전자(COL5A1) 변이를 가진 유전질환인 엘러스-단로스증후군을 진단 받은 환자이다. 전신에서 접착제와 같은 역할을 하는 콜라겐에 결함이 있기 때문에 여러 신체적 합병증이 나타나는데, 그녀는 현재 의학적으로 엘러스-단로스증후군과 연관된 합병증 진단명이 30개가 넘어 여러 전문의의 도움으로 증상을 조절하고 관리하면서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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