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와질랜드에 오기 전까지는 나는 전통의학, 그러니까 한국에서의 한의학에 큰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아프리카에서의 전통의학에 대해서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조잡하고 검증되지 않은 음성적인 의료시술로 사람들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사이비 의학의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고 보면 대체로 맞을 것 같다. 하지만 여기서의 현실을 보고나니 조금 생각이 달라졌다. 전통의학, 특히 전통의학을 시술하는 의술사들의 역할은 이런 저소득국가의 극도로 열악한 의료보건 시스템 하에서 상당한 중요성과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의학에서 이런 전통의학, 특히 아프리카에서 지역 토속문화와 접목된 고전적인 의술은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는 현대의학의 도입과 함께 이런 전통의학을 억압하고 말살하려는 시도도 많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대의학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지역의 사람들이나 소득이 부족한 사람들은 지역의 전통의술사들을 찾는 것이 일상적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전통의학에 의지하는지는 정확히 가늠 하기 어렵지만, WHO Global atlas on traditional, complementary & alternative medicine을 살펴보면 아프리카 인구의 약 80% 이상이 전통의학을 이용하고 있으며, 상당수의 사람들이 일반 보건소나 병원을 찾기 전에 지역 전통의술사를 방문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런 전통의술사들을 찾는 것이 병을 키우는 일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이런 전통의술사들을 잘 활용하면 열악한 보건인력을 메꿀 수 있는 훌륭한 대체인력이 될 수 있다. 현대의학과 전통의학의 뿌리 깊은 반목 때문에 가려져 있지만, 의외로 많은 수의 전통의술사들이 현대의학과 공존 하기를 원한다는 연구 결과들이 많이 나와있다. 잠비아에서는 전통의술사들을 대상으로 HIV/AIDS 환자 관련 상담과 홍보에 대한 교육을 받고 실천한 의지가 있느냐는 질문에 39명 중 37명(94%)가 그렇다고 대답하기도 했으며, 실제로 남아공이나 세네갈, 우간다, 말라위, 모잠비크, 잠비아, 스와질랜드 등 의 나라들은 전통의술사들과 연합해 AIDS 예방 운동을 함께 펼쳐나가고 있다.
우간다의 경우 의사는 국민 2만명당 한명꼴인데 반해, 전통의술사는 200-400 명당 한명꼴로 압도적으로 많다. 열악한 의료보건 시스템 때문에 현대의학을 제공하는 병원이나 보건소에 가도 효과적인 치료를 제공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빈곤 지역에서는 더 저렴하고 더 가깝고 더 심리적인 안정을 제공 받을 수 있는 전통의술사에 많이 의지하게 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HIV 관련 홍보를 위해 다른 지역을 나가봐도 마찬가지다. 열심히 준비 해서 홍보활동을 한다고 십수일전부터 사람들에게 공고를 하고 다녀도 정작 오는건 너댓명에 불과하다. 이런면에서 지역 사회에 이미 뿌리내리고 있어 사람들의 신뢰를 얻고 있고, 훨씬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으며, 사람들과의 접촉 빈도도 높은 전통의술사들이 이런 홍보에 동원된다면 훨씬 큰 효과를 얻을 수 있음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런 연합은 분명히 효과를 거두고 있다. 1992년부터 우간다와 남아공 에서는 UNAIDS의 지원으로 Traditional and Modern Health Practitioner Together Against ADIS(THETA)라는 단체를 설립하여 전통의술사들에게 AIDS 관련 교육을 시작했다. 첫번째 우간다에서 AIDS 관련 예방 및 상담 교육을 받은 전통의술사들은 5개 지역에서 5만여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더 나은 의료보 건혜택과 AIDS 예방 지식을 전해준 것으로 보고 있고, 두번째 남아공에서 630 명의 의술사들은 12개 지역에서 불과 7개월 만에 229320여명의 성병 혹은 AIDS 예방 관련 지식을 교육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이 의술사들을 교육 시키는데는 불과 한명당 $23.30 가 들었을 뿐이다. 비용 대 효과 면에서 다른 어떤 AIDS 예방 교육도 이루기 힘든 놀라운 성과다.

전통의학의 문제점은 많다. 하지만 열악한 의료보건환경에서 전통의술사들은 풍부한 임상경험을 갖춘 준의료집단이다. 그리고 이런 준비된 인력을 충분히 활용하는 것은 제한된 자원 안에서는 필수적인 일이다. 문제점을 인식하고 무 조건 반대하기 보다는 얼마나 잘 활용할 수 있을지는 고민해 보는 것이 진정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닐까. 풀뿌리 의학은 풀뿌리 캐먹으라는 의학이 아니다. 바로 이렇게 가장 아래서, 사람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보건과 의료, 질병에 대한 인식을 바꿔나가는 일들이 빈곤국에서 의료보건의 기초를 바꾸는 혁명이 되지 않을까.

Reference:
1. Burnett A. et al. Caring for people with HIV in Zambia: are traditional healers and formal health workers willing to work together?. AIDS Care 1999; 29(1):27-36
2. Bodeker G. et al. HIV/AIDS: Traditional systems if healthcare in the management of the global epidemic. J Altern Complem Med. 2006; 12 (6):563-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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