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클리닉에 63세의 한 환자가 건강보험에 대한 도움을 요청하러 찾아왔습니다.  천식, 고혈압, 심부전 등을 가진 이 환자는 약 3개월 전 직장을 잃었습니다.  건강보험을 직장을 통해 가지고 있었는데 현재는COBRA (실직자 건강보험)에 의해 그 동안 가지고 있던 건강 보험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이것이 너무 비싸 4월말이면 끊을 생각이라고 하더군요.  현재 먹는 약이 10개 이상이 되는 데 어떻게 계속 먹을 수 있을 지 걱정이 된다고 합니다.
 
위의 환자는 미국의 민영건강보험제도의 폐해를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미국의 국가건강보험 (Medicare와 Medicaid)은 65세이상의 노인, 장애인, 극빈층 등만을 지원하고 민영보험이 건강보험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민영보험의 문제는 이들이 사기업에서 운영되기 때문에 건강보험을 통해 이익을 추구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기업이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잘못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원래 속성이 그래서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지요. 

건강보험을 통해 이익을 얻기 위해서는 보험회사는 가능하면 건강한 사람들만 가입시켜야 하고 아픈 사람들은 되도록 가입시키지 않아야 합니다.  따라서, 위의 환자처럼 가지고 있는 질병이 있는 사람들은 가입이 거부당하거나 가입하더라도 많은 보험료 (premium)을 부담해야 합니다.
 
위의 환자는 현재 실직자를 위한 정부보조금 등으로 한 달에 1500불 정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COBRA를 통해 가지고 있는 보험을 위해 한 달에 500불을 냅니다.  보험료가 한 달 수입(보조금)의 1/3이나 되니 보험을 유지하기 부담스럽겠지요. 그리고, 가지고 있는 질병 때문에 다른 보험을 가입하기도 힘들고 가입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월 보험료가 500불이 넘는 등 너무 비싸 보험을 가지지 않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현재 미국에는 4천만명 이상이 건강보험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비가입자들은 자영업을 하거나 중소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직장을 통해 얻는 보험은 한국처럼 직장이 보험료의 상당부분을 내줘야 합니다.  따라서 매출액이 적은 중소기업은 이 보험료가 큰 부담이 되죠.  COBRA는 직장을 잃었을 때 직장에서 가졌던 보험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단, COBRA 적용을 받으면 가입자들은 자신이 보험의 100%를 부담해야 하죠.  위의 환자는 직장에 다닐 때 한 달에 약 100불 정도 보험료를 냈다고 합니다.  따라서, 환자의 직장이 한 달에 400불의 보험료를 부담한 것이지요.  참 비싸죠? 이 비싼 보험료는 대기업에도 부담이 됩니다.  GM이  한창 잘 나갈 때 퇴직자들에게도 건강보험료을 부담해 주기로 약속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이것이 GM에게 큰 부담이 되어 망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보험료가 비싼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보험회사들의 행정비용 증가가 보험료 상승의 주범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보험회사와 상품이 많아지면 가격이 떨어질 것으로 보통 예상을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지요.  보험회사들마다 보험 상품들의 세부 사항들이 다르기 때문에 그것을 관리하기 위해, 또 여러 병원, 가입자들을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행정 비용이 증가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지난 주에 미국 국회는 건강보험 개혁안을 통과시켰습니다. 모든 국민에게 건강보험을 의무화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새 법안 덕분에 보험가입자율이 80% 중반에서 95%로 올라간다고 합니다.  또, 가지고 있는 질병을 이유로 보험회사들이 가입자를 차별할 수 없고요. 늦었지만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이 한국에 민영보험이 들어오면 지금의 건강보험보다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특히, 저수가의 한국건강보험제도에서 민영보험이 수가의 인상을 유도할 것으로 기대하시는 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민영보험이 건강보험이 지불해 주지 않는 진료나 시술을 인정해 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를 보면 민영보험은 수가를 정부보험인 Medicare에서 지불하는 금액을 기준으로 하여 지불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국민건강보험의 수가가 올라가지 않는 이상 민영보험이 수가를 인상해서 줄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어떻게 제도를 설계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미국의 전철을 밟는다면 민영보험제도는 모두에게 불행한 제도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무조건 민영보험을 도입하기 보다는 현재 건강보험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개선해 나가는 것이 더 합리적인 접근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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