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착한 사마리아인 이야기가 나옵니다. 길에서 다친 사람을 발견하여 여관으로 데려와 치료해주고 먹이고 재워준 착한 이방인 이야기입니다. 실제 길에서 쓰러진 사람을 발견했을 때 구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면 특별한 사유가 없는한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것입니다. 문제는 조금 더 복잡해서 도덕적 비난을 넘어 법률적으로 벌을 받을 수 있는가 입니다.


남을 도와줄 수 있는 상황에서 돕지 않아서 상대자가 피해를 봤을 경우 처벌을 하는 선한 사마리아법을 도입한 국가도 있습니다. 프랑스 형법 제63조에는 "위험에 처해있는 사람을 구조해도 자기가 위험에 빠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의로 구조하지 않는 자는 3개월 이상 5년 이하의 징역, 혹은 360 프랑 이상 1만5000프랑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도덕적인 문제를 법으로 규제를 하는 것에 대해 논란이 있을 수 있습니다.


밤에 길을 가다가 술에 만취해 쓰러져 있는 경우를 보았을 때 어떻게 하십니까? 술에 취해 자는지 술도 취했으나 쓰러진 이유는 다른 질병이나 상해때문인지 모르는 일지요. 험한 세상에 좋은 일 하려다가 오히려 낭패를 본 경험이 있으신 분은 그냥 지나가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혹은 '걱정은 되지만, 술에 취해서 잠시 잠든 것이겠지. 괜찮을꺼야.'라고 생각하시고 관심을 가지지 않으려고 할 수도 있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경찰이나 119 구급대를 부르는 수도 있을 겁니다.


만약에 술에 취해 쓰러져 잠들어 있던 사람이 저체온증으로 사망을 하였다고 한다면, 보고도 못본척 지나간 행인들은 도덕적 비난을 넘어 법적 처벌을 받아야할까요? 유가족들은 그 들을 매우 원망할 것입니다. 실제 대학 재학시 본과 4학년이였던 선배 한분이 평소 못하는 술을 하고 길에서 저체온증으로 사망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큰 길가에서 아무도 깨우지 않았다는 것에 모두 안타까워 했었지요.


조금 상황을 달리 생각해보겠습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이 상처에 약을 발라주고 치료를 해줬습니다만 상처가 덧나게 되었습니다. 이 사마리안인에게 배상을 청구할 수 있을까요? 달리 이야기하면, 삼풍 백화점 붕괴 현장처럼 긴급한 재난이 닥쳐 지나가던 사람들도 구조에 동참하게 되었는데 척추손상이 있는 환자를 무리하게 붕괴 현장에서 구출하다가 영구적인 장애가 남게 되었다고 가정해봅시다. 어떻게 해야할까요?


선의로 도움의 손길을 펼쳤는데 결과적으로 나쁘게 되었을 경우 도움을 받았지만 피해자가된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게 하자는 의견도 있을 수 있을 것이고 선의로 도움을 준 선한 사마리아인이 많아지게 하기 위해서는 법적 책임을 면하게 해주자는 의견도 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한 논란은 실제 2006년도 열린우리당 김덕규 의원이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을 상정하면서 있었습니다. 통과는 되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만, '응급환자에게 119 등 전문적인 응급처치가 제공되기 전이라도 응급환자의 주변사람이 응급처치를 적극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일반인의 응급처치로 인해 발생하는 민·형사상 책임은 면책될 수 있다'는 골자로 기억됩니다. 앞서 말한 논란이 그대로 있었고 통과는 되지 못했지요.


일반인과 달리 의사를 포함한 응급구조사등의 경우도 '도움을 주려는 마음'은 똑같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응급 상황에서 비전문인에 비해 매우 훌륭한 도움을 줄것이라는 것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만 아이러니하게도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 책임을 묻겠다는 생각은 더 많이 드는 것 같습니다. 이런 극적인 상황은 잘 알려지지는 않지만 드물지 않게 있습니다.


