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불안한 얼굴을 한 부시홍(38)씨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칠월 말이었다. 무더웠던 그날, 노동인권연대 운영위원인 곽동혁 노무사가 손수 차로 순천에서 환자를 데리고 왔다. 부시홍씨의 딱한 사정은 몇 달 전부터 곽 노무사에게 들어 익히 알고 있었다. 산재신청을 했는데 산재로 인정되지 않았고, 그는 밀린 병원비 1200만원 내지 못하여 쫓겨나듯이 순천의 병원에서 짐을 싸야만 했다. 결국 재심을 신청했고, 만약 이마저도 기각이 된다면 행정소송을 할 예정이다. 법률적 소송기간 동안 마땅히 갈 곳이 없어 알로이시오 기념병원에 입원을 하게 된 것이다.



ⓒ국제신문 박수현 기자

산업연수생으로 5년 전 한국에 온 부시홍씨는 경기도, 전라남도, 김해에서 용접공과 막노동꾼으로 일하며 꿈을 키워가고 있었다. 100만원 남짓한 월급에 60만원을 고향인 베트남 응에안 성에 살고 있는 가족에게 꼬박꼬박 부쳤다. 그에게 불행이 찾아온 것은 지난 해 11월에 김해시 한림면에 있는 M 산업사에서 순천으로 파견근무를 갔을 때였다. 용접공으로 파견 일을 하다가 돈을 더 벌기 위해 주말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사고가 난 것이었다. 공장 부근 단독주택 공사현장에서 일하다가 5미터의 높이에서 그만 떨어지면서 그의 꿈이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돈을 벌어 고향에서 애인과 결혼도 하고 부모 형제와 잘 살아보려던 꿈이 박살난 것이다.

9개월 동안 수술을 받고 입원 치료를 한 순천의 병원에서 가져온 소견서에는 다음과 같은 병명이 적혀있었다. 1. 척수손상(제12흉추 부위) 2. 양측 하지 완전마비 3. 제 12흉추체 방출성 골절 4. 제1 요추, 제 10,11번째 흉추체 압박골절 5. 외상성 뇌경막외 출혈 6. 외상성 뇌지주막하 출혈 7. 외상성 뇌실질내 출혈 8. 다발성 두개골 골절 9. 제 1,2 요추 횡돌기 골절 10. 우측 제9번째 갈비뼈 골절 등. 그가 추락하면서 얼마나 심하게 다쳤는지 알 수가 있다. 다행히도 경과는 좋았지만, 척수손상으로 인한 하반신 마비는 회복되는 것이 아니다. 그를 간호하기 위해 베트남에서 동생 부시환(34)씨가 와서 형의 병상을 지키고 있다. 척수손상 환자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대, 소변 가리기다. 아침 회진시간에 참았던 대변을 보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향기로운 냄새가 나도 그가 무안해 할까봐 눈인사만 하고 돌아서기도 한다. 오죽 답답하겠는가. 그는 어서 빨리 마무리 지어 고향 땅을 밟고 싶어 했다.

산재적용을 받으려면 공사장의 총면적이 100㎡ 이상이 되어야 하는데, 부시홍씨가 일하다 사고를 당한 건축공사장은 총면적이 99.85㎡로 산재보험 기준에 미치지 못해 산재적용을 받을 수가 없다고 근로복지공단은 말한다. 건축주가 산재보험에 들지 않기 위해 일부러 서류상으로 작게 신청을 한 것이다. 부시홍씨 사건을 접하고 곽 노무사는 순천까지 오가면서 공사현장을 실측한 결과 총면적이 121㎡로 나와 노동부에 이의신청을 한 상태다. 전형적인 서류만 보고 일하는 탁상행정의 전형이 아닐 수 없다. 얼른 실측 결과를 받아들여 조그만 보상이라도 받고 부시홍 형제가 베트남으로 돌아갈 수 있었으면 한다. 이의신청이 또 기각되면 행정소송을 해야 하는데, 이 경우는 약 8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며칠 전, 국제신문 기자와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부시홍씨의 딱한 사연을 이야기 했더니 꼭 기사화하여 우리사회에 알려야겠다고 했다. 기자의 취재에 응한 그가 더듬거리는 우리말로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적은 돈이라도 빨리 보상을 받아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다문화사회로 진입하는 우리나라가 서류상에 15c㎡가 모자란다고 일하다 고통을 당하고 있는 그를 외면할 수는 없지 않나 싶다. 평생 휠체어에 의지하고 두 발로 걸을 수 없게 된 그에게 좋은 결과가 와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날이 어서 오기를 희망한다. 그의 눈물을 누군가는 닦아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살이 오른 그의 얼굴에 웃음이 피어나길 고대한다./플라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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