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할아버지께서 진료를 받으러 오셨다. 요즘 들어 걸음 걷는 것이 안 좋아지셨다고 호소하셨는데, 진찰을 해보니 걸음이 조금
느려지신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관절통증과 노환에 의한 것일 뿐, 특별히 병적인 문제로 보이지는 않았다. 정형외과 치료를 원치
않으신다면 일단 경과를 봐도 좋겠다고 설명을 드리자 할아버지를 모시고 온 아드님께서 파킨슨병이 아니냐고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했다. 파킨슨병에 걸리는 경우 걸음이 느려지는 증상이 있기는 하지만 할아버지께서는 그 이외의 다른 증상들이 없기 때문에
파킨슨병을 의심하기에는 이르다는 설명을 드렸으나, 아드님의 눈빛에는 의심이 가득 서려있었다. 자신이 인터넷에서 보고 온
파킨슨병의 증상을 나열하면서 나에게 동조를 바라는 것 같았지만 걸음이 조금 느려졌다 하여 파킨슨병으로 진단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내가 선뜻 동의하지 않자, 아드님께서는 뇌 MRI사진을 찍고 싶다고 하셨다. 파킨슨병은 MRI만으로
진단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파킨슨병과 유사한 다른 질환을 감별하기 위해 MRI가 필요한 것이라 설명했으나 아드님은 여전히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결국 아드님의 주장을 꺾을 수 없어 뇌 MRI를 찍었고 아드님은 검사 상 특이소견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서야 미심쩍은 표정으로 귀가하셨다.

요즘은 이런 일이 허다하다. 어디선가 눈꼬리가 떨리면 뇌졸중의 시초라
들었다거나, 안면신경마비를 뇌졸중이라며 MRI 검사를 요구하는 등 이미 병원에 오기 전에 스스로 진단을 내리고 오는 경우가
많다. 아니라고 설명을 드려도 얼굴에 의심이 가시지 않는 분들을 볼 때마다, 어째서 의사보다도 주변에 떠도는 정체모를 정보들을
더 신뢰하게 된 것일까 하는 한탄을 하게 된다.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 살아가고 있다.
예전에는 전문가를 통해서만 들을 수 있던 생소한 정보들을 클릭 몇 번으로 쉽게 접할 수 있고, 이제는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벽마저도 허물어져 가는 모양새다. 의학도 마찬가지다. 부모님 시절에는 몸이 아프면 도대체 무슨 병인지 알지도 못한 채 생사를
헤맸다 한다. 죽을 때 죽더라도 의사 한 번 만나고 죽는 게 소원이었다던데, 이제는 오히려 환자가 의사보다 더 많은 정보를
접하기도 한다. 인터넷에 증상을 입력하면 그에 맞는 질병들이 주루룩 올라오고, 병원에서 처방을 받은 후 약 이름을 입력하면 그에
대한 정보가 쏟아진다. 좋게 말하면 투명해진 사회이고, 다르게 말하자면 벌거벗겨진 세상이다.

이러한 현상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볼 수는 없는 일이다. 자신의 질환에 대해 관심을 갖고 치료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인다는 데야 무엇이 문제겠는가.
다만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제대로 된 정보를 찾지 못한 사람들이 문제다. 가끔 외래를 방문하는 분들을 보면 이미 마음속에 자신의
병을 확신하며 오시는 분들이 있다. 인터넷을 찾아봤더니 자신의 증상과 똑같더라는 것이다. 이미 자신이 병에 걸렸다는 것을 믿고
왔기 때문에 자신의 진단과 다른 이야기를 하면 미심쩍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자신의 이야기에 동조해줄 의사를 찾아 쇼핑을
시작하는 것이다.

의사로서 일한지도 벌써 10년이 넘었다. 그동안 내가 보아온 의학은 너무나도 넓고 방대하며
앞으로 내가 공부해야 할 것들도 너무나 많다. 이 방대한 의학에 있어 10년을 일해 온 의사보다 인터넷의 조각 정보를 더
신용한다는 것은 환자들의 잘못만은 아닐 것이다. 그만큼 우리 의사들이 신뢰를 잃었던 것은 아닐까? 일차적으로는 의사들이 반성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비공식적인 정보에 현혹된 환자의 책임도 크다. 근거 없는 정보에 매달리다보면 괜한
비용의 낭비를 초래할 수 있으며, 최악의 경우 의료진의 말을 듣지 않고 자가 치료를 하다가 치료시기를 놓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다 전문가인 의사의 의견을 존중하고,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면 대화와 의견교환을 통해 합리적으로 해결해나가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는 의사와 환자 모두 노력해야 할 부분일 것이다.

* 이 글은 한국신문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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