하늘에 떠 있는 비행기 안에서 응급환자가 발생했을 때 의사가 나와  응급처치를 했지만 환자가 사망했다면 해당 의사는 소송의 대상이 될까요 안될까요? 실제로 있었던 일로 로마에서 여행을 마치고 인천 공항으로 들어오는 비행기를 탄 여성분이 비행기내에서 쓰러졌습니다. 일본인 의사와 한국인 간호사가 함께 응급처치를 했음에도 안타깝게 운명을 달리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문제를 법으로 규정하는 것은 무척 조심스럽고 자칫 기대한 효과가 아닌 역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하는 민감한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 것인지 확신은 없습니다. 혹시라도 생길 수 있는 나쁜 결과에 대해 그 원인과 책임을 물어볼 수 조차 없다면 피해자 측면에서 분명 억울한 일입니다.


반면 의사의 경우 자신이 진료를 볼 수 있는 최상의 상태(진료실 또는 응급실에서 여러 인력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상황)가 아닌 응급상황에서 생기는 결과에 대해서도 같은 잦대를 가지고 책임을 묻는다면 도움을 주기 위해 나서는 발걸음이 무거워 질 것입니다.


제 경험을 말씀 드리면,  3-4년 전 C 항공사의 비행기를 타고 홍콩으로 갈 때에 응급환자가 발생했습니다. 승무원들이 의사를 찾는 방송을 하였고, 전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었거든요. 짧은 순간 '내가 잘 모르는 질환이면 어떡하나' 부터해서 '어떤 응급상황일까?' 하는 생각까지 나가서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과 생길 수 있는 책임 사이에 갈등을 했습니다. 결국 앞에 나갔습니다. 짧은 영어로 승무원과 대화를 하게 되었고 환자를 만났습니다.


응급 처치로 주사기를 이용하려고 했는데 구급함을 열었다가 매우 놀랐습니다. 생각 보다 많은 장비들이 있었던 것이죠. 문제는 그 구급함에 어떤 약이나 처치 기구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메뉴얼이 있었지만 하나 하나 읽고 있는 것이 참 갑갑하더군요. 승무원들도 교육을 받았겠지만 제가 요구하는 처치 도구나 약물을 찾아 주고 준비해 주는 것을 응급실에서 기대하는 것 처럼 신속할 수도 없고 대부분은 혼자 준비를 해야했습니다.


처음 걱정과는 달리 필요로한 처치를 기내에서 해결 할 수 있었습니다. 신혼 여행을 가는 비행기였기 때문에 통상적으로 진료실에서 보는 의사의 모습이 아니여서 걱정을 많이 하신 것 같았는데 결과가 좋았기에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찌 된 일인지 이 환자분을 시작으로 3명의 응급환자가 발생했습니다. 아마 제 평생 이런 경험은 더 없을 것 같습니다.


운이 좋아 모든 환자분들이 큰 문제 없이 공항에 도착하였고 일부는 공항 의무실에서 조금 더 확인이 필요로 했습니다. 의무기록을 작성하면서도 식은 땀이 났던 기억이 납니다. 무엇보다 응급실이나 진료실에서 처럼 원하는 도움을 주변에서 얻을 수 없고 원하는 기구들도 항상 구비되있지는 않는다는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에 있어서는 그런 상황을 참작해주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지요.


승무원들과 이야기 해본 결과 의사가 없으면 의료 관련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순서대로 찾아보고 정 없을 경우 바로 응급 처치가 필요하면 지상에 있는 의사의 지도를 받아 승무원이 응급처치를 하게 된다고 합니다. 비행기에서의 일은 개인적으로 보호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의 의료행위였고 운이 좋았기에 망정이지 자칫 분쟁이 될 수도 있는 위험이 있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런 행위를 했다고 항공사에서 보상이 있지는 않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린 환자들이 눈을 마주치고도 눈인사 조차 없이 입국심사대로 가는 모습을 보며 '내가 무슨 일을 한 것인가'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마음속으로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 갔거나 제가 한 응급처치에 불만이 있었거나, 당연히 의사가 해야할 일을 했다고 생각했거나, 항공사에서 보상을 할 것이기 때문에 손님인 나는 기내에서 받을 당연한 서비스를 받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기본적으로 인간 사이에 오고 가야할 예의도 기대와는 달랐고, 항공사에서는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기 위해 의무기록을 작성해달라고 하고... 비행기에서 내리는 마음이 응급처치가 성공적으로 끝나 흥분했을 때와는 달리 찹찹해졌습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에게 상을 줄 필요까지는 없습니다만, 잘못되면 벌을 줄 수 있다고 한다면 도움의 손길을 줄 사마리아인이 몇이나 될지 걱정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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