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20일 23개월 된 남자아이가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부검결과 우측 뇌 괴사로 인한 폐렴 합병증으로 사망! 아이는 숨지기 한 달 전인 6월21일 평소와 다름없이 같은 아파트 1층에 자리 잡은 어린이집에 등원했다. 하지만 집에 갈 시간이 되어도 일어나질 않아 어린이집 관계자가 직접 업어서 집으로 데려왔는데. 할머니가 아이를 받았을 때는 이미 아이의 몸이 축 늘어져 의식이 없던 상태! 바로 근처 대형병원으로 옮겼지만 한 번도 눈을 뜨지 못한 채 한 달여간 병상에 누워있다 죽음을 맞은 것.

병원에 실려 올 당시 아이의 머리에는 붉은 멍 자국과 귀와 팔에도 상처가 있었다고. 하지만 유치원 관계자는 아이가 잘 놀다가 잠이 든 것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과연 23개월 된 이 아이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 이야기의 시작은 이렇다.


의국원들과 함께하는 식사자리, 핸드폰 화면에는 낯선 번호로 부터 걸려온 전화를 알리는 신호가 반짝 거렸고 목소리를 최대한 낮추고선 '급한 일 아니면 나중에 전화주세요' 한마디와 함께 핸드폰을 내려놓으려는 순간 상대방으로 부터 들려오는 목소리. '22개월 헤모리지입니다.'

그 한마디에 재빨리 일어나서 가려던 찰나 식사는 마치고 가라는 윗년차 선생님의 배려 덕분에 조금이나마 맛있는 저녁을 즐길 수 있었지만 이내 그 아이가 경기를 했다는 콜 때문에 옷을 주워입고 재빨리 응급실로 달리기 시작했다. 소아 응급실에 곤히 누워있는 그 22개월 남자 아이의 상태를 잠시나마 보고난 후, 내 손이 갑자기 바뻐지기 시작했다.  Notify만 듣고 상상했던 상태와는 다르게 의식 상태는 반혼수였고, 동공은 한쪽이 대부분 열려있었으며 자극을 주면 사지가 뻗치는 양상이 관찰되었다. 뇌CT에서는 전두엽, 측두엽 부위의 아급성 경막하 혈종과 함께 우측 대뇌가 부종으로 인해 빵빵하게 부풀어 있었고, 이를 통해 이미 수상 후 상당시간이 지났다는 것과 상당수의 뇌 실질세포가 죽어있음을 예측해 볼 수 있었다.

그 아이는 맞벌이 부부에게는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아들이었고 그 부부의 미래요 삶의 낙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부부는 아이를 2층의 놀이방에 맡긴 채 직장으로 일하러 나갔다. 헌데 오후 4시까지 놀이방에서 잘 놀던 아이가 잡작스레 잠든 이후 늦은 시간까지 아무리 깨워도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고, 한차례 경기를 하더니 그 경기가 30분이 지나도 멈추지 않아 119를 통해 급하게 응급실을 찾아온 것이었다. 아이는 뇌CT 사진에서도 외상에 의한 출혈이 의심되는 부위가 몇군데 있었고 몸 여기저기에 멍든 자국도 보여서 일단은 그 부부에게 외상의 과거력이 있었는지를 물었다. 하지만 그 부부는 아무 것도 알지 못했고, 놀이방에서도 특별히 다칠만한 일은 없었다고 말했다.

일단은 외상이 아니라면 뇌부종이 우측반구 전체를 침범할 정도로 심한 경우 뇌경색의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지만, 아이의 의식상태나 현실적 여건 등이 뒷받침 되지 않아 혈관조영 CT나 MRI 등의 추가 검사를 통해 확인해보기는 어려웠다. 부모에게는 아이의 상태와 함께 뇌CT 사진을 보여주며, 사망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이야기를 골자로 한 위험성에 대해서 설명했다. 인공삽관, 중환자실, 중심정맥라인, 수술 가능성 등의 이야기들이 이십여분정도 오갔을까, 아이의 부모는 끝내 참지 못하고 눈물을 터뜨렸다. 설명이 끝난 뒤, 부부는 부둥켜 앉고 그렇게 한참을 아이 옆에 선채로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위로했다.

환자의 나이, 상태 및 여러가지 정황상 응급 수술을 강력히 권유하기는 무리가 따랐고, 부모에게는 중환자실에서 보존적 치료를 하며 지켜보자는 말 외에는 그 어떤 말도 건낼 수가 없었다. 한참을 아이 옆에 서서 이리 주무르고 저리 주무르는 부모의 모습에 왠지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고, 그런 부모 앞에서 의사로서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그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이라 생각했기에 애써 눈물을 감추고 더욱 냉정하고 강력하게 아이의 상태 및 경과에 대해서 설명했다. 내게는 마음이 너무나 아프고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그렇게 그 아이는 신경외과 중환자실로 옮겨서 치료를 받고 있다. 물론 의식 상태가 1% 정도는 호전될 가능성도 있지만 그 반대로 사망에 이를 수도 있고, 기관에 튜브를 꽂은 채 평생을 편측 마비의 장애와 함께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22개월, 절망조차 허락되지 않은 이제 막 인생이라는 문에 접어드는 이 시기에 무럭무럭 자라서 꿈을 펼쳐나가야 할 그 아이를 그냥 이대로 보낼 수는 없었다. 그렇기엔 그 아이가 너무 불쌍하고, 그 아이의 부모가 너무 애처럽고, 그 아이의 오더를 '용량/체중'으로 일일히 계산해가며 투약해야 할 내가 너무 안쓰럽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새벽 나는 되도록 그 아이의 곁을 지킬 참이다. 비록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할지라도... /polycle

2010. 6. 22

지난주 토요일 한 방송국 PD와 잠깐 위 사건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 이렇게나 빨리 공중파 방송을 타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컨퍼런스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문자를 받고 급하게 병실로 달려가 TV 채널을 돌렸지만 '이번 사건의 진상은 꼭 규명되어야 겠습니다'라며 엔딩 멘트만 들을 수 있었다. 인터넷을 뒤적여 오늘 아침은 홈페이지를 찾아 대략적인 방송 스토리를 찾아 읽어보니, 아무래도 방송의 초점은 '놀이방 학대'에 포커싱이 맞추어진 모양이었다.
 
헌데 얼핏들은 이야기로는 내가 간 이후 아이 상태가 나뻐졌고, 결국 아이는 힘든 이승의 생을 마감했다. 그 아이의 사인은 병사나 외인사가 아닌 의문사로 남겨졌고, 그 때문에 가족들은 원했던 화장도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다. 사인을 비롯하여 아이의 사망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이런저런 일들로 병원이 꽤나 시끄러웠고, 급기야 방송국에 제보되어 오늘 전파를 타고 세상을 퍼져나갔다. 부검을 요청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오고 있으나 아이의 가족들이 어떠한 선택을 했는지는 알 수 없었고, 아직 방송을 보지 않아서 이후 어떻게 이야기가 전개되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무척이나 아쉬워했고 안타까워했던 한 생명이 저세상으로 떠났음을 반추할 수 있었던 오늘, 조용히 구석에서 그 아이를 위한 애도를 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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